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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칠불과 석장승을 찾아서....
    ♠寺刹巡禮 2012. 3. 4. 16:07

    테마(Thema)가 있는 사찰순례(10-불회사)

    관음대참회도량 덕룡산불회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로서

    전남 나주시 다도면 마산리 덕룡산 중턱에 위치하야 마치 연꽃속에 들어앉은 형국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불회사는 처음에는 어귀의 돌장승과 아름다운 대웅전에 끌리며 여름철 비자나무와 측백나무숲이 주는 상쾌함과 봄비 내리는 날의 대웅전 뒤편의 춘백숲에서 느끼는 봄기운, 특히 5월쯤 연두빛으로 막 피어나는 둥그런 산 속에 들어 낮은 대웅전의 모습은 놓치기 아까운 봄 풍경이라 합니다. 절 주위의 전나무, 삼나무, 비자나무 등의 숲은 아늑한 분위기를 이루며 단풍이 가장 늦게 드는 지역으로 그 빛깔이 인근에서 가장 아름답고 오랫동안 볼 수 있는 곳으로 인근의 나주호와 더불어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덕룡산은 나주시 봉황면 만봉리와 다도면 마산리 사이에 위치하며 불회사를 감싸고 있는 주산이다.다. 특별히 모난 산세는 아니지만 첩첩이 둘러싸인 능선과 봉의 오르내림이 산의 깊이를 더 한다. 이 산줄기는 남으로 영암땅의 궁성산과 국사봉을 지나 월출산까지 이어지며, 호남의 오지를 형성한다.

    등산로는 2003년 잘 정비 되었으며 불회사 입구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등산로가 나 있다. 등산로는 불회사를 가운데 두고 연꽃 형상으로 되어 불회사 입구의 양쪽 등산로 중 한쪽 등산로를 선택하여 종주 할 경우 바로 건너편 등산로로 하산할 수 있다. 종주시간은 약 4~5시간을 예상하면 된다.

    중간 이정표는 두 곳이 있으며 하나는 불회사 남쪽 능선에 있어 불회사로 바로 내려오는 길, 또 하나는 불회사 북쪽 능선에 있어 우성목장으로 가는 길이다. 우성목장 쪽으로 약 100m지점에는 불회사 중창전설과 함께하는 일봉암자의 터만이 자리하고 있다. 서북방 아래 기슭에는 운흥사터가 있으며 눈에 띄는 유적은 입구에 불회사와 비슷한 석장승이 유일하다. 이 사찰은 조선 후기의 대선사이자 한국 다도의 중흥조인 초의선사가 출가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일주문이 아주 웅장하고 화려하다 천정에 우물반자를 한것을 보면 규모를 대충 짐작 할 만 하다.

    일주문 평보의 비천무 문양

    대들보의 부처님의 설법전경화

     

    부처님을 배를 타고 모셔오고 있는 그림

    호랑이가 보살을 물고 스님에게 오는 그림과 문수동자와 보현동자가 용을 타고 있는 그림

    일주문 대들보에 스님이 설법하는 모습

    일주문의 우물반자 천정 모습

    입구의 부도탑

    청엄당 부도는 최근에 조성된듯하며 조각이나 문양이 뚜렸하였다.

    범종형식의 부도는 글씨가 많이 마모되어 알수 없었으며,

     

    불회사의 석장승은 좁은 진입로 양쪽에 하나씩 두 기가 있다. 하원당장군이라 쓰여진 장승이 남자이고 주장군이라 쓰여진 장승이 여장군인데, 그 생김새나 표정이 아주 천연덕스러워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남장승은 선이 깊고 뚜렷하며 수염이 표시되었고, 머리 위에서는 상투를 튼 모습을 흉내내었다. 송곳니가 드러나고 몸체에는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란 이름이 새겨있다. 여장승은 남장승에 비해 표정이 온화하고 얕은 선으로 표현되었다. 미소 띤 얼굴에 몸체에는 ‘주장군(周將軍)’―원래 명칭은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이란 이름이 있다.

