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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월매가 제일 먼저피는 금둔사를 찾아서....
    ♠寺刹巡禮 2012. 3. 2. 07:44

     

    테마(Thema)가 있는 사찰순례(9-금둔사)

     

     

     

     

     

    일주문 안에서 보는 세계일화라는 편액을 보니 무불스님이 선서화 시연회시 쓰시던 기억이 났다.

     

     

     

    순천시 전통사찰 제67호 천년고찰 금전산 금둔사(金芚寺)

    금둔사(金芚寺)는 해발 679m의 금전산 서쪽에 위치한 금둔사(金芚寺)는 신동국여지승람(新東國與地勝覽) 낙안조(樂安條)의 기록과 보물 제946호인 금둔사지석불비상과 제 945호인 금둔사지 삼층석탑으로 보아 금둔사의 창건연대를 통일신라때로 추정해오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순천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로 지층 120∼150㎝에서 창건 당시 건물지 지층을 발견했으며, 유구층에서 4동의 건물지를 확인했고, 초석·기단·연화문 숫막새·주름문늬병 등의 유물을 발굴했다. 이 유물들을 토대로 금둔사(金芚寺)는 9세기경 창건된 사찰임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이후 1979년 7월 10일 완전 도굴되어 흩어져 있는 삼층석탑을 복원하고 1984년부터 지허 선사가 대웅전과 일주문 선원, 약사전, 요사채, 홍교 등을 복원 중창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금둔사(金芚寺)는 백제 위덕왕 때, 승려인 담혜화상이 554년 왕의 명으로 8명의 승려와 함께  왜국(倭國)에 파견되어 불교를 전파하고, 왜인 승려 10여 명을 양성했으며, 나중에 귀국하여 금둔사(金芚寺)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7세기 후반에는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절을 중창하고 부근에 금강암(金剛庵)을 지어 머물렀다고 하며, 9세기 초반에는 철감국사(澈鑒國師)와 그의 제자인 징효대사(澄曉大師)가 절을 중창하고 동림선원(桐林禪院)을 세워 육조의 선풍을 널리 알렸다고 하지만 백제 위덕왕 시절의 창건설과 의상대사의 중창건은 어디까지나 설화이거나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다만 신동국여지승람(新東國與地勝覽) 낙안조(樂安條)의 기록과 절 뒤편의 금둔사지석불비상과 금둔사지(金芚寺地) 삼층석탑으로 보아 금둔사(金芚寺)의 창건연대를 통일신라때로 추정해왔다.

     

     

     

     

     


     

    금둔사지삼층석탑 보물제945호

    금둔사지삼층석탑은 낙안면 소재지에서 북으로 약 2㎞ 떨어진 금전산(金錢山) 서록폐사지내(西麓廢寺址內)에 위치하고 있다.

    석탑의 후편(동편)에는 석불입상(石佛立像)이 있으며 이들은 서로 연관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시대로 추정)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금전산(金錢山)에 금둔사(金芚寺)가 있다.」고 하여 이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탑의 전면(全面)(서편(西便))으로는 배례석(拜禮石)이 있는데 각면에는 2추(樞)씩의 안상(眼像)이 조각되었다. 도괴되어 있던 것을 1979년 7월 10일 복원하였다.


    구조형식을 살펴보면, 2중기단(重基壇)의 3층석탑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양식(典型樣式)을 따르고 있다. 기단부(基壇部)에는 하층기단(下層基壇) 면석(面石)둘레에는 장대석(長臺石)8매를 돌려 지대석(地臺石)을 이루고 있다. (문경의 봉암사(鳳岩寺) 3층석탑에서도 이 예가 보임)) 하대중석(下臺中石)은 하대석(下臺石)과 한 몸으로 조성(造成)되었는데 5매로 구성되었고 각 면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 1주(柱)씩이 모각(模刻)되었으며, 하대갑석(下臺甲石)은 4매로 구성되었으나 부분적으로 파손되었으므로 상면(上面)에는 원호(圓弧)와 각형(角形)의 상대중석(上臺中石)받침이 각출(刻出)되었다. 상대중석(上臺中石)은 4매로 구성되었고 각 면에는 우주와 탱주(撑柱) 1주(柱)씩이 모각(模刻)되었으며 이들 기둥사이 즉 8면에는 8부중상(部衆像)을 강하게 양각(陽刻)하였다.


