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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련선사 부도의 에너지를 받으러 유마사로....
    ♠寺刹巡禮 2011. 11. 28. 07:14

    유마사(摩寺)는 화순군 남면 유마리 321번지 모후산(母後山)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승보종찰 송광사의 말사입니다.

    광주 벌교간 도로에서 이정표를 따라 약 6키로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동복읍지』『유마사향각변건상량문』등에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백제 무왕 28년(627년)중국 당나라의 고관이었던 유마운(維摩雲)과 그의 딸 보안(普安)이 창건하였습니다.
    그가 수행하기 위해 지은 암자가 지금의 귀정암의 옛터로서 뒤쪽에 아직도 유마운 탑의 유적이 남아있습니다.
    유마운의 딸 보안보살 역시 불법을 깊이 깨달았는데 동복 이서면의 보산뒤에 보안사를 지었으나 지금은 없어졌으며

    유적은 남아 있다고 합니다.

     

     미륵불

     

     제월천의 단풍

     

     

     제월천(濟月泉)과 죽림(竹林)이 어우러진 단풍

     

     

     

     혜련부도

     

     

     

     

     

     

     

     

     

     

     

    유마리 마을에서 절로 올라가면서 길이 5m, 폭 3m 정도의 돌다리를 건너게 되는데, 계곡 양 끝에 축대를 쌓고 하나의 납작한 돌로 상판을 걸쳐놓은 구조이다.

     

    이 다리의 윗면 왼쪽에 ‘유마동천보안교(維摩洞天普安橋)’라 쓰여 있어, 예전에는 이 계곡을 절이름에서 빌어 ‘유마동천’이라 하였으며 다리의 이름이 보안교임을 알 수 있다.

    다리의 오른쪽에는 ‘관세음보살량련호(觀世音菩薩梁蓮浩)'라 쓰여 있고, 그 아래 시주자의 이름이라 생각되는 ‘백운거사 양연법(白雲居士 梁蓮法)’을 새겨 놓았다.

     

    이 보안교는 유마사(摩寺)의 창건주인 유마운의 딸 보안(普安)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보안은 불교에 귀의한 도통한 비구니로, 적벽 근처에 보안사를 창건하였으며 유마사(摩寺)에 있는 제월천(濟月泉) 전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또한 이 다리를 놓기 위해 모후산 중턱에서 많은 인부를 동원해 석재를 운반하였으나 험한 산길이라 작업의 진척이 느려지자, 보안이 치마폭에 바위를 담아와서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현재 유마사(摩寺)경내에는 보안보살이 체로 달을 건져 올려 비구승을 공부시켰다는 제월천과 보안보살이 치마폭에 싸 옮겨 놓았다는 보안교(普安橋)가 1400년의 역사를 가지고 현존하고 있습니다.
    그 뒤 유마운을 이은 선사가 잇달아 나타나 부근에 귀정암, 사자암, 금릉암, 은적암, 운성암, 동암, 오미암, 남굴암 등의 8암이 있었으며 승려들의 수도장으로 이용하였다 합니다.17세기 무렵 경헌(1542-1632)스님이 절을 중건했고 그로부터 50년 뒤에 가안선사가 나한상을 만들었는데

    가안선사가 만든 나한상은 특히 뛰어나 세상에 보기 드문 작품이었다고 전합니다.

    일주문을 들어서서 좌측에 있는 요사채 옆에는 둥글게 돌을 쌓아 만든 제월천(濟月泉)이 있는데, 이 샘에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전설이 전한다.

     

    모후산(母後山)에 절이 세워진 이후 수많은 불제자들이 모여들어, 유마사(摩寺)가 대사찰로 그 명성이 드높아가던 어느 시절이었다.

    유마사(摩寺)는 627년(백제 무왕 28) 중국에서 건너온 유마운()과 그의 딸 보안()이 창건하였다.

     