    두 장승 모두 크고 둥근 눈에 두리뭉실한 주먹코이다. 얼핏보면 제주도의 돌하루방을 옮겨다 놓은 것 같기도하고 나주 운흥사 석장승(중요민속자료 제12호)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숙종 45년(1719)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민간의 무속신앙과 불교신앙이 혼합된 상징적인 조형물로서 험상궂은듯 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모습이 친근감을 준다.

     

    덕숭산불회사 사적비

    보물 제1310호 나주불회사대웅전(羅州佛會寺大雄殿)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화려한 다포집이다. 외부 양식은 흔히 볼 수 있는 조선후기 양식에 속한 건물로 외부의 구조를 보면 창방위에 넓고 두터운 부재로 된 평방을 돌려 그 위에 공포를 짜 올렸으며 포작에 있어서는 외3출목, 내4출목으로 매우 화려한 장식을 보였다. 또 중앙칸 양 기둥 사이로 두 마리의 용을 조각하여 여의주를 물렸고 용머리는 밖으로 나왔으며, 그 꼬리는 건물 안쪽 대들보 밑에서 멎었다. 건물 내부를 보면 井자천장에 양쪽 대들보 사이로 상호 중앙을 향해 맞보도록 역시 두 마리 용을 목각으로 조각하여 좌측 용은 아무것도 물고 있지 않다. 한편 천정 주위에도 장식을 하였는데 22개의 각종 불교와 관계된 벽화(가로60㎝×세로60㎝)를 그려 대웅전으로서의 장엄미를 보였다. 또한 6·25 전에는 대웅전 창문이 현재의 빗살 문이 아니고 창문 중앙에 연꽃형을 양각한 문이었다고 전하고 있으나, 지금은 그 형태를 알 길이 없다. 건물 외형으로 보아 기둥의 배흘림이나 처마 끝의 반전으로 인한 아름다운 곡선미 등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영광의 불갑사 대웅전과 흡사한 점을 엿볼 수 있다. 『조선 사찰 사료』에 「백제 침류왕 원년에 호승 마라난타가 진나라로부터 와서 창건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마라난타가 침류왕 원년(384) 당시 백제 도읍지에 바로 입국한 것이 아니고 서남해안인 현재의 법성포에 도착, 불갑사를 창건하고 다시 나주에 불회사를 창건한 후 도성으로 돌아갔다는 일설도 있어, 이는 앞으로 불회사의 연혁뿐 아니라 백제의 불교 전파 경위를 밝히는데 매우 중요한 연구과제라 하겠다. 불회사는 고려 말 원정국사가 대대적인 중창을 하였으며, 현재의 건물은 정조 22년(1978) 무오 2월 큰 화재를 입어 그 후 순조 8년(1808) 무진 5월에 중건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속한 건물이라 추측되며, 1978년 목재와 기와를 바꾸어 말끔히 보수되었다.

     

    보물제1545호 나주불회사건칠비로나자불좌상

    불회사 대웅전의 주존으로 모셔진 이 불상은 고려 말 조선 초에 특히 많이 조성된 건칠불상이다.

    양식적으로 이 불상은 다소 길어진 신체의 비례와 형태, 작아진 얼굴, 착의형식, 옷 주름의 표현 등에서 고려후기 불상 양식을 계승한 조선 초기에 제작된 상으로 추정된다.

    특히 주먹 쥔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싸 쥔 형태의 지권인의 수인은 고려후기의 화엄경 변상도에 등장하는 비로자나불의 수인인데, 불회사 상은 현존하는 조각에서 이 수인이 표현된 이른 예일 뿐만 아니라 조각적으로도 우수한 불상이다.

     수미단이 화려하고 정교한 연화좌대로 구성이 되어 있어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특히 대웅전에는 닷집이 없는 것이 특색이였다. 왜 닷집을 하지 않았는지는 다시 공부를 해보아야 할 문제로 남겨 두었다.

