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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의 아름다운 무용도를 찾아서 완주 송광사로....♠寺刹巡禮 2012. 2. 13. 15:25
대웅전의 아름다운 무용도를 찾아서 완주 송광사로
테마(Thema)가 있는 사찰순례(5-완주 송광사)
송광사는 도의선사가 절터를 찾다가 영천수를 발견하고 터를 잡았는데 그때가 신라 진평왕 5년(583)이었다. 그후 경문왕 7년(867)에 구산선문 중 도의국사의 가지산파 제3조인 보조국사 체징(804~880)에 의해서 중창되었다.
그 후 폐사가 되어 주춧돌만 가시덤불 속에 남아 있던 것을 고려 보조국사가 이곳을 지나다 大성지임을 아시고 표시를 해두었고, 순천 송광사를 개창한 후 제자들에게 본사를 복원·중창할 것을 부탁한지 수백 년이 지난 조선 광해군 15년(1622:임술)에 웅호, 숭명, 운정, 득신, 홍신 등 보조국사 제자들이 덕림스님을 중창주로 모시고 복원·중창하게 되었다.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올 것을 기원하고 국난으로 돌아가신 일체 영가들의 왕생극락을 발원했던 곳이기도 하며 병자호란 때에 전주사고(왕조실록)를 지키기 위하여 승군 700명이 머무르는 등 민족의 역사적 영욕을 함께했던 호국도량이다.
또한 석가의 화현이라고 하신 진묵스님께서 1623년(계해년) 대웅전 삼존불 조성시 증명법사로 초청되었으나 부여무량사에서도 동시 초청된 관계로 송광사에는 주장자를, 무량사에는 단주를 보내 법력을 나투었는데 주장자가 밤낮으로 꼿꼿이 서서 법상을 물리는 신의함을 나투신 곳이기도 하다.
일주문은 현재의 위치로부터 3km 남쪽 밖인 나드리(무주, 진안방면 도로 입구)라는 곳에 서있던 것을 1814년(순조14년) 조계교가 있던 곳에 옮겼다가 1944년 해방되기 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이 절은 본래 白蓮寺(백련사)라 불렸으며 800동의 당우와 600승려들이 살아 16방사가 즐비하여 16방주(주지)가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대단했었다.
대웅전과 괘불대
거북등위에 조성된 연화대좌는 무슨뜻인지?
대웅전 계단 소맷돌
사찰순례를 하면서 처음으로 접하는 활주에 배치된 용두이다.
대웅전 활주 전체에 배치 된것은 아닌데 정면에서 볼때 우측편 활주에만 용두가 배치되어 있어 신비로움을 더했으며 무슨 이유로 그곳에 배치를 했는지 궁금했다. 그 숙제는 다음에 한번 더 순례를 계획하면서 연구를 해 볼 사항이다.
사찰 순례전에 순례코자 하는 사찰에 대해 어느정도 파악을 하고 나서면 재미와 흥미가 쏠쏠하다.
중보에 배치된 물고기와 염소 기도 하고 개 같은 모양을 찾아보는것도 괜찮을 듯.......
보물 제1243호 완주 송광사 대웅전
보물 제1274호 소조삼불좌상및복장유물대웅전은 조선 인조 14년(1636)에 벽암국사가 짓고, 철종 8년(1857)에 제봉선사가 한 번의 공사를 더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대웅전에는 석가여래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우측에 아미타부처님, 좌측에 약사 부처님을 각각 소조(흙으로 빚어)로 모셨다. 전각안에 모셔진 부처님으로서는 규모가 매우 크다.
대웅전 현판은 선조의 8번째 아들이며 광해군의 동생인 의창군이 쓴 것이다. 인조 14년(1636)에 세운 송광사 개창비의 글도 의창군이 썼다.1993년 본존불에서는 세 분 부처님의 조성기가 발견되었는데 <조성기>에 의하면 숭정 14년(인조 5년, 1641) 6월 29일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고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있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조속한 환국을 기원하면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 삼존불 사이 앞 쪽에 있는 나무로 만든 목조삼전패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높이 2.28m로 앞면에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글씨가 있고, 뒷면에는 조선 16대 왕인 인조 때 조성되었다는 제작연대가 밝혀져 있다. 다른 2점은 높이가 2.08m로 같으며, 뒷면에 정조 16년(1792)에 수리하였음을 검은 글씨로 적혀 있으며, 왕비와 세자임을 기록한 패이다.
자세히 보면 천정에 물고기가 선명하게 배치되어 있다. 송광사를 찾아서 물고기를 찾아보는 재미 또한 사찰순례의 재미이다.
무용도 비천(무당무)
불교가 도래하면서 민속신앙을 수용하게 되는데 이 경우는 무속춤이 불당안에 들어와 있는 경우이다.
하지만 이처럼 어떤 무속인지는 모르지만 무속의 복식을 갖추고 춤을 추는 장면은 드문 경우이다.
보관은 관모와 형식이 비슷하고 모자에 달린 장식이 신분을 봉준것으로 보인다.
