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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정말 아는 것이다.
    ♤좋은글 2012. 2. 28. 07:24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정말 아는 것이다.


    옛날 한 시골 서당의 훈장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 훈장의 실력이 좀 모자랐던지 모르거나 좀 애매한 구절이 나오면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하루는 또 그렇게 어려운 구절을 만나서 얼렁뚱땅 얼버무리고 넘어가려는데 마침 제비가 처마 밑에 앉아서는 이렇게 지저귀고 있습니다.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제비의 지저귐의 비유-

    이 소리를 들은 훈장이 얼굴을 벌겋게 하고는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랐다 합니다.

    그 뜻이 심상찮거든요.


    제비는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읊었던 것입니다.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즉,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정말 아는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어느 세상에나 있는 양심불량(良心不良)의 문제를 제비 울음소리에 빗대어 만든 절묘(絶妙)한 이야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는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Apollo 신전(神殿) 현관 기둥에 새겨진 유명한 말입니다. 디오게네스는 이것을 그리스 7현인(賢人)의 한 사람인 탈레스가 쓴 것이라고 하였지만, 같은 7현인의 한 사람인 스파르타의 킬론이 한 말이라고도 하고, 다른 현자의 말이라고도 하여 일정하지 않습니다.


    Socrates는 인간의 지혜가 신에 비하면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며, 무엇보다 먼저 자기의 무지(無知)를 아는 엄격(嚴格)한 철학적(哲學的) 반성이 중요하다고 하여 이 격언(格言)을 자신의 철학적(哲學的) 활동의 출발점(出發點)에 두었습니다. 자신을 아는 것은 옛날부터 무척 어려운 일이었던 모양입니다. 사람에게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탈레스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어려운 일이며, 쉬운 일이라면 남을 충고하는 일"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희극작가 Menandros는 오히려 ‘남을 알라’고 하는 쪽이 더 유익하다고 비판하였습니다. 키케로는 Socrates와 마찬가지로 외적인 신체가 아닌 자기의 마음을 아는 것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더군다나 지천명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공자(孔子)는 군자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논어(論語)에


    孔子曰,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   (공자왈, "불지명 무이위군자야, 불지례 무이립야, 불지언 무이지인야"). 즉, 천명을 모르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모르면 입신할 수 없으며, 말을 모르면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


    또 손자(孫子)는 모공편(謀攻篇)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知彼知己 百戰百勝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 아니라 知彼知己 百戰不殆 (지피지기 백전불태)가 옳다 하였습니다. 적군에게 이기는 방법에는 여러 승리 방법이 있으나 그 중 최선의 승리는 아군의 피해가 전혀 없는,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계략(計略)으로 적군의 전의(戰意)를 꺾어야 할 것을 지적하였다.


    즉, 손자(孫子)는 결코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것을 상책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은, 상의 상책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서 적의 군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상의 상책이다." 그러므로 으뜸가는 군대는 계략으로 적을 친다.


    법구경(法句經)에는 다음과 같은 부처님 말씀이 있습니다.

    以眞爲僞(이진위위)하고 以僞爲眞(이위위진)하면

    是爲邪計(시위사계)니 不得眞利(부득진이)요

    知眞爲眞(지진위진)하고 見僞知僞(견위지위)하면

    是爲正計(시위정계)니 必得眞利(필득진이)니라.


    참된 것을 거짓이라 하고, 거짓을 참된 것이라 하면

    이것은 삿된 생각이니, 참된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고,

    참된 것임을 알고 참되다 하고, 거짓을 보아 거짓인 줄 알면

    이것은 바른 생각이니, 반드시 참된 이익을 얻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가치(價値) 기준(基準)이라는 것은 선(善), 악(惡)으로 나뉘고, 나아가서 미(美)와 추(醜), 정과 사로 구분됩니다.


    물론 그러한 기준들이 때와 장소 그리고 시대에 따라 각각이 처한 입장이 다른 만큼 때로는 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가변적(可變的)인 상황(狀況)을 초월하여 언제나 변하지 않고,

    변할 수도 없는 우리 인간 사회의 가치 기준도 분명히 존재 할 것입니다.    

    -망해사 혜학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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