     물고기를 용이 물고 있는 형상

    치레가 많고 잘 꾸밈이 돋보이는 집(3×3칸·8작·다포)! 1800(정조24·순조0)해로 세운 때도 또렷하고, 조선후기 때의 한창 것. 그래서 보물(1310)로 잡힌.더우기-(우물)천장 가(쪽으)로, 둘씩 마주해 가면서 등지어 짝을 만들며 4줄로 연꽃치레가 돌려져 놀랍다. 연잎 앞으로 1번 꼬여서 모아진(∞고리꼴) 연봉줄기 새김조각이 붙어있는 거다! 뿐아니라, 그 속에 (물)고기·거북·게들이 또 새겨져 있다! 늦은, 곰소(줄포)갓뫼=변산邊山 내소사 대웅전(3×3·다포·8작, 1865, 보물291) 보다(2줄로 돌려짐) 더, 잘 짜여지고 여럿이다.

    이러한 물짐승 곧 물중생 새김은, 해남만 땅끝=토말土末 달마산 미황사 대웅전(3×3·다포·8작, 1754, 보물947) 주춧돌과 부도중탑(僧塔)들 및 대둔산(大屯山 대둔사,대흥사 서산대사탑(1647)에 보이고, 또 여수 영취(축)산 흥국사 대웅전(3×3·다포·8작, 1690, 보물396) 죽담 기단이나, 순천 조계산 선암사 불조전(3×3·익공·8작, 1700쯤) 천장 그리고, 전등사 대웅보전(3×3·다포·8작, 1621, 보물178) 천장, 멀리는 부산 범어사 팔상전(1905) 천장에 나타나 있다.

    나아가선, 불회사와 더불어 바다에서는 먼 곳인 장성 백양사의 소요(逍遙太能, 1563-1649)대사탑이나, 완주 송광사 대웅전(5×3·다포·8작, 1814쯤, 보물1243) 천장에까지 가있는 것이라!

    천장(天障)은 우리말로 보꾹이다. 판판펀펀하게 막아 놓아서 반자라고도 함. 불회사 대웅전의 천장 가 곧, 빗천장(빗보꾹)빗반자에 돌려진 잘 익은 수박 쪽같은 연(꽃)봉오리들 아래로, 마주 본 서로 뽀뽀하려는? 고기·거북·게, 목 길게 빼 고길 쫓아가는 거북, 도리어 거북 쫓는 고기, 수달로 보이는-거북 쫓는 짐승, 아예- 마주한 고기와 거북, 마주한(잡힐듯)수달과 고기의 꼴들이 사뭇 꼼꼼 새겨지고 칠해져, 올려다보는 목과 눈 아프도록 사로잡는다.

    절집 보꾹에는 미르(龍) 말고, 하늘사람,비(飛),천인(天人),두루미(鶴)와 봉황,·극락새같은 걸 나타내는데 달리, 게와 물고기가 보이니 별자리인가? 별주부전에 있듯 미르의 아래것들이니, 하늘 나는 미르를 따르는 용궁세계 가족이 노니는 연못·바다 인가?

    아니면, 밤·잠에도 모두 눈 뜨고있는 것들이어서 수도(修道)을 나타내는 형상인가? 

    고기의 어락(魚樂)이나 거북·게의 수륙양용임을 나타내는가?

    나투는-화신化身으로 고기·거북도 나온다는 권화(權化)를 나타내려고?

    아니, 많은 알 낳는 것들이니 부귀다남의 魚母·魚子를 말하는지 모른다.

    우리 믿음 기복신앙과 같이 이어지고 있는, 가장 여럿 잘 짜 나타내고 있다는 것으로 볼수 잇다.

    용두는 밖에 배치하고 용의 꼬리는 대웅전 안에 배치되어 있다.

    용두를 밖으로 나오게 하고 그 꼬리를 건물 안쪽 대들보 밑에 끼어 넣은 수법, 양쪽 대들보 사이로 상호 중앙을 향해 마주 보도록 또 다른 두 마리의 용을 목각으로 조각한 수법, 건물 내부에 연꽃봉오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기법은 부안 내소사대웅보전 (보물 제291호) 등 변산반도를 중심으로 한 사찰과 건축수법에 있어서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덕숭산 불회사현판과 진여문 현판이 브인다 그곳을 따라가면...

