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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소사 지장불 점안식을 다녀와서...
    ♠寺刹巡禮 2012. 1. 2. 04:36

    내소사(來蘇寺)는 한국의 8대 명승지 가운데 하나인 변산반도 남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 일대 사찰 가운데 최고의 명찰로 손꼽힌다. 행정구역상 소재지는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268번지이며, 예전에는 선계사·청림사·실상사 등과 함께 변산의 4대 명찰로 불렸으나, 지금 남아 있는 사찰은 오직 내소사 뿐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백양사의 말사로 속해 있었으나,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의 말사이다.
    내소사를 찾는 이들에게 유구한 사찰의 역사 못지 않게 큰 감동을 안겨 주는 일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사찰 일주문부터 천왕문에 이르는 약 600m 정도의 전나무 숲길이 그것이다. 마치 터널을 이룬 듯한 전나무 숲길 아래로 드문드문 보이는 산죽의 모습은 내소사가 간직하고 있는 특별한 자랑거리 중의 하나이다. 변산의 절경과 어우러진 내소사의 이같은 아름다움 때문인지 예로부터 많은 스님과 시인들이 이 곳에 들러 시를 남겼으며, 지금까지 각종 문헌에 이들 시가 전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소사의 창건 이후의 역사는 별로 전하는 내용이 없다. 오랜 역사 속에서 분명 많은 자료들이 만들어졌겠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오직 몇 개의 전각뿐이다. 그나마 지난 1995년에 <내소사사적비>가 건립되므로써 역사의 대강을 전하고 있는데, 여기에 수록된 내용들에 대한 역사적 고증과 보완 작업은 앞으로 계속 연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보물 제291호로 지정되어 있는 내소사는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만으로 끼워 맞춘 건물로 유명하지만, 내소사 들머리에 이어지는 전나무 숲길을 보기 위해 찾는 사람들도 많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그 길은 맑은 날에도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숲이다.
    한여름의 송풍회우(松風檜雨·소나무 가지에 바람 스치는 소리와 전나무 가지에 빗방울 스치는 소리)를 내소사의 운치라 말한다.

    전나무 숲길은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길이다.

     

     

     

     

     

    1000여년을....(군나무)

    화려하게 익은 빨아간 산수유

    범종각

    운판

    설선당

     

    설선당 솥

    설선당에서 바라보는 모습

     

    못 쓰지 않고 나무로만 지은 대웅보전
    나무 숲길을 지나 내소사 천왕문으로 들어서면 천년쯤 됐다는 느티나무와 마주하게 된다.
    세월 흐르는 동안 윗 부분이 고사돼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는 이 느티나무는 마을입구 일주문 앞에 있는 700년쯤 된 느티나무와 짝을 이룬다.
    밖에 있는 것은 할머니 당산나무, 절 안에 있는 것은 할아버지 당산나무로 전해진다. 옛날에는 마을사람들과 더불어 절에서 함께 당산제를 지내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마을 사람들만 매년 정월 14일에 마을 당산나무 앞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2층짜리 누각인 봉래루. 대웅보전 바로 앞에 누각과 문의 역할을 하는 건물이다. 위쪽은 누각이 되고, 아래쪽은 대웅보전으로 통하는 통로가 된다. 사람 하나 통과할 높이가 되는 봉래루지만 원래 높이는 이보다 50cm 정도 더 낮았다고 한다.
    그것은 불교가 탄압을 받을 때 양반들이 말에서 내리지 않고 대웅보전까지 들어와 예불을 올렸는데, 이를 막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그곳에 기거하는 한 보살의 이야기론 십 수년 전에 봉래루 아래로 사람들이 통과하기 편하도록 일부러 1층 기둥을 높이는 공사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전체의 수평적 공간감을 깨뜨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봉래루 앞에는 또 하나의 범상치 않은 나무가 서있다. 300살쯤 먹은 보리수나무는 꽃이 필 때면 내소사를 향기로 채운다. 봉래루에서 만난 한 보살은 ‘새벽녘 전나무 숲길’과 ‘보리수’ 향기를 제일 좋아한다니, 보리수 꽃향기가 궁금하다.