    상대갑석(上臺甲石)은 2매석으로 구성되었으며 하부에는 부상(副橡)이, 상부에는 각형(角形) 2단의 탑신(塔身)받침이 각출되었다. 탑신부(塔身部)에는 탑신석(塔身石)과 옥개석(屋蓋石)은 각각 1매석(枚石)으로 되었으며, 1층탑신(層塔身)은 우주(隅柱)가 모각(模刻)되었고 전(前) 후면(後面)에는 문비(門扉)와 자물쇠가 조각되었으며 좌우면에는 다과(茶菓)를 공양하는 공양상(供養像)이 양각(陽刻)되어 특이한 수법(手法)을 나타내고 있다. 2, 3층탑신(層塔身)은 우주만 모각(模刻)되었으며, 각 층(層) 옥개석(屋蓋石)은 층급(層級)받침이 각각 5단씩이며 낙수면(落水面) 하단선(下端線)은 수평(水平)으로 되었다.

    낙수면은 평박(平薄)하여 완만(完滿)하게 경사지었으며 네 귀에서 반전(反轉)이 강하게 나타나 경쾌한 느낌을 준다. 상면에는 각형(角形) 1단의 탑신받침이 있다. 상륜부(相輪部)에는 현재 3층 옥개석(屋蓋石) 정부(頂部)에 찰주공(擦柱孔)이 보이며 그 이상은 전실(全失)되었으나 암자 앞마당에 복발(覆鉢)과 앙화편(仰花片)으로 추정되는 부재(部材)가 있는 바 이 석탑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복발(覆鉢) 융기(隆起)된 2조의 횡선(橫線)이 각출되고 4면에 연화문(蓮花文)이 양각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전체 높이는 4m로 통일신라시대 전형양식을 갖추고 있는 9세기경의 작품으로 특히 1층탑신 좌우면에 불상을 향하여 다과(茶菓)를 공양하는 공양상(供養像)이 양각(陽刻)되어 있어 특이한 예(例)로 주목되며 각부의 비례(比例)도 좋고 조각수법이 세련된 수준급의 석탑이다.

     

    형체를 알수 없는 석조물이 금둔사지석불옆에 배치되어 있는데 거북모양인듯 보였다.

     


    금둔사지석불 보물제946호

    금둔사지석불은 낙안면(樂安面) 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約) 2km 떨어진 금전산(金錢山) 서록(西麓) 폐사지내(廢寺址內)에 있다. 불상(佛像)의 후면(後面)은 암반을 배경으로 하고 후면(서편(西便))에는 약 5m 떨어져 삼층석탑과 배례석(拜禮石)이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금전산(金錢山)에 금둔사(金芚寺)가 있다」고 하여 이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불상은 신부(身部), 보개석(寶蓋石), 대좌석(臺座石)이 각각 분산되어 있었던 것을 1979년 7월 복원하였다.


    구조형식 살펴보면 보개(寶蓋) 대좌(臺座)를 갖춘 이 석불입상은 독립상이 아닌 장방형(長方形)의 대형 판석(板石) 전면에 불상이 양각(陽刻)되어 있어 마치 대형(大型) 비상(碑像) 형태로 되었다.

    보개는 석탑의 옥개석(屋蓋石)과 같은 형태로서 하부는 2단의 각형(角型) 층급(層級)이 있고 저부(底部)의 후면쪽으로 이 판석(板石)을 끼울 수 있는 홈을 파서 불상 판석을 끼웠다. 낙수면(落水面)의 하단선(下端線)은 수평(水平)이며 낙수면도 완만한 경사에 네 귀에서 가볍게 올려 전면(前面) 석탑 옥개석과 동일한 양감(量感)을 준다. 정상(頂上)에는 2단의 각형(角形) 층급(層級)이 각출(刻出)되었다.