     

    불회사문과 진여문을 통과하는 목재문에 설치된 사대천왕

     

     

     

     

     

    진여문을 지나면 같은 통로에 천왕문이 나온다 다른사찰에는 대형 목각으로 사천왕상을 배치 하였으나 불회사는 탱화형식으로 걸려 있어 또 다른 사찰의 느낌을 느낄수 있었다.

    천왕문에서 바라본 대양루

    대양루에서 바라본 대웅전

    대양루 천정의 용문양

     

    당간지주의 구멍

    대양루를 안에서 보면 천수루 현판이 걸려 있다.

    불회사는 대웅전과 진입로의 석장승이 유명하다. 불회사의 대웅전은 건물 자체의 느낌도 산뜻하지만 천장의 벽화가 화려하고 주불로 모셔진 비로자나불이 건칠불인 것이 특징이다. 건칠불이란 종이나 베 등을 이용해 불상을 만들고 그 불상에 옻칠을 한 후 금을 씌운 불상을 말한다.

    대웅전의 용은 여의주 대신 불치를 물고 있는 모습이 특색이 있다.

     

    명부전

     

     

     

     

     

     

    복부에 배치된 귀면상

    복부에 배치한 여우 모양은 다른곳에서 볼수 없는 모습이였다. 사진이 날씨가 흐린탓에 흔들려서 흠이다.

     

    삼성각

     

    산신각내 산신탱

    불치(佛熾) - 광명을 불꽃모양으로 묘사한 것,역시 불보살의 위신력을 장엄하는 상징이다.를 손에 들고 있다.

     

    삼성각 지붕에 자리잡은 말벌집

     

     

     

     

     

    나한전

     

    스님이 말을 타고 노루를 사냥하는 명부전 외벽의 벽화가 아주 이색적이였다.

     

     

    대웅전 활주를 빙둘러서 걸어놓은 경전 문구들...

    역사를 말해주는 고목 단풍나무와 돌담사이의 문틀

     

    비로나무숲에 있다는 비로선원

     

    저녁내내 무거운 심정과 마음을 추스리기 보다는 허둥지둥 무작정 카메라를 메고 산사를 향해 1박 2일을 충남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문득 머리를 때리는 경적이 안개와 함께 머리끝을 치겨세워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경로을 탐색하게 되었다. 삶을 내려놓을려고 내려놓을려고 하루 하루가 무겁고 둔탁한 머리속의 복잡함을 못이기고 있을 즈음 문득 장승의 얼굴이 둥그렇게 눈을 뜨고 나에게 달려오는게 아닌가. 장승 그래 나주 불회사의 석장승을 만나고 나면 복잡한 심정을 추스릴 수 있을까 해서 새벽공기와 안개속을 헤집고 사찰에 도착했다.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화려하게 단청을 입힌 불전들이 눈에 들어 왔다. 전라도 일대의 사찰들이 대개 천년고찰들이여서 새로이 단청을 하지 않고 옛모습을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역사를 품고 있어 순례객을 끌어 당기는 힘이 있는데 반하여 화려한 단청과 새로이 크게 불사되는 전각들은 그위용에 오히려 참배객들이 압도되어 거부감을 느낀다는것을 모르는것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산문밖의 소리나 산문밖으로 나서서 융화하고 좋은 것과 고통은 섞이고 고유하는 새로운 정보화의 시대에 불교가 바뀌어야 하는 또다른 숙제라고 본다.

     

    지난주에 금둔사라는 사찰에 갔을때 반농반선한다는 사찰의 하이얀 칠판의 내용이 정겹기까지 했다. 칠판 한켠으로는 괭이, 호미, 곡괭이 등 농기구가 걸려 있어 반농반선을 보여주는 곳이였다.

    (순천 금둔사 선방에 걸린 안내판)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수행의 방법도 여러가지라 생각한다. 일상 즉 수행이 아닌가 싶다.

    출입을 통제하고 조용한곳에 좌선과 참선만이 최선의 수행일까?

    땀흘리면서 대중과 함께 고뇌를 같이 나누는것 또한 수행이 아닐런지.....

