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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이 없이 행한다
    金剛經 2012. 1. 3. 06:28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법은
    다 취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으며,
    법도 아니며 법 아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래께서 설하신 법은
    모두 다 취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

    법을 취한다는 것은
    법을 붙잡는다는 말이다.

    붙잡아서 괴로운 사람에게
    또다른 것을 붙잡도록 이끔으로써
    그 괴로움을 없애줄 것인가.

    붙잡아서 괴로운 사람에게는
    그저 놓을 수 있도록
    ‘놓아라’
    ‘그것은 실체가 아니다[空, 無我]’
    ‘네가 붙잡고 있을만한 그 어떤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어떤 행복이 있는 것도 아니며,
    항상하지 않고[無常], 괴로운 것이다[苦].’
    라는 방편의 말로써 이끌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기에 또다시
    ‘진리’라는, ‘법’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공’ ‘삼법인’ ‘사성제’ ‘무아’ ‘무상’ 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법’이라는 상을 또다시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것은 또다른 상일 뿐,
    그것이 진리인 것은 아니다.

    진리는 취할 수 없다.
    아니 취함이 있었을 때
    이미 그것은 진리로써의 기능을 상실한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달 자체일 수는 없다.

    방편은 그 쓰임이 다하면
    놓아버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진리는 말할 수도 없다.
    부처님께서는 오랜 교화 끝에 반열반에 드실 때
    “내가 녹야원에서부터 쿠시나가라에 이르기까지
    내 생에서 한 마디 설법도 한 적이 없다”
    고 하셨다.

    진리는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많은 설법을 하셨지만
    그 설법은 어디까지나 방편이었을 뿐이다.

    ‘함이 없이 한’ 설법이었다.
    앞서도 말했듯이 부처님은
    ‘이것이 진리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다만 우리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집착을 놓으라고 하셨을 뿐이고,
    욕심을 버리라고 하셨을 뿐이며,
    분별을 없애도록 이끄셨을 뿐이다.

    다시말해 삿된 것을 타파해 주셨을 뿐,
    새롭게 진리를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삿된 것,
    즉 욕심이며 집착, 분별들을 깨뜨리면
    스스로 진리는 드러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대승불교의 이념인 파사현정(破邪顯正)이다.
    삿된 것을 파하면 그대로 바른 것이 드러난다.
    그러니 일체 모든 삿된 것,
    즉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비롯해
    법상까지 다 타파하고 깨뜨릴 지언정
    새롭게 ‘진리’라는 상을, ‘법’이라는 상을
    내세울 것도 없고, 취할 것도 없으며,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놓고 살면 평화로운데,
    어리석게 잡고 살면서 스스로 괴로워하는 이에게
    ‘놓아라’ ‘실체가 아니다’ 이 한 마디 한 것을 가지고
    법이라고 할 것인가, 법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방편에서는 법이라고 할 수도 있고,
    법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지만,
    진리에서는
    법이라고 해도 안되고, 법이 아니라고 해도 안 된다.
    그저 그런 것까지를 모두 놓아버려야 할 뿐이다.


    그 까닭은
    모든 현인과 성인은
    무위법으로써 차별을 두기 때문입니다.


    모든 현인과 성인,
    즉 깨달은 자는 일체 모든 행위가
    ‘함이 없는 행위’이고, ‘머무르지 않는 행위’이다.

    함이 있는 법을 유위법(有爲法)이라 하고
    함이 없는 법을 무위법(無爲法)이라고 한다.

    깨달은 자는 일체 집착이 없고, 번뇌가 없으며,
    그러한 함이 없는 행위는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업을 남기지 않고, 티끌을 남기지 않으며,
    그 어떤 행위도 온전하고 순수하다.

    그런 행을 무위라고 하고,
    흔적을 남기며 업을 남기고 괴로움을 남기는 행위를
    유위라고 한다.

    일체 모든 현인과 성인은
    오직 무위로써 행동한다.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일체 모든 것을 한다.
    ‘함이 없이’ 한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다 하면서도
    거기에 물들지 않는다.
    이것이 ‘무위법으로써 차별을 두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
    깨달음을 얻고 교화를 하다가 열반에 드신 것
    또한 ‘무위법으로써 차별을 두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무위법으로써 차별을 두어 나투시며 교화하신다.

    그렇기에 여래는 태어나도 태어난 것이 아니다.
    무위로써 태어나기 때문이다.
    무위로써 차별을 두어 태어나기도 하고 늙고 병들고 죽기도 한다.

    무위로써 인간들 앞에 나타나고,
    무위로써 온갖 중생을 구제하며,
    무위로써 살아가지만,
    무위이기 때문에 나도 난 것이 아니고,
    구제도 구제가 아니며,
    삶도 삶이 아니고, 죽음 또한 죽음이 아니다.

    그 어떤 흔적도,
    결과도, 티끌도, 업도 남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중생들 앞에
    일체 모든 것으로 화하여 나타난다.

    무위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과도 하나가 되어 나툰다.
    관세음보살이 33화신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며,
    이 세상 삼라만상 그 어떤 곳에서도
    법신불을 친견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무위의 행을 하며
    무위의 법을 설하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고정된 법이 없다.
    고정된 그 어떤 것도 없기 때문에
    도리어 그 어떤 것에도 수만가지로 응할 수 있는 것이다.

    무수한 중생이 있고, 무수한 근기의 중생이 있으며,
    또한 그 많은 중생들의 무량한 괴로움이 있지만
    여래는 무위의 행과 무위의 법을 설하기 때문에
    고정되지 않은 무량한 중생과 무량한 근기와 무량한 괴로움에
    자유자재로 나투는 차별법으로 중생앞에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정해진 바가 없이 무위의 행이라야지만
    무수한 중생 앞에 차별법으로 나투는 것이 가능하며,
    무량한 방편법을 행하고,
    무량한 근기에 대기설법으로 응하실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여래는 무량한 차별법을 행하지만
    무위로써 행한다.
    함이 없이 행한다.

    그렇다면 성현은
    왜 차별을 일으켜 중생들 앞에 나타나는 것인가.
    그것은 중생구제를 향한 동체대비(同體大悲) 때문이다.

    오직 성현은 중생구제를 위해
    동체대비의 마음으로 나툰다.
    부처님도 깨닫고 나서 바로 반열반에 들 수 있었지만,
    동체대비심 때문에 그대로 인간의 모양으로써
    80세까지 교화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반열반에 드심으로써
    비로소 온 우주와 하나가 되셨다.
    아니 우주 그 자체가 되셨다.

    일체 모든 것으로써 늘 나투고 계시는 것이다.
    바람으로도, 구름으로도, 태양으로도,
    사람으로도, 축생으로도,
    사랑하는 모습으로도, 미워하는 사람으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능히 나투어 주고 계신다.

    능히 나투어서 일체 중생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주변에 있는 일체 모든 모양으로써 나투고 있지만
    우리의 어리석음이 그것을 보지 못하도록 가릴 뿐이다.

    공연히 스스로 가리지만 않으면
    나도 존재도
     그대로가 부처이며,

    모든 행위가 그대로 함이 없는 부처의 행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차별있는 모습 속에서
    차별없는 무위의 부처를 볼 수 있어야 하고,
    차별있는 몸으로써
    차별없는 법신을 체득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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