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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주사
    ♠寺刹巡禮 2012. 2. 19. 11:57

     

    대웅전 주련의 아름다움을 을 찾아서 ....

    테마(Thema)가 있는 사찰순례(7-2창원 성주사)

     

    삼성각(三聖閣)

     

    삼성각(三聖閣)은 칠성(七星)과 독성(獨星) 및 산신(山神) 세분을 한 곳에 모셔놓은 곳으로, 나누어 모셨을 때는 '칠성각(七星閣), 독성각(獨星閣), 산신각(山神閣)'이라 이름한다.삼성 신앙은 불교가 한국 사회에 토착화하면서 고유의 토속신앙이 불교와 합쳐져 생긴 신앙 형태이다. 전각은 보통 사찰 뒤쪽에 자리하며, 각 신앙의 존상과 탱화를 모신다. 삼성을 따로 모실 경우에는 산신각·독성각·칠성각 등의 전각 명칭을 붙인다. 삼성을 함께 모실 때는 정면 3칸, 측면 1칸 건물을 짓고 따로 모실 때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건물을 짓는다.

    삼성각은 사람들에게 재물을 주는 산신(山神)과 자식과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七星)과복을 선사하는 독성(獨聖)을 모시는 사찰의 당우로서 전통신앙인 삼신사상을 불교가 흡수한 것이다.

     '산신'은 산에 있는 신을 의미하며, '칠성'은 북두칠성을 말하는 것으로 별나라의 주군(主君)으로 인간의 수명과 복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며, '독성'은 나반존자(那般尊者)라고도 불리는데 십이인연(十二因緣)의 인연을 혼자서 깨달아 성인의 위치에 올라서 말세의 중생에게 복을 내린다고 한다.

     그리고 사찰에 따라서는 독성과 산신과 용왕을 봉안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들은 모두가 불교 외에서 유입된 신들로서 이는 하근기(下根機) 중생을 위해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모신 건물을 전(殿)이라 하지 않고 각(閣)이라고 하는 것이다.

    복과수명과 재물과 자식의 점지를 위해 사람들의 소박한 욕구를 해결해 주기 위해 불교에서 그들 신에 대한 윤색작업을 벌였다. 인간의 복을 관장하는 신의 전문화, 그것은 마음을 밝히고 해탈을 구하는 것을 가르치는 출세간적 부처님보다 하근기의 중생들에게 재물을 준다는 산신, 자식과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신, 복락을 선사한다는 독성께 직접 공양하고 기도하는 신앙의 문화가 이루어져 조선의 숭유억불정책의 혼란기에 각(閣)이라는 한국불교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건물들이 생겨난 것이다.

      많은 불자들이 이 삼성각에 들어설 때 무엇을 어떻게 믿고 기도하여야 하는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과응보의 가르침을 믿는 것이다.

    칠성(七星)은 수명장수신(壽命長壽神)으로 일컬어지는 북두칠성을 뜻하며, 본래 중국의 도교사상과 불교가 융합되어 생긴 신앙이다. 대개는 손에 금륜을 든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주존으로 하여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좌우에 협시로 둔다.

    산신(山神)은 한국의 토속신 산신령에 해당하는 호법선신으로 산신이라는 인격신과 화신인 호랑이로 나타난다. 인격신으로서의 산신은 나이 든 도사의 모습이고, 호랑이는 대부분 산에 위치한 사찰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후불탱화로는 산신탱을 봉안한다. 산신탱에는 산신과 호랑이의 모습이 거의 등장한다.

    독성(獨聖)은 천태산(天泰山)에서 홀로 선정을 닦아 독성(獨聖)·독수성(獨修聖)이라 불린 나반존자(那畔尊子)를 일컫는다.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수독성탱(修獨聖幀)·나반존자도(那畔尊者圖)라는 독성탱화(獨聖幀畵)를 모신다. 그림은 천태산과 소나무·구름 등을 배경으로 희고 긴 눈썹을 드리운 비구가 오른손에는 석장(錫杖), 왼손에는 염주 또는 불로초를 들고 반석 위에 정좌한 모습이다. 때로는 독성 외에 차를 달이는 동자가 등장하기도 하고 동자와 문신(文臣)이 양쪽 협시로 그려지는 경우도 있다.