    고급 외제승용차에 고급 승복만 입고 다니는것은 산문밖에서는 요즈음같이 어려운 시국에 좋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즈음은 누더기 승복을 구경조치도 하기 힘들다. 정겹고 고풍스럽고 인품이 있어 보이는데....

     

    아직까지 사찰에는 새벽이였으며 안개와 대웅전뒤에 오랜된 동백숲이 나를 반겨 주었다.

    차를 주차시키고 한참을 둘러 보니 대웅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그런데 대웅전 활주에 티벳 글씨로된 리본을 줄에 메달아 놓고서 관광객과 관람객은 대웅전에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다.

    카메라와 모자를 벗고 법당에 3배를하고 있노라니 눈앞에 들어오는 삼존불위의 닷집이 없는 형식을 보지못 한듯한데 이곳에서 보고 신기함을 감추지 못하고 합장을 하고 법당내부를 둘러 보았다. 그런데 신기한 모습들이 또 다른 호기심을 발동하여 가만히 귀기울여 둘어보니 스님한분이 수행하는  염불을 듣고 있노라니 녹음테이프에 녹음된 일본스님의 염불을 기계를 이용하여 대웅전에 틀어 놓고 참선과 수행중이였다.

    일본염불을 듣고 있노라니 마음이 편치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찰들이 임진왜란당시 얼마나 많이 소실되고 문화재를 도난당했던가? 그런데 그 일본의 염불과 이상한 음향소리가 마음을 축축하게 그리고 발길마져 무겁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면 불회사는 스님들의 수행처인 비로선원, 불회사에서 생산하는 비로다,대웅전의 비로나자불좌상 등 비로와 인연의 사찰인가 싶다.

    비로다의 경우 첫물차만을 제다하는데, 갓따온 찻잎을 바로 선별하여 아홉번 덖은 차를 비로다, 하루정도 발효한 후에 덖은 차를 비로황다라 한다.

    오래된 동백숲속에서 들려오는 동박새소리와 목탁소리를 그리며 달려 갔건만 전자소리 나는  산문을 나서는데 비로다라는 차 제품명을 보았다.

    비로다의 경우 불회사 주변에는 수백년이상된 비자나무숲이 있디. 그 비자나무밑에 자생하는 야생차를 비로다라고도 한다라고 한다.

     

    특히 불회사를 탐방하신다면 전각들이 대부분 다른사찰에서는 우물반자를 하여 천정에다가 단청을 하는데 이곳에서는 노출된 천정을 마무리 하여 서까래와 대들보가 노출되고 회벽과 서까래에는 그 자체에 단순하게 단청을 하면서 대들보에는  화려하고 장엄하게 단청을 한것을 관심을 두고 보면 또한 재미를 느낄수 있다

     

    사람은 노동하도록 만들어진 존재다. 종교의 가르침이 대개 그러하다.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중국 당나라 때 고승 백장(百丈)스님이 남긴 선가(禪家)의 유명한 규칙이다. 백장스님은 90세의 고령이 되어서도 대중과 함께 일하는 울력에 반드시 참여했다. 제자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스님의 농기구를 감추자 이 말과 함께 굶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학명(鶴鳴)선사는 1920년대 내장사에서 반농반선(半農半禪)을 표방하며 노동과 참선 수행을 함께 했다. 노동을 수행의 방편으로 인식하라는 것이 불교의 주문인 것이다.

    우리나라 불교가 변해야 할 것도 마찬가지이며 울력의 땀방울을 귀하게 여기고 소중한 자연과 모든 중생의 소중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화려하고 웅장하게 보여주는것 보다는 소탈하고 누구나 찾아갈수 있는 쉼터가 되어야 할것이다.

    어느 스님이 절간에는 석가모니 부처가 없다고 했다. 그 의미와 반농반선, 더불어 석장승을 각인 하면서 마친다.

     

    그렇게 1박2일의 꿈은 깨어지고 반나절 순례를 마감하면서 질펀한 산문의 길을 따라 정처없는 인생의 고행길로 접어들고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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