    이 절의 창건자는 당나라 사람 유마운()인데 유마운은 중국 당나라 때 관직에 몸을 담고 있을 때 동료이자 죽마지우가 병고에 시달리다 죽었다. 조문을 가려는 유마운을 딸 보안이 만류하면서 하는 말이 입관후에 문상을 가되 관을 열어 시신을 보고 오시라는 말을 하였다. 평시에도 보안의 총명과 미래를 통관하는 도술을 지니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유마운은 딸의 말에 따랐다.
    입관후 조문을 간 유마운은 딸의 말대로 시신을 보려고 관을 열자 까무러치게 놀랬다. 관 속에 커다란 구렁이가 눈물을 흐르고 있지 않는가. 유마운은 급히 관을 덮고 영문모른채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 딸 보안이
    「관을 열어 보았습니까?」
    「음, 열어 보았지. 그런데 어찌된 일이냐?」
    「그것은 그 자가 관직에 있을 때 백성들을 괴롭히고 수탈한 죄의 댓가입니다.」
    이 말을 듣자 유마운은 깨달은 바가 있어 관직을 버리고 관직중에 자기가 저지른 죄과를 씻기 위해서는 사찰을 지어 불도에 귀의하는 길 밖에 없다고 판단하여 중국산천을 돌아다니면서 절터를 구하려 하였으나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동쪽 바다건너에 가면 아름다운 산천의 고을이라고 하니 마땅히 좋은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끝에 딸 보안을 데리고 백제에 건너와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 끝에 모후산에 도달하였다.
    산자수명한 모후산 산록이 절터로 가장 알맞다고 부녀의 의견이 합치되어 절을 창건하여 유마사(摩寺)라 명명하고 불도에 여념이 없이 정진한 끝에 대오의 희열을 맛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유마사(摩寺)에 있는 샘물은 제월천이라고 하는데 그 연유는 다음과 같다.
    유마사(摩寺)가 창건되자 수많은 불제자들이 운집하여 대 사찰로서 그 명성이 드높아갔다.
    불제자를 자원하여 온 젊은이들 중에 한 젊은이는 보안의 그 아릿따운 자태에 넋을 잃고 짝사랑에 고민하고 있었다. 어느 날 달빛이 휘황한 밤 보안이 샘터에서 갈증을 풀기 위해 샘물을 뜨려고 할 무렵 갑자기 젊은 승이 보안을 껴안고 욕을 보일려고 했다.
    보안은 침착한 어조로
    「샘물에 떠 있는 달을 채로 건져 올릴 수 있으면 그대의 소원대로 내 몸을 맡기겠오.」
    이 말을 들은 젊은 중은 옆에 있는 채로 달을 건져 올리려고 여러번을 되풀이 하나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면 내가 한 번 해 보겠오.」
    보안이 젊은 중에게서 채를 받아 샘물에 채를 넣고 단번에 그 채속에 달을 떠올리지 않는가.
    젊은 중은 달을 떠올린 보안의 신통에 놀래기보다는 불타는 정욕이 앞서 그 자리에서 다시 보안을 붙잡고 실랑이를 하며 늘어지자,
    「대웅전에 가서 내 몸을 허락하겠으니 따라 오시요.」
    하며 총총 걸음으로 대웅전에 들어가니 젊은 중도 따라 들어가자마자 보안을 겁탈하려고 덤벼들자 대성일갈이 떨어진다.
    「저 부처님이 보이지 않느냐! 저 부처님만 부처님인줄 아느냐!」
    말이 떨어지자 마자 보안의 모습은 불상이 된채 움직이지 않는다.

    그 순간 젊은이는 큰 깨달음을 얻어 후일 고승이 되었으며, 이 샘은 달[月]을 건진[濟] 샘이라 하여 ‘제월천(濟月泉)’이라 부르게 되었다.

     

    유마사 풍경

     단순하면서 오묘한 닷집과 연밥모양의 등기구

    현판이 없는 법당에 모셔진 불상

     

    맷돌

    유마사 전경

     

     

     

     

     

    모후산의 산세와 겨울 단풍

     

     

     初冬軟枾(초동연시)

    목련 꽃봉우리

    천년을 하루같이 지켜온 주목

     

    모후산(母後山)의  모는 어미모자를 쓴 산으로 마치 어머니 품과 같이 따스한곳에 자리잡은 모후산

    배산임수의 형상을 갖춘 유마사(摩寺)은 겨울를 모른채 포근하게 붉디붉은 단풍이 불자들과 등산객들을 맞이하면서 자연그대로의 내음새로 반기어 주었다.

    제월천(濟月泉) 에 흐르는 계곡물과 죽림(竹林)이 어우러져 붉은 단풍의 아름다움을 토해 내면서 등산객의 발목을 사로 잡고 있었으며 모후산(母後山)의 병풍같은 산새가 울긋불긋 단청을 하고 유마사(摩寺)를 품고 있는 형상이 너무 포근했으며 울긋불긋 단풍과 더불어 관광객들의 등산복과 어울려져 초겨울의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자연의 그대로의 모습 천년을 이어온 주목나무와 곳곳의 이끼, 때죽나무와 낙엽 딩구는 소리와 이름모를 산새들의 하모니 협주곡,

    산문을 나오면서 나뭇가지에 걸어져 있는 0 0 0 등산회라는 리본이 나무에 묶어 흔들리는것이 자연과 동화되는것이 아니라 파괴하는것의 아쉬움과 일부 전각들을 불사하면서 쪽매듭을 하지 않고 대못으로 목재의 부재를 연결한것이 눈에 보여 현대건축의 한계임을 안고 모후산(母後山)과 유마사(摩寺)의 에너지를 충전하고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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