    전면의 불상은 원만한 상호이며 소발(素髮)의 머리에 육계(肉계)가 낮게 솟았고 이마에 백호공(白毫孔)이 있다. 목에는 3도(道)가 있으며 두광(頭光)이 선각(線刻)되었다.

    단아한 모습과 우아하게 굴곡진 양감(量感)을 보이는 신체이며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의습(衣褶)은 평행단상(平行段狀)이나 형식화(形式化)되었다. 하부의 군의(裙衣)는 무릎 부분에서 1단이 겹쳐있고 양 발끝이 노출(露出)되었다.

    수인(手印)은 양손을 가슴위로 들어 전법인(轉法印)을 결(結)하고 있다.

    후면(後面) 상부(上部)에는 명문(銘文)이 음각(陰刻)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나 풍화(風化)가 심하여 판독이 어려운 상태이며 상단(上端) 중앙부에는 연화좌(蓮花座)에 무릎을 꿇고 지팡이를 든듯한 보살상(菩薩像)으로 추정된다.

    하단부에는 코끼리상이 약하게 조각되어 있다. 대좌 앙련석(仰蓮石), 복련석(覆蓮石) 및 방형지대석(方形地臺石)을 갖추고 있으나 중대석(中臺石)이 있었는지의 여부는 아직은 확인되지 못하였다.


    현고(現高) 3m, 입상고(立像高) 2m, 삼층석탑과 나란히 서 있는 이 석불입상은 비상형태(碑像形態)로 조성된 특이한 수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판석 후면에 코끼리상과 명문이 조각되어 있는 것과 보개석(寶蓋石)의 수법 등도 희귀한 예이다. 장방형(長方形) 판석에 양각되었으며 양감이 풍부하고 세부표현이 정교하나 다소 딱딱해진 인상, 투박한 옷자락 등의 표현으로 9세기의 현실적인 사실주의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불조마애여래좌상군

    선방을 지나면 세갈래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길 끄트머리에 바위를 가득  메운 조그만 불상들의 보금자리가 나온다. 바로 근래에 조성한 불조마애여래좌상군이다.

    이 마애불(磨崖佛)은 불조전(佛祖殿)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곳에는 과거의 칠불(七佛)과 미래의 부처인 53불을 포함 60불의 불상을 모셨다.

    과거7불은 우주가 탄생하여 없어질 때까지 부처가 한명씩 나타난다고 하는데, 석가여래(釋迦如來)가 그 7불의 마지막이다. 또한 미래에는 미륵불(彌勒佛)을 비롯한 53분의 부처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곳의 마애불(磨崖佛)은 그들 부처를 모두 표현한 것이다.

     

    은은하게 미소를 머금은 석조마애비로사나불(石造磨崖毘盧舍那佛)과 산신각


    약사전

    요사에서 좌측(3층석탑, 석불비상 방면)으로 가면 조그만 당집 같은 약사전(藥師殿)이 나온다.

    이곳은 동방정토(東方淨土)의 주인인 약사여래(藥師如來)의 거처로 약사여래불상(藥師如來佛象) 대신 약사여래(藥師如來)를 그린 낡은 불화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금둔사(金芚寺)는 홍매로 유명하나 백매(白梅)와 청매(靑梅)가 더 많은데 100그루쯤 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매화는 백매화와 청매화인데 꽃잎이 희거나 연분홍이다.