빌에 버선을 신겨 춤공양임을 강조한다.
의상도 지극히 단조로운 무복을 입고 있어 비교적 가벼운 모습으로 처리되었다.
표현에 있어서 매우 가늘고 가벼운 철선을 사용하였는데 운필은 빠르고 날렵하게 처리되었다.
바람에 날리는 옷자락 끝이 고기나 용의 꼬리처럼 상징화되어 있다.
천도 (헌정무)
인체의 구성이나 인물 전체의 형태가 안정되고 아름다운 곡선으로 정리되어 매우 단정하다.
의상의 장식이 거의 생략되어 단순하여 오히려 웅장한 화면을 연출하고 있다.
운필은 거침없는 필치로 정리되었는데 그 가느다란 필선이 유연하게 타고 흘러 내렸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들어 있는 세선에 빨간색과 녹색으로 크게 잡은 화면들이 강렬한 대비를 가져와 욱 시각적인 웅대함을 보여준다.
천도는 도가에서 많이 등장하는 소재로서 사실적으로 그려진것이 아니라 여성의 가슴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전체의 구성이 둥근곡선으로 처리되어 있기도 하고 긴장을 유도하기도 하여 생기가 살아나는 모습이다.
옷자락 끝을 굵고 강한 검정 띠로 마무리 하여 인물이 단순하거나 강렬한 인산을 더하고 있다.
비천 (비상무)
춤을추어 여래에게 부처님께 공양하는 남성적인 여성이다.
휘날리는 천의와 뛰어 오르는 몸동작이 하나가 되어 매우 힘이 넘치고 율동이 돋보이고 동세의 포착이 뛰어난 작품이다.
삼각형 모양의 고깔 형태에 세개의 날개를 꽂은 독특한 보관을 쓰고 있다.
무장한 신군처럼 강조된 보다 화려한 모자와 의상은 조선후기 불화중 신중도에서도 비슷한 모양이 나타나고 있다.
허리에는 호리병을 차고 발에는 단순한 모양의 비단신을 신었고
어깨서 늘여뜨려진 띠가 두번 묶여져 있어 민속적인 모습처럼 보인다.
의습의 선은 날카롭고 딱딱한 선이 많고 옷주름을 따라 음영을 넣은 것이 깊고 넓게 처리되어 면처럼 구별되어져 있다.
비천 (바라무)
구성이 복잡하고 의상표현과 천의의 묘사가 날카로운 각이 많아 딱딱한 형상을 하고 있다.
유연성이 한결 떨어지지만 바라 앞으로 휘날리는 천의가 둥근원을 그리며 날리는 모습으로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색채는 변화가 적고 대체로 붉은 빛깔의 의상을 하고 있으며 허리끈에는 호리병이 매달려 있다.
옷자락 끝부분과 중간에 날카로운 톱날같은 돌출이 있어 특징적이다.
의상처리가 독특하여 다른 작품들 속에서 드러나며 묵선도 훨씬 속도감이 느려 굵고 변화 없는 의습선이 딱딱한 인산을 더해주고 있다.
설채에서는 딱딱하고 선묘와는 달리 우리는 기법으로 정리하여 다소 매끄럽고 부드러운 인상을 내고 있다.
비천 (타고무)
북을 길게 어깨에 메고 양손에 화려한 북채를 드는 비천상으로 화려하고 복잡한 구성이 돋보인다.
천의가 넓고 강하게 그려져 있어 전체적으로 무겁고 웅장한 기분을 준다.
중국 귀부인의 것과 비슷한 화려한 보관을 썼는데 보석이 엮어진 머리묶음줄이나 관신이 단순한 듯 하면서도 화사함을 드러내고 있다.
얼굴 양볼에 연지를 발랐으며 천의의 굵고 강함 검정색 선과 파도문양의 옷자락이 다른 의습의 가는선과 허리띠의 가느다란 선들과 강한 대비를 보여주어 인물을 화려한 구성미가 돋보이게 한다.
옷주름을 보여주는 색채의 농담과 우림이 요철을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북채를 잡고 있는 오른손의 묘사가 부적절하여 부분적인 무괌심으로 보인다.
비천 (장고무)
유연하고 여유로운 자세와 힘을 내고 있다. 얼굴이 어린 동자상을 하고 있으며 구성이 한결 단순화 되었음이 눈에 띈다.
인물의 자세가 매우 극적으로 잘 묘사되어 있으며 반면에 부분묘사는 대수롭지 않게 처리되어 한결 부드럽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쌍계사의 신중도에서와 같이 장고를 들고 군관모자 비슷한 형태의 보관을 쓰고 있다.
화려한 의상에 화려한 장식을 하고 있으며 동자의 무복에 맞게 휘날리는 천의는 많이 생략되었다.
따라서 단조로우며 번면에 춤추는 모습에 힘을 느끼도록 강조하고 있다.
묵선이 힘있게 찍어 내린 변화에서도 색다른 묘법이며 힘과 유연함을 함께 보여주는 좋은 표현이다.
