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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에는 지장보살의 심볼인 석장이 없는 불상을 찾아 서...
    ♠寺刹巡禮 2011. 11. 25. 18:37

     

    쌍봉사 지장전에는 주존인 지장보살을 비롯하여 현재 21구의 목조각상이 있다.

    지장보살은 좌상이고 시왕은 의자에 앉아 있으며 나머지 상들은 모두 입상이다.

    지장보살(높이 104㎝)은 팔각대좌(너비 93㎝, 높이 34.5㎝) 위에 앉아 있다.

    머리는 민머리이며 녹색이다. 이 민머리 부분을 제외한 형식은 불상과 같다. 이마에는 백호가 있고 목에는 삼도가 있다. 법의는 통견이며 옷주름은 극락전의 아미타여래좌상과 같은데 다만 어깨선이 직각이 아니라 완만한 호형으로 다를 뿐이다. 손은 별주하여 손목에 끼워 넣었다. 손에는 지장보살의 심볼인 석장이 없으며 불상과 같이 미타정인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이 상은 극락전의 아미타여래좌상이나 대웅전의 석가여래좌상과 거의 같은 양식을 취하고 있어 이들 상을 조각하였던 조각가나 그 일파들이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배면에는 장방형의 복장공이 있으나 이미 복장물은 도난당하였고 다만 그 조상기문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지장보살의 좌우에는 각각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서 있다. 도명존자(높이 146㎝)는 민머리에 합장을 하고 있으며, 무독귀왕(높이 148㎝)은 보관을 쓰고 있으며 가슴에 모은 양손은 옷에 가려 있다. 이들 상은 배면에 장방형의 복장공이 있으나 복장공은 이미 도난당하고 안은 텅 비어 있다.

    지장삼존의 좌우에는 十王像들이 의자에 앉아 있다. 시왕상(높이 156㎝, 의자 높이 121㎝)들은 머리에 모두 관을 쓰고 있는데 그 형태가 각각 다르다. 옷은 융복과 곤룡포 차림이 섞여 있으며 조각 모습이 모두 다르다. 의자 양쪽에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을 조각하였는데 유실된 것들이 더 많다.

    시왕들 사이에는 판관, 귀왕, 동자, 使者 등 6구(높이 100∼120㎝)가 서 있는데 조상기에는 각 2구씩 8구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현재는 2구가 분실되고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장전 내의 조각상들은 조상기(가로 123.5㎝, 세로 45.5㎝)에 다음과 같이 그 명칭과 숫자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函冥敎主地藏菩薩, 左補處道明尊者, 右補處無毒鬼王, 第一秦廣大王, 第二初江大王, 第三宋大王, 第四五官大王, 第五閻羅大王, 第六變成大王, 第七泰山大王, 第八平等大王, 第九都市大王, 第十五道轉輪大王, 判官 2구, 鬼王 2구, 左右將軍, 童子 2구, 使者 2구 등 23구, 그리고 이 상들을 조각하고 채색하는데 참여하였던 사람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어 참고가 된다. 治匠은 宋仁哲이고 채색하였던 畵員들은 雲慧比丘를 비롯해서 11인이다.

    이 조각들의 조성시기는 기록에 의하면 1667년이다. 조상기에 조성연대가 없어서 확실하지 않지만 조상기에 나온 인물들 가운데 翠微堂守初가 있는데 그의 생몰연대가 1590∼1668년인 점을 감안하면 이 기록은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2,3,10번째 시왕의 밑부분에 있는 장방형의 복장공에서 후령통 등 복장물이 확인되었다.

    지장전에는 주존인 地藏菩薩坐像을 비롯해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십왕상, 판관, 귀왕, 동자, 사자 등 총 21구의 목조각상이 남아 있는데 기문에 의하면 23구의 조각상이 만들어 지고 있다. 이 조각상들은 뛰어난 조각솜씨로 예술성이 뛰어나며 시왕상에서 일부 복장물이 확인되었으며, 조상 기문도 남아 있어서 절대연대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목조 지장보살삼존상및 시왕성 일괄에 대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726호로 승격 지정고시했다.(2011. 11. 2)

    보물 제1726호 ‘화순 쌍봉사 목조 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和順 雙峰寺 木造 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은 조선시대 17세기 중ㆍ후반 활발한 조각활동을 펼친 조각승 운혜(雲惠)의 불상 양식 연구와 운혜파 조각승의 조각활동 및 경향을 시기별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쌍봉사 지장 시왕상 일괄은 ‘조성발원문’과 ‘능주지 사자산 쌍봉사 제전기문집록', ‘쌍봉사사적기’ 등을 통해 1667년 운혜파 조각승들이 참여해 제작한 불상이다.

    불상 표면에는 과거에 시문된 고색창연한 채색문양이 잘 남아 있다. 회화와 조각이 잘 어우러진 예배상으로 조선 후기 채색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수조각승 운혜는 17세기 전반을 활약했던 수연(守衍)과 영철(靈哲)의 계보를 잇는 조각승이다.

    입체적이고 건장하면서도 중량감넘치는 조각을 구사했으며 쌍봉사 지장시왕상에서도 이런 조각 경향이 잘 나타나 있다.

    명계조각(冥界彫刻)이라는 종교적 엄숙성과 이 시기 불교미술의 특징인 대중적 평담미를 가장 잘 표현했다.