     

     홍월매 금둔사의 얼굴마담이지요

     

     

     

    백매와 청매의 구분은 꽃받침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백매는 설매(雪梅)라고도 하는데 꽃받침이 팥죽색이며  청매는 꽃받침이 푸르고 연한 녹색이어서 구분이 된다

    금둔사(金芚寺)에서는 홍매와 백매, 청매가 차례로 피며 홍매가 지기 시작할 무렵 백매와 청매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때문에 긴 기간동안 매화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금둔사(金芚寺) 매화는 순수한 한국 토종이라서 흔히 보는 매화나무보다  꽃잎이 더 날렵하고 얇으나 꽃이 듬성듬성하게 피는 것이 흠이다.

    요즘 농장에서 재배하는 매화나무는 열매인 매실을 얻기 위하여 대개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다.

    일본 매화는 그윽한 향은 없으나 열매가 많이 달리기 때문에 매실 수확을 위하여 많이 재배하며 우리 토종매화는 향이 좋은 대신 열매가 적게 달린다

    ※ 국내의 매화는 3종류로 구분한다.

    1) 백매화 : 매화꽃은 연분홍빛을 띠는 하얀색이고  꽃받침이 팥죽색

    2) 청매화 : 꽃은 하얀색이나 꽃받침이 연한 초록색

    3) 홍매화 : 꽃도 붉고 꽃받침도 붉은색

       흑매화 : 홍매화품종인데 붉은색이 진하다 못해 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설법전 담장에 놓아둔 찻잔

     용도와 이름을 알수 없는 특이한 옹기

     산신할아버지

     담장에 감추어 보일듯 말듯한 수줍음을 간직한 설법전

     이곳 저곳이 발굴을 해서 인지 파헤쳐져 있었다. 아쉬운점은 발굴된 유물의 사진을 촬영해서 사찰에서 보여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수행처

     

     돌담과 시누대길

     설선당과 점화실 현판이 2개 함께 걸려 있는 모습이 특이 했다.

     창고(보일러실) 문을 열어보니 보일러가 설치 되어 있었다.

     보일러실이 아니게 보이면서 특이한 목조 건축물이였다.

     차발효 단지

     담장너머의 낙안뜰

     

     백월매 봉우리

    범종각

     

    부푼맘으로 아침부터 분주하게 카메라를 메고 2월 19일 부터 홍매화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개화 한다는 순천 금둔사를 향해 새벽을 가르면서 태백산맥의 조정래길을 상쾌한 기분으로 달렸다.

     

    금둔사의 얼굴마담인 이분을 만나러.....

    금둔사의 홍매화. 매화는 한꺼번에 와르르 피지 않고 한 송이, 두 송이씩 더디게 핀다.

    봄이 한 걸음, 두 걸음씩 더디게 찾아오는 것처럼...

    날씨가 갑자기 몇일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 피우던 홍매화까지 말라버리고 말았었다.

    홍월매, 백월매 봉우리가 처녀들 젖가슴 처럼 터질듯 말듯 자태와 향을 풍기기 위하여 그렇게 진통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화꽃은 보물찾기하듯 한, 두송이만 볼수 있어 사찰 전체를 둘러 보기로 하고 대웅전을 들러 갔다.

     

    금둔사는 태고종인듯 태고선원이라는 푯말을 보았으며,

    금둔사는 조그맣고 아담한 절로 스님들은 참선과 농사를 반반씩 하며 수행하는 태고종 사찰입니다.

    글을 하얀 칠판에 써놓고 있었음을 보고 스님들을 뵙고자 할때는 핸드폰으로 연락하시라는 안내문을 보았다.

    대웅전 안으로 들어서니 다른 사찰에서 볼수 없는 다른 광경을 보았다. 전각이라고는 산신각이 외부에 홀로 배치되어 있으며 대웅전, 조사전, 지장전 등 전각을 별도로 배치하지 않고 대웅전 공간에 배치하여 모든 전각을 망라하는듯 하였다.

    목조 건축물이나 불상등에서는 옛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그렇게 홍월매와의 만남을 마치고 산문을 나왔다.

    3월 10일경이나 금둔사로 홍월매을 만나로 가면 아름다운 자태로 반겨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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