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일주문의 호랑이 거시기를 찾아서 ....
    ♠寺刹巡禮 2012. 2. 19. 12:31

    일주문에 호랑이 생식기를 배치한 이유는?

    테마(Thema)가 있는 사찰순례(8  창원 불곡사)

     

     불곡사의 창건 유래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으나, 1929년 우담화상이 옛날 절터에 드러나 있던 비로자나불상(보물 제436호)을 파내어 비로전에 모시고 다시 세웠다. 절을 다시 세우기 전 불곡사 뒤쪽은 가음정과 대방동, 사파정동을 왕래하는 길이었는데, 이 곳 길가에 불상과 무수한 기와조각이 흩어져 있어 이 곳을 부처골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절이름도 부처골을 한자로 옮겨 불곡사라고 쓴 것이라 여겨진다. 현재 이곳 불곡사에는 비로전을 비롯하여 일주문(지방유형문화재 제133호)과 탑재, 광배편, 나무아미타불비 등이 있다.

     

     

    불곡사 일주문불곡사 일주문(지정번호 경남 유형문화재 제133호)

    소재지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대방동 1036  / 1974년 지정

    불곡사 일주문 은 경상남도 지방유형문화재 제133호로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대방동에 위치해 있다. 불곡사 일주문은 원래 창원부 객사의 삼문(三門, 대궐이나 관청 앞에 있는 세 개의 문)이었다고 한다.

    이 삼문은 1822년 웅천향교로 옮겨졌다가 1943년에 우담화상이 이곳 으로

    옮겨 세웠다고 전해졌다.     

    일주문의 기와에 ‘강희 24년 을축 .........’이라 새겨진 글귀로 보아 조선 숙종 11년(1685)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규모는 정면 3칸으로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을 올렸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서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의 전각으로 일주문으로서는 규모가 큰 편이다.

    기둥은 4개를 일열로 배치하고 창방과 평방을 얹고 동서 기둥 위에 각 한 마리씩의 용두와 중간 두 기둥 위에 남북으로 각각 두 마리씩의 용두를 얹어 6용을 7m의 원통 소나무로 입체감 있게 조각하였다.

     

     

     

     

    호랑이가 무섭다기 보다는 친근감을 주고 있어 사찰순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호랑이이다.

     

     

     

     

     

    용과 호랑이를 배차한것은 마치 이솝우화에나 나올듯한 이야기이다.

     

     

     

     

     

     

     

    거북과 용의 배치는 물과 관련이 있다고 볼수는 있겠지만....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불곡사의 보물은 이것이 아닌가 한다. 호랑이의 생식기를 평보위에 배치한 의미는 무엇일까?

    다산을 의미 하는 것인지 아니면 비음산이 음의 기운을 하고 있기때문에 양의 기운을 배치 한것인지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불곡사 일주문은 대단히 보존 가치가 있고 다른 사찰 일주문에서 찾아 볼수 없는 조각을 잘 관리 하고 보존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불곡사의 호랑이를 찾아서 봄이 되면 어린이들 손잡고 도시락 싸서 소풍가는 묘미 또한 참 교육이 아닐런지....

     

    석탑의 기단부는 거북이 형상같이 판단되나 형체를 알 수 없이 세월의 인고에 달아져서 있으며 탑 또한 훼손 등이 심한 상태로 있어 안타깝다. 석탑 형식 또한 특이한 형식을 보여주고 있어 보존하고 관리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귀중한 우리것은 한번 훼손 되면 다시볼 수 없으며 다시 그렇게 만들수는 없다. 조상들의 혼이 담김우리의 예술품인걸....

     

    세음루

     

    일주문을 지나면 중정 입구에 2층 누각이 세워져 있는 것이 세음루이다.

    세음루는 1929년에 세워진 것으로 2003년 새로이 중창한 것이며 정면 3칸에 측면 2칸으로 여덞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을 올렸다.

    공포는 익공계이며 처마는 겹처마에 2층에는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기단은 자연석으로 놓은 다음 다듬돌 주초석 위에 1층에는 3분의1 정도는 돌기둥으로 하고 그 위에 다시 나무기둥을 올려놓았다.

    비로전 앞에는 세월을 말해주는 고목(비자나무 인듯)가 두그루 덩그러니 서있다.