    양산 통도사의 삼성각은 고려말의 3대 성승(聖僧)인 지공(指空), 혜근(慧勤:懶翁),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따라서 삼성각은 불교가 수용되는 과정에서 토착신앙 또는 민간신앙과 융합하여 빚어진 변용이다. 이런 식의 변용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흔히 목격되는데, 이질적인 신앙을 불교로 포용하여 보다 높은 차원으로 유도한다는 데에 의의가 있으나, 자칫 기복 위주의 주술적 신앙으로 불교의 본질을 왜곡시킬 우려와 폐단도 있다. 실제 그러한 폐단이 있었음은 한용운이 〈조선불교유신론〉에서 무속적인 산신과 칠성을 제거하고 석가모니불만을 봉안할 것을 주장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삼성각의 공포부분을 장식한 문양이다. 두 겹의 원 테두리를 서로 엇갈리게 겹쳐지도록 원을 그리며 배치하였다. 그 안쪽에 활짝 핀 한 송이의 꽃을 표현하였다. 꽃잎은 여섯 개다. 원 테두리의 안쪽에는 흰색의 십자문양을 그렸다.

    칠성단

    칠성각(七星閣)은 인간의 자식과 수명을 관장한다는 북두칠성(北斗七星)님을 모시는 전각이다. 수명장수신으로 일컬어지는 칠성(七星)을 봉안한 전각이다.칠성각의 칠성은 원래 중국의 도교신앙과 깊은 관련을 맺고 중국에서 형성된 다음 우리 나라에 유입된 신이다. 우리 나라 불교 속에서 처음으로 수호신으로서 수용됐다가 다시 수명신인 본래의 모습이 강조됐고 이를 불교화시킴에 따라 독립된 칠성각을 만들어서 봉안하게 된 것이다.

    칠성각은 우리 나라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의 전각이다. 한국불교사의 초시 및 중기의 사찰 역사 속에서는 칠성각을 찾아볼 수 없고 조선시대 중기에 차츰 나타나기 시작해서 현재에는 전국 대부분의 사찰에 건립되어 있다.

    칠성각은 그러나 단순한 도교의 북두칠성을 모시고 있는 전각이 아니다. 그 안에는 불교적으로 충분히 윤색된 삼존불과 칠여래 , 도교의 칠성신 등이 함께 봉안돼 있는 것이다.

    칠성(七星)은 구체적으로는 탐랑·거문·녹존·문곡·염정·무곡·파군의 일곱 별로, 각각 부처로 바뀌어 '칠여래'가 되는데, 예를 들면 '제칠파군성군약사유리광여래'는 칠성 중 파군이 여래로 바뀐 것이다.

    여기에 모셔지는 북두칠성의 북두 제1(北斗 第一)은 자손에게 만덕을 주고, 북두 제2는 장애와 재난을 없애주고, 북두 제3은 업장을 소멸시켜주고, 북두 제4는 얻는 것을 구하게 해주고, 북두 제5는 백 가지 장애를 없애주고, 북두 제6은 복덕(福德)을 갖추게 해주고, 북두 제7은 수명을 오래도록 연장시켜주는데 이러한 신력이 있기에 중생들이 칠성을 깊이 신봉하게 되는 것이다.

    칠성각은 신력을 가지고 있어서 일반대중들이 칠성을 깊이 신봉하게 됐고 이러한 중생들의 바램을 더 구체화된 부처님의 모습으로 수용하여 칠성신앙을 불교적으로 변용시킨 것이다. 즉 불교의 칠성신앙의 대상은 북두칠성이 아니라 여래의 증명을 거치고, 7여래의 화현으로 나타난 '칠성부처' 또는 '치성광여래'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칠성각 안에는 불보살과 칠성이 중심을 이룬 소재회상도(消災會上圖) 성격의 '칠성탱화'가 봉안돼 있다. 이는 칠여래와 칠원성군만을 도설하는 형으로 중앙에 '치성광여래'를 두고 좌우보처로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 그리고 상단 좌우에 칠여래 하단 좌우에 칠원성군을 도설하는 구도를 보인다.

    칠성탱화는 이외도 칠여래와 칠성을 각각 백개의 그림으로 도설하는 유형이나 두 폭의 채화속에 한쪽은 3여래, 한쪽은 4여래를 도설하는 경우도 있다. 탱화를 각각 도설하게 되는 것은 칠성에 대한 신앙이 다양하게 분화되었음 의미한다.

    독성각(獨聖閣)

    독성각(獨聖閣)은 스승없이 홀로 깨친 성자인 독성(獨聖), 즉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모신 전각이다.