비천 (승무도)
의상이 단조롭고 꾸밈이 별로 없어 묵선이 강조되어 오히려 색채보다 선에 의해 그림이 결정되어 있디.
매우 빠르고 자신있는 필치가 비천의 자유로운 리듬을 타고 짧은 순간에 그려간 듯 하다.
온몸을 대나무에 매달고 있는 듯이 보이는자세는 아주 부드럽고 유연한 몸놀림의 자세를 보인다.
주름진 얼굴에 입술을 빨갛게 발라 해학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비수체의 묘법으로 묵선을 날카롭고 힘차게 내리긋는 방법을 사용하여 유연성은 떨어지나 붓질의 힘에 의해 매우 단단한 작품성을 발휘하며 비수법을 충분히 살려내는 채색법까지 사용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접하기 힘든 십자형 종루
목어
종루 (보물1244호)
종루는 종을 달아놓은 열 십(十)자형 2층 누각으로 송광사 도량을 장엄하는 가치가 크다. 열심자로 된 종루 중앙칸에 범종을 모시고 동·남·서 3칸에 목어, 운판, 법고를 각각 모셨다. 종루의 지붕은 중앙에서 모아지는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고 마루 밑의 기둥들은 모두 원형기둥을 세워놓았다.
천왕전과 소조사천왕상 (보물제1255호)
송광사는 4천왕을 모신 곳을 천왕문으로 하지 않고 천왕전으로 건축하여 이곳은 여닫는 문으로 되어 있다.
사천왕은 갑옷을 입고 위엄이 충만한 무인상을 하고, 동·서·남·북의 사천국을 다스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초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사찰입구에 사천왕문을 세워 모시고 있다. 서방 광목천왕상 왼쪽 머리끝 뒷면에는 조선 인조 27년(1649)에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는 글이 있으며, 왼손에 얹어놓은 보탑 밑면에는 정조 10년(1786)에 새로이 보탑을 만들어 안치하였음을 알려 주는 기록이 있다.일주문을 용들이 받들고 있으며 봉황이 전면을 향하고 있다.
일주문
송광사의 입구에 세워 속세와 불계의 경계 역할을 하는 상징물인 일주문은 조선시대에 지은 것이다. 원래 지금의 위치에서 약 3km 떨어진 곳에 세웠던 것인데, 절의 영역이 작아져서 순조 14년(1814)에 조계교 부근으로 옮겼다가 1944년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졌다. 일주문의 이동은 시대별로 나타난 불교의 흥망성쇠를 보여준다.
지장전
흙으로 빚어 조성된 지장보살은 나무로 만든 연꽃무늬 대좌 위에 모셔져 있다. 지장보살은 지옥의 중생이 모두 구제되고 한사람도 지옥으로 가지 말기를 바라며 지옥중생이 모두 성불한 다음에 성불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지장 보살상 속에서 발견된 기록에 따르면, 1640년에 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등이 함께 만들어졌다. 옆에 10왕님들이 모셔져 있다.나한전 정면을 보면 작은 문이 2개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형식 또한 다른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형식으로서 옛날 조상들이 거주하던 초가집과 같은 정겨움이 풍기면서 아늑한 분위기를 자애내면서 고색창연하게 지금껏 그자리를 지키고 있는듯....
나한전
나한전은 나한님(아라한)을 모시는 건물로 송광사는 나한기도를 봉행한다. 나한기도를 정성으로 수행하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룩한다고 전해질 정도로 영험하다. 나한전 내부에는 주불로 석가여래부처를 나무로 조성하여 모시고, 좌우로 16나한과 오백나한, 인왕상, 동자상, 사자상 등을 모셨다.
송광사 나한전은 효종 7년(1656) 벽암 각성대사가 송광사를 다시 지을 때 같이 지은 것이다. 내부에는 목조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16나한과 오백나한, 인왕상, 동자상, 사자상을 모시고 있다.삼성각
삼성각 평보초에 그려진 귀면
극락전
관음전
항상 넉넉한 포대화상
일주문 안에 있는 다원에서 한약을 말리고 있어 사찰을 들어서자 마자 한약내음이 반겼다.
치자열매를 매달아 말리는 모습입니다.
추에서 곧 묘를 나타내심은 연꽃이 더러운 곳에서도 항상 깨끗함과 같고, 삼승법을 모아 일승법에 돌리신 것은 꽃과 동시에 열매를 맺는 것과 같아서 법과 비유가 나란히 나타나고 이름과 실상이 같이 나타나는 연고로 이름을 묘법연화라 하셨도다.
여름의 화려함을 간직한채 겨우내내 추위를 딛고 또 다른 여름의 화려함을 선사하기 위해 연밭에는 스산함이 있지만 올 여름 다시찾아오라는 눈길을 받으며 산문밖을 나섰다.
송광사 후문쪽에 있는 고인돌
완주 송광사는 평지에 조성이 되어 있어 순례하기에 참 편한 사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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