    마치 괘불을 걸어두고 야단법석을 펼치던 당간지주를 연상하고 나무에는 세월 만큼 이끼가 끼어 오는 사람을 세월만큼이나 그대로 그렇게 맞이하고 있었다.

    비로전

    창원에서 최초로 보물로 지정된 석조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있는 전각이 비로전이다.

    규모는 정면 3칸에 측면 2칸으로 팔작지붕을 올렸으며 공포는 익공계이며, 처마는 겹처마에 단청이 되어 있다.

    기단은 다듬돌로 놓고 자연석 주초석 위에 원주기둥을 세웠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면 마룻바닥을 깔고 중앙에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석조비로자나불이 봉안되어 있다.

    불곡사 좌상(보물 제436호)
    현재 이 불상은 불신과 대좌가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불상은 육계가 분명한 나발, 즉 곱슬머리에 얼굴은 둥글고 단아하다. 백호는 눈썹 사이로 약간 내려왔으며, 코 밑의 인중은 약간 두드러져 입까지 연결되었다.

    목은 삼도가 뚜렷하고 두 손은 가슴 앞에서 포개어 전형적인 지권인(智拳印 : 왼손 집게 손가락을 뻗치어 세우고 오른손으로 그 첫째 마디를 쥔 모양인데, 오른손은 불계를 표시하고 왼손은 중생계를 표시하는 것으로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고 일체의 깊은 뜻을 나타냄)을 하고 있다. 다리는 왼쪽 다리 위에 오른쪽 다리를 포갠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자세이다. 어깨와 가슴이 단정한 인간적인 신체 형태에 걸쳐진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가슴이 넓게 노출되었고 팔과 다리 등에 접혀진 옷주름은 얇게 빚은 듯한 평행 계단식 옷주름이다.

    팔각대좌는 상대, 중대, 하대로 구성되어 있다. 상대에는 장식이 있는 중판앙연이 새겨져 있고 중대에는 팔각 각 면마다 원광을 갖춘 좌상이 표현되어 있다. 하대인 이복연석 밑의 지대석 각면에는 안상 안에 사자 7구와 화변을 조각하였다. 이 불상은 9세기 후반 통일신라 불상으로 850년에서 900년 사이에 조성된 불상으로 영주 부석사, 대구 동화사 등에 안치한 비로자나불과 같은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불상높이는 101cm, 대좌높이 89cm이다. 이곳 비로자나 불상은 창원지역의 최초의 보물로 1966년 제 436호로 지정되었다.


    다리는 왼쪽 다리 위에 오른쪽 다리를 포갠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자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깨와 가슴이 단정한 가운데, 걸쳐진 통견(通肩)의 법의(法衣) 사이로 가슴 부위가 넓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팔과 다리 등에는 얇게 접힌 옷 주름을 볼 수 있습니다.

    불대좌 조각상과 광배 일부
    불대좌는 전체적으로 팔각형이며, 상대석, 중대석, 하대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상대석에는 위로 향한 중첩된 연꽃잎 문양이 새겨져 있고, 중대석에는 팔각 면마다 원광을 갖춘 좌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하대석에는 상대석과 대칭되게 아래로 향한 연꽃잎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또한, 지대석에도 면마다 안상이 새겨져 있고, 그 안에 사자 등이 새겨져 있습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우나 불상의 한 쪽 옆에는 광배 조각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아마도 이 불상의 광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쉽게도 이 광배는 파손이 너무 심해 원래의 모습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불상의 몸체 뒷면을 살펴보면 광배를 꽂는 데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큰 구멍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광배가 완전하여 불상 뒷면에 제대로 자리했다면 지금의 모습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장엄해 보였을 것입니다.

     

     

     

     

     

     

     

     

    명부전

    비로전 오른쪽 관음전을 마주보고 세워진 명부전은 1929년 세워져 2003년 중창되었다.

    규모는 정면 3칸에 측면 2칸으로 맞배지붕을 올렸다. 공포는 익공계이며, 처마는 겹처마에 단청이 되어 있다.

    주초석은 둥근다듬돌을 놓고 원주기둥을 세운 다음, 정면 어칸에 3분합 빗살무늬문을 달고 좌우 협칸에는 2분합 빗살무늬문을 달아 출입을 할 수 있게 하였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불단을 조성하고 지장보살을 주존불로 하여 좌우 보처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있다.