    나반존자는 본래 부처의 제자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은 뒤 부처의 수기(授記)를 받았다. 이후 나반존자는 부처님 멸반 후 남인도 천태산(天台山)에서 스승없이 홀로 선정(禪定)을 닦아 깨달음을 얻어서 독성(獨聖)의 이름을 얻었다하여 독성각에 모셔졌다고 한다.

    부처의 '10대제자'나 '16나한', '500나한' 등 그 어디에도 "나반존자"라는 이름이 없어 부처의 제자는 아니라는 게 정설이지만, 일각에서는 나반존자를 '16나한'의 우두머리인 '빈두로존자'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부처의 제자는 아니고 홀로 깨쳐 성인이 된 사람이라는 게 정설인 것같다. 최남선은 민간에 전해지던 '단군신앙'이 불교에 흡수된 것이라고도 주장하였다.

    나반존자(那畔尊者)는 삼명통(三明通: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과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두가지 능력을 갖추어 말법시대에 나타나 미륵불이 오기전까지 현세의 중생들에게 복을 주고 재앙을 없애며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다.

    나반존자 성격은 엄하고 무섭다. 기도하는 자는 마땅히 목욕재계하고 공양물을 갖추어 정성을 다해 지극히 기도해야 한다. 복을 구하는 이들에게 지극한 정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나반존자가 비록 전이 아닌 각에 모셔져 있지만, 그 분의 권능으로 많은 중생들의 소원을 이루어준다. 왜 그 분은지극한 정성과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를 요구하는 것일까. 이 의문속에 소원을 ㅇ루어주는 나반존자의 자비와 참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독성각(獨聖閣)이 우리나라에 등장한 것은 1693년(숙종19년)이며 180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사찰에 세워졌다고 하며, 독성은 스승없이 혼자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일컫는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나반존자(那畔尊者)'라 한다.

    나반존자를 모신 전각인 독성각 역시 우리나라에만 있다. 독성을 신봉하는 경우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한국만의 독특한 신앙의 형태로 자리하고 있다. 독성각은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지어진 것은 없으며, 억불정책을 편 조선시대에 생겼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지친 중생들이 나반존자가 말세에 복을 준다는 믿음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반존자는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동안 중생을 제도하려는 원력을 세운 분이다. 그래서 조선시대를 말법시대라 여기며 나반존자에 대한 기도가 성행했을 것이다.

    후불탱화로는 독성탱이며 '수독성탱' 또는 '나반존자도'라고도 부른다. 배경은 천태산으로 나무와 숲이 무성하고, 나반존자가 석장을 짚고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있다. 동자가 차를 달이는 모습의 탱화도 있고, 동자와 문신(文臣)이 좌우 협시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독성각에는 탱화를 모시는 경우가 흔하고, 조각으로 제작한 상(像)은 드물다.

    한편, 나반존자를 산신, 칠성과 함께 모시면 그 전각은 '삼성각(三聖閣)'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독성각 중 잘 알려진 것은 경상북도 청도에 있는 운문사 사리암의 독성각과 서울 성북구 수유동의 삼성암이다

    삼성각 내부 탱화는 창틀을 만들어 보존하고 있다.

    산신각(山神閣)

    산신각(山神閣)은 산신을 모시는 전각이다. 사찰에 따라서는 '산령각(山靈閣)'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 사찰에 삼성각(三聖閣)을 따로 두지 않으면, 이 산신각(山神閣)은 거의 대부분 갖추고 있다. 산신은 우리나라 고유의 신앙인 무속신앙의 전통이 고스란히 뭍어나는 신이다.

    산신은 보통 삼성각(三聖閣)에 칠성신, 독성(獨星)과 함께 모시는 경우가 많다. 본래 산신은 도교에서 유래한 신으로,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많이 믿던 중국.한국 등의 토착신의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까지 또는 현재까지도 이 산신신앙이 널리 유행하고 있다. 이 산신이 불교에 수용되면서 호법신중(護法神衆)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불교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부터이므로 산신도 비교적 일찍 불교에 수용되었을 것을 여겨지나, 산신각이 세워진 것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이다.

    산신각내에는 산신탱화를 모시는데, 대개 흰수염, 대머리, 긴 눈썹이 휘날리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손에는 하얀 깃털부채나 파초선·불로초 등을 들고 있고, 주로 봉래산·영주산·방장산 등의 삼신산을 배경으로 한다.

