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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심(無心)으로 인욕하면 분노(憤怒)가 살아지며 평온이 온다.
    無佛스님法問 2012. 2. 8. 09:30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

    우리의 몸은 32가지 부정한 물질(物質)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육신(肉身)을 유지(維持)하기 위해 먹고 마시는 음식은 모두 우리 몸 안에서 배설물(排泄物)이 된다.

     

    피와 고름, 오줌과 똥으로 온통 더럽고 냄새나는 부정한 것으로 되어있다.

    잘 생기고 못 생기고 젊고 늙고, 결과물(結果物)은 온통 보기 흉한 더러운 것 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人間)의 몸은 본래 부정 하고 쓸모없지만, 이 몸으로 큰 뜻을 펼칠 수 있고 선행(善行)을 베풀 수가 있다.

    보리(菩提)의 종자(種子)가 (DNA)인간의 몸에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더러운 몸이 아닌 다른 몸으로는 "보리심(菩提心)"을 수행(修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 가지로 공성(空性) 역시 인간이기에 수행(修行)할 수 있는 것이지, 다른 몸으로 수행(修行)하는 것은 불가능(不可能)한 것이다.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될 것을 보리심(菩提心)으로 구분 한다.

    이것이 가능하면 현생에서 행복(幸福)할 수 있으며 모든 사람과 함께 행복(幸福)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보리심(菩提心)의 수행(修行)은 교리(敎理)에 밝거나, 배움이 많고 좋은 학식(學識)이 풍부(豊富)하다 하드라도, 실천(實踐) 수행(修行)이 따르지 않으면 그림속의 꽃과 같은 것이다.

    그림속의 꽃은 제 역할을 할 수 없듯이 문자(文字)나 학식(學識), 의미와 논설(論說)로써 잘 알고 있다 하드라도, 수행(修行) 실천(實踐)이 없으면 공허(空虛)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거듭 거듭 몸짓과 행동(行動)을 실천(實踐) 하는 것이, 보리심(菩提心)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要素)가 되는 것이다.

     

    분노(憤怒) 보다 더한 악(惡)은 없다. 인욕(忍辱)보다 더한 고행(苦行)은 없다.

    분노(憤怒)와 질투(嫉妬)의 고통(苦痛)이 가득하면, 마음의 평정과 평온은 사라지고.

    기쁨과 안락(安樂)을 얻지 못하니.

    그래서 "화(火)를 내는 것이 자기를 죽이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한다.

     

    자신을 불행(不幸)하게 하는 것은 적(敵)이다.

    적(敵)을 이길수 있는 것은 자비(慈悲)와 사랑 이다.

    적(敵)을 향해 자비(慈悲) 수행(修行)을 할 수 있거나 인욕 수행(修行)을 할 수 있다면 분노(憤怒)와 질투(嫉妬)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다.

     

    분노(憤怒) 하면 마치 자신의 권익(權益)을 보호(保護)하는것 같지만 그것은 착각(錯覺)이다.

    착각(錯覺)은 자기를 속인다.

    집착(錯覺)은 마치 가까운 사람이 호의을 베푸는것 처럼 느껴져서 집착(執着)이 생기고,

    섭섭함이 생기고 무시(無視) 당하는 것 같은 묘멸감(侮蔑感) 이 생겨 질투(嫉妬)와 분노(憤怒)로 상대를 미워하게 되어지게 된다.

     

    연인(戀人)이 되고 동료가 되어서 우리들을 속인다.

    잘 살펴보면 사랑함으로, 연민함으로써, 발생하는 애정(愛情)이 "미움의 주범"으로 변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입은 분노(憤怒)가 있다면 공심 으로 풀어야 한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것이 아니라, 잠깐 떠난 마음일 뿐인 것이다.

     

    무심(無心)으로 인욕하면 분노(憤怒)가 살아지며 평온이 온다.

    요구(要求) 하고 억지(抑止) 하는 것은, 더 멀어지고 싫어할뿐 임을 명심(銘心) 해야 한다.    

     

    무명(無明)과 보리심(菩提心)은 이론적(理論的)으로 풀어서는 그림속의 꽃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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