     

     

    우리나라 꽃살문 중 가장 빼어난 아름다움
    2층인 봉래루를 지나면 못을 쓰지 않고 나무로만 지었다는 대웅보전과 꽃살문을 만나게 된다. 내소사 대웅보전은 우리나라 꽃살문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빼어난 것으로 이름나 있다. 오랜 세월 지나는 동안 단청은 빛바래져 화려함을 잃고 이제 거의 나무색 그대로이지만 그 편이 내소사와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꽃살문은 북쪽에서 자란 100∼200년짜리 소나무를 3년 동안 바람에 말린 다음, 4년째 창고에 보관했다가 꽃과 살을 조각하고 문틀에 끼워 맞춘 뒤 단청을 입혀 완성한다고 한다.
    어떤 이는 꽃살문의 진짜 아름다움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달 밝은 밤 꽃살문을 통해 대웅보전 안으로 쏟아지는 달빛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하니 볼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람이 많이 찾는 절이지만, 내소사는 어디에든 하염없이 앉아있을 수 있는 절이다. 능가산에 살포시 들어앉아 있는 내소사 경내 어디든 앉아 있으면 모났던 마음도 둥글어진다. 내소사가 모나지 않게 자리잡은 것처럼.
    능가산은 내소사를 품고, 내소사는 나무를 품었다. 나무를 품은 절 내소사는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을 품는다. 내소사를 찾은 이들이 마음의 평화를 느끼는 것은 모든 것을 품는 자연과 내소사가 모나지 않게 어울려 있기 때문이다.

     

     

     

     

     

     

    개안식(開眼式)이라고도 한다. 새로 조성한 불상 등에 경전과 다라니 등의 복장(腹藏)을 넣고 나면 불상의 조성은 일단 완성되는데(事의 개안), 점안식은 여기에 공양 등의 법요식을 통해 종교적 생명(부처 또는 보살의 靈)을 맞이하는(理의 개안) 의식으로 부처가 가진 32상(相)과 80종호(種好)의 장엄이 나타나게 해달라는 것이다. 눈을 그리기 전에 불상의 눈이 육안(肉眼)·천안(天眼)·혜안·법안·불안·십안(十眼)·천안(千眼)·무진안(無盡眼)을 성취하기를 기원하고 개안광명진언·안불안진언(安佛眼眞言)·관욕진언(灌浴眞言)·시수진언(施水眞言)·안상진언(眼相眞言) 등을 외어 신비력을 가지게 한다. 점안식에는 불상점안 외에 나한점안·사천왕점안·시왕점안 등이 있다.

    나의 발길은 너무 행운의 하루 였다고 표현 해야 할까?

    평생 한번 볼까 말까 하는 지장전 지장보살 점안식이 마치 봉행중이였다.

    부처님의 지혜 광명이 임하도록 해서 부처님의 역할을 하게 하는 의식이 점안식이라는데,

    사대부중과 스님들이 봉행하시는 점안식은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삼성각

     

     

    사대부중들은 5색줄을 부여 잡고 지장보살의 원력을 받고자 소원을 빌고 있었다.

    나 역시도 5색줄 일부를 보살님으로 부터 공양을 받고 공양간으로 향했다.

    공양간에는 각종 나물류로 장만한 진수성찬이 부페식으로 차려져 있었다, 일생동안 사찰음식을 이렇게 다양하게 맛있게 먹어본일이 없다고 본다.

    토란국에 각종 나물류로 차려진 점심 공양을 마치고 산문을 나왔다. 곳곳에 잔설이 남아 있고 산문입구로 등산객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대웅보전안에서 용을 보고 있노라니 또다른 특이한 점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다른 사찰과 다르게 내소사 대웅전의 용은 물고기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이 내소사의 보물 찾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단청 역시 고색단아하게 처리되어 더더욱 역사를 말하여 주고 있었다. 