    한라산이나 속리산·계룡산·지리산 등지의 사찰에는 드물게 여자 산신을 모시는 경우도 있다. 여자 산신은 트레머리에 댕기를 두르고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다. 호랑이에 걸터앉거나 기대고 있는 모습이며, 손에는 대개 불로초를 들고 있다.

    이밖에 복건(福巾)이나 유건(儒巾)·정자관(程子冠)을 쓰고 지팡이를 든 유교적 산신도 있고, 삭발한 스님이 《묘법연화경》과 같은 불경을 들고 있는 불교식 산신도 흔하다. 이 경우 의상은 가사와 비슷하나 적녹색이 주류를 이룬다. 

    삼성각에있는 벽화엔 다른사찰에서 볼 수 없는 돼지가 표현이 되어 있어 또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설법전 내부의 황금 닷집

    설법전 내부 삼존불

     

     

     

     

    설법전 닷집에 날으는 천무

     

    화반에 오백 나한을 배치한것이 새롭고 천천히 구경할만하다.

    관세음보살과 함께 중생구제의 큰 원력으로 많은 대중들의 귀의처가 되고 있는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을 지장전 혹은 명부전이라고 한다. 지장보살은 특히 지옥중생의 구세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그 때문에 명부전에는 지장보살과 그 협시인 도명존자 및 무독귀왕 이외에도 염라대왕을 위시한 지옥의 10왕상을 봉안한다.

    성주사 지장전은 본래의 명부전(1940년)에서 새로이 건물을 완공하면서 옮겨온 것이다, 2005년 주지 원정 스님이 신축하여 대웅전 왼쪽에서 현재의 장소인 공양간 앞마당으로 옮긴 것이다. 지장전 내부에는 지장보살, 도명존자, 무독귀왕(불석:3점),(진경대사조성/1604년):상문스님조성(1681년),그리고 시왕(10위:석조:1681년 상문스님), 시왕 시자상(6위 불석), 시왕 동자상(10위:불석), 금강역사 2점(불석), 지장후불탱(2007년:이전 후불탱은 1926년),시왕후불탱 10점(1977년 보봉 스님),그리고 삼배바탕에 채색된 감로왕탱화(경남 유형문화재 제 336호:1792년 영조 5년)가 소장되어 있다.

    탱화는 천이나 종이에 그린 그림을 족자나 액자의 형태로 만들어 거는 불화의 한 유형으로, 보통 사찰 전각 안의 불상 뒤에 걸어두는 후불화가 대부분이고, 좌우 벽면에 걸어두는 예도 있다.

     

     

     

     

     

    업경대를 업고 있는 해태상 

    업경대를 업고 있는 해태상

     

     

     

    새롭게 단장된 지장전내 수미단의 화려한 조각들....

     

     

     

     

     

     

     

     

     

     

     

     

     

    삼성각 주변에 불자분들이 자연스럽게 조성해 놓은 적은 불상들....

     

    성주사 상징물 돼지 2마리상

    성주사 불사 시주공양을 표기한 입구의 돌

    오래된 선사들의 부도탑이 형성된시기라든지 누구의 부도탑인지를 알수 있는 안내판이 없는 것이 유감스러웠고 세월의 흔적따라 부도탑에 이끼와 같이 흔적없는 부도탑5기가 세월의 무상함을 나타내 주고 있다.

    정 복덕행 부도탑은 또렷하게 누군가 보존하고 탁본을 한 흔적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선사님들의 불사의 뜻을 기리고 성주사의 불향이 널리 퍼지기 위해서는 부도탑 또한 관리및 보존에 신경을 써야 할것이며, 용화전의 위치를 알 수 없었다.

    물들이지 않고 조성된 그대로의 외소한 용화세상을 꿈꾼다는 용화전을 보고 싶었는데....

    용화전이 조성된것을 보면 성주사 또한 불모산의 이름처럼 미륵신앙에 있는 사찰인듯 하나 미륵신앙의 흔적 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

    성주사 순례를 마무리 하면서 주객이 바뀐 느낌이 아주 아쉬웠다. 대웅전이 다른전각들의 웅장함과 화려함에 억눌려 초라하게 보이는것이....

    대웅전 내부의 비천상 벽화, 수미단의 사자, 용 조각, 흰꼬리, 파란사자를 타고 있는 보살등 성주사를 찾는 새로운 볼거리를 자랑하고 표현하는것 또한 포교의 한가지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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