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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불어록(行佛語錄) 10선(選) 
    #佛敎 2012. 2. 16. 12:46

     

    행불어록(行佛語錄) 10선(選)

     

    행불(行佛)은 육조단경(六祖壇經), 조사어록(祖師語錄)에 나오는 가르침입니다. 부처의 행(行)을 수행(修行)한다는 뜻입니다.

    성불(成佛)은 행불(行佛)로부터 옵니다. 바로 지금 여기서 자신의 주인이 되어 완전연소(完全燃燒)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아는 만큼 전하고 가진 만큼 베풀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행불(行佛)입니다.

    성불(成佛)은 ‘언젠가 이 다음에 성불(成佛)하겠지’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자신의 주인이 되어 완전연소(完全燃燒)할 때 성불(成佛)이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성불(成佛)은 행불(行佛)하면서 이루어집니다. 
     

    1.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種豆得豆)

    이는 불교(佛敎)의 연기설(緣起說)을 말합니다. 콩을 심어놓고 백일기도(百日祈禱)를 해보세요. ‘신이시여, 팥이 나게 해주세요’ 하면 팥이 날까요.

    팥이 아니라 콩이 납니다. 팥을 심어놓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 제발 콩이 나게 해주세요’ 해도 콩이 아니라 팥이 납니다.

    이처럼 불교(佛敎)의 진리(眞理)는 명확(明確)합니다.


    2. 고정(固定)된 실체(實體)로서의 ‘나’는 없다.

    고정(固定)된 내가 없기 때문에 바로 여기서 하는 나의 행위(行爲)가 가장 중요(重要)하다는 것입니다.

    과거(過去)는 지나갔으니 잊어버리고, 미래(未來)는 오지 않았으니 미리 걱정 말고, 바로 지금 여기서 보살행(菩薩行)을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3. 텅 비었기 때문에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다. 내 작품(作品)이다.

    이는 공(空)사상을 말합니다. 공(空)하므로 누구든 사용(使用)할 수 있고 사용(使用)하면 누구든 공(空)해집니다.

    텅 비었기에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고 고정된 나가 없기 때문에 어떠한 나도 만들 수 있습니다.

    부처도 될 수 있는데 어떤 것을 못 이루랴! 이처럼 불교는 역동적(力動的)인 종교(宗敎)입니다.


    4. 바로 지금 여기서 자신의 주인이 되어 완전연소
    (完全燃燒)자.

    항상 바로 지금 여기가 중요(重要)합니다. 가장 중요(重要)한 시간은 지금이고, 확실한 공간은 여기 뿐입니다.

    지금 여기서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5. 인(因)도 충실하고 연(緣)도 충실해야 과(果)가 충실하다.

    인은 주관적(主觀的) 원인이고, 연은 객관적(客觀的) 원인(原因)입니다.

    당연히 주관(主觀)과 객관(客觀)이 모두 충실해야 결과(結果)가 충실해집니다. (예: 손뼉소리)

    자력(自力)과 타력(他力)을 같이 써야 합니다.


    6. 수행(修行)은 연습(練習)이요 생활(生活)이 실천(實戰)이다.

    불자(佛子)들 가운데 어떤 이는 수행(修行)을 잘합니다.

    108배는 기본이고 3000배도 한 달에 몇 번씩 하는데 집에서 남편한테는 삼배(三拜)도 안합니다.

    절에서 부처님에게 3000배하는 것보다 집에서 남편이나 부인에게 삼배(三拜)하는 사람이 더 나은 사람입니다.


    7. 웃자! 웃을 일이 생긴다.

    이것은 화엄경(華嚴經)을 한마디로 쉽게 요약(要約)해 놓은 것입니다.

    화엄경(華嚴經)은 꽃으로 장엄(莊嚴)했다는 것인데, 꽃 중의 꽃은 웃음꽃이며, 사시사철 지지 않는 꽃이 웃음꽃입니다.

    저도 화엄경(華嚴經)을 배우기 전에는 웃을 일이 생겨야 웃었습니다.

    그러나 경(經)을 배운 후에는 먼저 웃어서 웃을 일이 생기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화엄(華嚴)행자이고 화엄(華嚴)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통도사(通度寺) 극락암(極樂庵)에는 경봉(鏡峰)스님이 주석했던 삼소굴(三笑窟)이 있습니다.

    하루에 세 번 이상 웃으라는 가르침입니다.

     

    첫째는 인간의 몸을 받았으니 웃고,

    둘째는 불법을 만나서 웃으며,

    세 번째는 베풀고 나누고 웃습니다.

     

    이제는 하루에 최소한 세 번은 웃으세요.

    미소가 아니라 폭소로 웃으세요.

    가짜로 만들어내는 웃음도 진짜 웃음과 같은 endorphin 분비된다고 합니다.

    하루 세 번 폭소하는 것은 30분간 땀 흘리고 운동(運動)하는 것보다 건강(健康)에 더 좋습니다.

    박수까지 치면서 웃으면 심장이 튼튼해지기 때문에 혈액순환(血液循環)도 잘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웃자! 웃을 일이 생길 것이다. 감사(感謝)하라! 感謝(感謝)할 일이 생길 것이다.

    이것이 묘한 진리(眞理)입니다.

     

    8. 나도 방생(放生)하고 남도 방생(放生)하자.

    방생(放生)사상은 자살이 늘어나는 현대를 살아가는 이에게 매우 필요한 가르침입니다.

    생명(生命)에 대한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육신(肉身)은 실험학습(體驗學習)의 교재(敎材)입니다.

    자기 스스로 교재(敎材)를 없애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역(逆) 경계(境界)든 순(順) 경계(境界)든 다 공부거리입니다.

    그리고 상황(狀況)은 돌일 뿐입니다. 걸려서 넘어지면 걸림돌이고 디디고 일어서면 디딤돌입니다.

    디딤돌로 만들 것인지 걸림돌로 만들 것인지는 내가 하기 나름입니다.

    꼭 돈만 있어야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온화한 얼굴, 미소 짓는 표정, 따뜻한 말 한마디가 바로 보시입니다.

    지금은 이러한 보시(布施)가 꼭 필요한 시기입니다.


    9. 부처님 덕 보려 말고 부처님이 내 덕 보게 하자.

    절에 가서 불전함에 보시금(布施金)을 넣고 ‘부처님 시험(試驗)에 합격(合格)하게 해주시고, 가족(家族)이 다 건강(健康)하게 해주시고,

    직장(職場)에서 승진(昇進)하게 해주시고, 건강(健康)해서 쾌차하게 해주시고, 하는 것은 구걸형(求乞形) 기도(祈禱)입니다.

    불전함에 보시금(布施金)을 넣고 ‘부처님, 용돈 쓰세요’ 하고 돌아서면 기분이 뿌듯할 것입니다.

    부처님에게 용돈 드리고 왔을 때 뿌듯하지 몇 푼 넣고 이것저것 구걸(求乞)하고 돌아서면 비굴한 마음만 생깁니다.

     

    10.  아는 만큼 전하고 가진 만큼 베풀자.

    이것 이야말로 부처님 덕 그만보고 내가 부처님에게 은혜(恩惠)를 갚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경전(經典)에 보면 부처님 은혜(恩惠)를 갚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법륜(法輪)을 굴리는 것입니다.

    법륜(法輪)을 굴리는 것은 아는 만큼 전하고 가진 만큼 베푸는 것입니다.

    전할 수 록 알게 되고, 베풀 수 록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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