    대웅전내 삼존불

     

     

     

    대웅보전뒤에 만들어진 미니 눈사람

     

     

     

    지장전 닷집

     

    지장불

     

    대웅전 서까래 옆에 지은 새집

    목련 꽃 봉오리

     

    고려동종

    ‘신라의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창건한 사찰로서 대·소의 두 소래사가 있다.’라는 표현이 있어 신라의 혜구 스님이 창건한 사찰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이 자료가 편찬된 16세기 무렵에는 내소사가 대·소의 두 개 사찰로 구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대내소사’는 소실되어 없어지고 지금의 내소사는 ‘소내소사’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게 일반적 견해이다.
    한편 내소사의 역사와 관련하여 눈여겨 둘 점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사찰 이름의 변화에 대한 내용인데,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내소사의 이름은 소래사(蘇來寺)로 불리워졌던 것이 확실하다. 위에서 든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하여 18세기에 편찬된 신경준(申景濬)의 『가람고』에도 소래사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이유로 사찰명이 바뀌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1700년에 제작된 괘불과 내소사 동종에 새겨진 1853년의 명문에는 내소사라는 이름이 있어, 한동안 두 사찰명이 혼용되다가 이후 바뀐 이름인 내소사로 정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내소사의 역사를 전해주는 문헌 자료는 별로 없는 실정이며, 다만 조성년대를 알 수 있는 몇 종류의 유물 자료가 있다. 문헌에서 보이는 내용을 종합하여 연혁을 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주요 연혁 

    -  신라시대혜구 스님이 창건.

    -  740년(신라 효성왕 4)산내암자인 지장암(현 서래선림)을 진표율사가 창건하
       였다고 하나 확실치 않음.

    - 고려시대삼층석탑 조성.

    - 1414년(조선 태종 14)실상사에서 봉래루(蓬萊樓)를 이건하였다고 하나 확실
      치 않음.

    - 1415년(태종 15)이씨 부인이 그의 남편 유근(柳謹)의 명복을 빌기 위해 『묘
      법연화경』 사본을 만듬. 내소사에 소장되어 있다가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
      전시하고 있음.

    - 16세기 경대소래사·소소래사의 두 사찰이 존재하고 있었음.

    - 1633년(인조 11)청민선사(靑旻禪師)가 중창함. 이 때 지금의 대웅보전을 건립
      함.

    - 1640년(인조 18)청영대사(淸映大師)가 설선당과 요사를 함께 건립함. 이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재래식 정랑이 현존함.

    - 1700년(숙종 26)괘불탱화를 조성함.

    - 1850년(철종 1)청림사(靑林寺) 터에 묻혀 있던 고려 동종을 파내어 내소사로
      옮겨옴.

    - 1853년(철종 4)내소사로 옮겨 온 동종에 명문을 새겨 넣음.

    - 1902년관해선사(觀海禪師)가 중창함. 이 때 대웅보전도 중수함.

    - 1941년삼성각을 건립함.

    - 1960년삼성각의 칠성탱화를 조성함.

    - 1963년고려시대 동종이 보물 제277호, 『묘법연화경』 사본이 보물 제278호,
      대웅보전이 보물 제291호로 각각 지정됨.

    - 1983년일주문을 조성함.

    - 1985년대웅보전을 보수함.

    - 1986년설선당과 요사를 보수함. 천왕문을 건립함.

    - 1987년봉래루를 해체하여 복원함.

    - 1988년 진화사(眞華舍)를 건립함.

    - 1989년대웅보전의 삼존불상을 개금함.

    - 1994년부도전을 정비함. 화엄채를 무설당으로 고침.

    - 1995년경내의 수각을 제작함. <내소사사적비>를 건립함.
      <해안당대종사행적비>를 건립하고 종각과 범종을 세움.

    - 1997년 괘불도가 보물 제1268호로 지정됨.

     

    사찰에 전하는 내용에 따르면 내소사의 역사를 정리한 사지(寺誌)가 한국전쟁 이전까지 존재하고 있었으나 아쉽게도 전쟁 중에 불타버렸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더 이상의 연혁 내용을 확인할 수 없으며, 아울러 봉래루의 이건 시기 등 불확실한 내용에 대한 고증도 어려운 상태이다.
    어쨌든 위의 연혁 내용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내소사의 현재 가람 배치는 17세기 중창 때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청민선사라는 분이 주도한 이 시기의 불사는 과거 ‘소소래사’ 터 위에서 이루어졌으며, 이 때 건조된 대웅보전에 얽힌 설화도 함께 전해지고 있다. 이 설화의 내용을 모두 옮기긴 어렵지만 당시 대웅전을 조성한 도편수는 호랑이가 화현한 대호선사(大虎禪師)이며, 대웅전 내부의 단청과 그림을 그린 새는 관세음보살의 화현이었다는 것이 줄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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