    쌍봉사 지장전에는 주존인 지장보살을 비롯해 현재 21구의 목조각상이 있다. 지장보살은 좌상이고 시왕은 의자에 앉아 있으며 나머지 상들은 모두 입상이다.

    지장보살은 팔각대좌 위에 앉아 있고 머리는 민머리이며 녹색이다. 이 민머리 부분을 제외한 형식은 불상과 같다. 이마에는 백호가 있고 목에는 삼도가 있다.

    법의는 통견이며 옷주름은 극락전의 아미타여래좌상과 같은데 다만 어깨선이 직각이 아니라 완만한 호형으로 다를 뿐이다. 손은 별주하여 손목에 끼워 넣었다. 손에는 지장보살의 심볼인 석장이 없으며 불상과 같이 미타정인을 취하고 있다.

     

     

     

     

    회화와 조각이 잘 어우러진 예배상으로 조선 후기 채색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운혜는 17세기 전반을 활약했던 수연과 영철의 계보를 잇는 조각승으로, 입체적이고 건장하면서도 중량감 넘치는 조각을 구사했으며 쌍봉사(雙峯寺) 지장시왕상에서도 이런 조각 경향이 잘 나타나 있다.
    명계조각(冥界彫刻)이라는 종교적 엄숙성과 이 시기 불교 미술의 특징인 대중적 평담미를 가장 잘 표현했다는 평이다.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단아한 다포계 건물로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66호이다. 원래 극락전에는 아미타삼존불로서 중앙에 아미타여래좌상과 좌측에 관세음보살, 우측에 대세지보살이 입상으로 봉안되어 있었으나 1989년 8월경 양 협시불을 도난당하였다. 불상의 재료는 나무이며 자세는 좌상이다. 최근에 개금하여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상호는 넓적하여 사각형에 가까우며 등이 약간 굽어 있다. 머리는 나발이 촘촘하고 육계는 정상에 원통형(지금 12㎝, 높이 4.5㎝)으로 처리하였으며 머리 중간에 반월형의 계주(길이 15㎝, 높이 3㎝)가 있다. 백호는 이마에서 양미간 사이로 내려와 있다. 눈은 거의 일자형으로 반개하였으며 코는 반원통형에 가깝고 콧볼의 상단만 약간 파서 형식적으로 처리하였다. 인중은 뚜렷하고 길며 옆으로 수염이 그려져 있다. 입은 호형이고 양 입가는 약간 눌러져 있어 미소를 머금고 있는 듯하다. 눈썹과 눈은 먹선으로 그렸고, 입은 붉은 칠을 하였다. 턱밑에는 1조의 음각선을 호형(弧形)으로 넣어 양감 있게 처리하였다. 귀는 크고 두툼하며 귓볼이 뭉퉁하다. 목은 짧으며 삼도가 얕게 파여 있다.

    법의는 통견이며 두툼하고 의문은 뚜렷하다. 왼쪽 어깨에서 내려온 법의자락은 수직으로 흘러 손목까지 감싸고 있으며, 승각기는 없으며 군의는 가슴밑에 까지 올라와 있다. 군의의 상단 옷주름은 규칙적으로 주름잡아 앙련형으로 장식화한 형식으로 처리하였고 그 밑에 1조선의 가는 의대가 돌려져 있을 뿐 띠매듭은 없다. 복부의 의문은 넓은 U자형이 2조선 양각되었고 발목에서 흘러 내린 의문은 양 무릎 밑까지 넓게 펴져 있다.

    수인은 미타정인으로 오른손을 올리고 왼손을 내려서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 중품하생인을 결하고 있다. 앉은 자세는 오른다리를 왼다리 위에 걸쳐 항마좌를 취하고 있으며 허리는 짧고 통통하다. 어깨의 너비는 85㎝로 무릎너비 115㎝에 비할 때 너무 넓어 둔중한 감을 풍기고 있다. 원래의 대좌는 현재 순천 송광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불상의 조성시기는 대웅전에 있는 석가여래좌상과 조각형식이 거의 흡사하여 같은 사람에 의하여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파악되며 기록에도 1694년(肅宗 20)에 조성된 것으로 되어 있다.

    불상의 하면은 목판으로 마무리하였는데 가운데에 가로 21㎝, 세로 17.5㎝ 크기의 장방형 복장공이 뚫려 있다. 안에서 蛇羅尼 3종류, 실 꾸러미 3개, 喉鈴 1개가 수습되었다. 대좌의 상대 밑부분에 墨書되어 있는 명문(大明正統崇禎后僞王康熙三十三年甲戌年), 2종류의 발원문(극락전 삼존불 발원문, 극락전과 삼층전 동시에 만들고 쓴 발원문)을 통하여 조성시기는 1694년(숙종 30, 康熙三十三年甲戌年)임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석가여래좌상과 양식이 거의 흡사한데 다만 크기와 수인만 다르다. 상의 전체 높이는 165㎝로 대형에 속하며 조각기법이 우수한 편이다. 그리고 불상의 조상기문과 묵서명이 남아 있어서 불상의 명칭, 조성시기, 조성에 참여하였던 모든 사람들을 알 수 있어서 그 사료적 가치가 높다.

     

     

     

    극락전벽의 지옥도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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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지스님 거처 육화당

    육화당앞에 임자 없는 흔들 의자는 세월의 무상함과 인생의 허무함을 새삼 느끼게 했다.

    쌍봉사의 정지(부엌)

     

     

     

     

     

     사찰에서 밖으로 나갈때에는 해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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