    지장보살은 연좌 위로 왼쪽 다리는 올려놓고 오른쪽 다리는 내린 상태로 앉아 있으며, 왼손에는 보주를 올려놓고 오른손에는

    석장을 쥐고 있다. 삼존불 뒤로는 후불탱을 봉안하고 후불탱 좌우에서 시작하여 좌우측 벽면까지 시왕탱을 봉안하였다. 

     

     

     

     

    관음전

    비로전 왼쪽에 자리한 1996년 중건된 관음전에는 금동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千眼觀世音菩薩)을 봉안하고 있다.

    규모는 불곡사에서 가장 크며, 정면 5칸에 측면 3칸으로 열덞 팔자(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을 올렸다. 공포는 익공계이며 처마는 겹처마에 단청이 되어 있고, 벽면에는 팔상도를 그렸다.

    정면 어칸은 3분합 팔각문을 달고, 좌우 협칸에는 2분합 팔각문을 각각 달아 출입을 할 수 있게 하였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불단을 조성하고 금동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을 봉안하였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 또는 천비(千臂)천안관음이라고도 하며, ‘천’은 무량, 원만의 뜻으로 ‘천수’는 자비의 광대함을, ‘천안’은 지혜의 원만과 자재함을 나타낸다. 천 개의 손바닥 하나하나에 눈이 있어, 모든 사람의 괴로움을 그 눈으로 보고, 그 손으로 구제하고자 하는 염원을 상징한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 좌우에는 남성동자입상과 해상용왕입상이 협시하고 있으며, 불화는 후불탱과 신중탱, 천수관음도, 지장탱을 봉안하고 법고, 범종이 함께 봉안되어 있다.

     

     

     

    칠성각

    비로전 왼쪽에 위치한 칠성각은 1929년 중건하여 1985년 새로이 중창하였다.

    규모는 정면 3칸에 측면 2칸으로 맞배지붕을 올렸다. 공포는 익공계이며 처마는 겹처마로 단청이 되어 있다.

    기단은 자연석 돌로 쌓았으며, 주초석은 기둥과 같은 크기의 둥근 다듬돌을 사용하여 원주기둥을 세웠다.

    정면 어칸에는 2분합 팔각문을 달고, 좌우 협칸에는 2분합 띠살무늬문을 달아 출입을 가능하게 하였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면 1965년에 조성한 칠성탱과 산신탱, 독성탱을 봉안하고 있다. 칠성탱은 칠성여래 좌우에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협시하고 있으며, 독성상은 오른쪽 무릎 위에 염주를 쥔 오른손을 올려놓은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산신탱은 포효하고 있는 호랑이 등위에 산신이 앉아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불곡사 창건비

    비로전 앞 마당에는 형체를 알수 없는 기단위위의 석탑이 훼손된 상태로 방치 되어 있고 법종루에 범종 역시 땅에 내려져 있어서 사진 촬영을 해지 못했다.

    특히 불곡사의 우물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그곳의 우물을 마시면 모든병이 치유된다는 유래가 있는 우물이라고 전합니다.

     

    불곡사에 대한 의미가 부여 된 하루 였다.

    주차장에 차량을 진입 하다가 만차가 된것 같아 길도 좁고 해서 뒤도 안보인 상태에서 후진 하다가 그만 어느보살님이 운전하는 그랜져와 아침부터 불륜의 키스를....

    아이쿠 무슨난리일까.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아주머니에게 정중하게 죄송합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어떻겠냐구 물으시니 인상을 한번 쓰시더니 이정도는 괜찮을것 같다구 하더군요. 다시 한번 보살님께 지리를 잘몰라 죄송합니다라고 하고 차를 빼시라고 하여 주차를 하고 보살님은 불곡사 아래로 일을 보러 가시고 난 불곡사 일주문을 향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불곡사 석조비로자나불이 돌봐 주신것인지?, 부처님이 돌봐 주신것인지?, 아님 일주문의 호랑이, 거북이, 용이 돌봐 주신것인지?

    아님 내 인생이 거시기 해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을 추수리고 오늘의 목적인 무불스님 천일 법문 출판회를 위하여 마산 아리랑호텔로 향했다.

    사전에 시간이 남아서 여유가 있으면 인근을 더 들러보려 했는데 그 접촉사고로 인해 찜찜해서 마산역에서 시장 구경을 하면서 시간을 기다리는 불곡사와 나와의 인연이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