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용들의 야단법석(개암사)
    ♠寺刹巡禮 2012. 1. 1. 18:09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9호 개암사응진전16나한상(開巖寺應眞殿16羅漢像)

    개암사는 전라북도 무안군 상서면에 있는 사찰로, 개암사의 응진전에는 각기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는 16구의 나한상(羅漢像)이 모셔져 있다. 나한은 ‘아라한’의 준말로, 온갖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어서 세상 사람들의 공양을 받을 만한 공덕을 갖춘 성자를 뜻한다. 『발원기』와『사적기』등 전해 내려오는 기록에 의해 조선 숙종 3년(1677)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16나한이 지닌 단아한 형태와 부드러운 양감 등은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관련 기록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양식적으로도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다.

     

     

     

     

     

     수각

     

     당간지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3호 청림리석불좌상(靑林里石佛坐像)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청림리에서 옮겨온 고려시대의 불상. 현재 부안군 개암사에 소장되어 있다. 파손되었던 목과 코를 시멘트로 복원하였지만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조각이 정교한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이다. 독립된 대형의 석불로서는 매우 드문 귀중한 유례이다.

    머리에 두건(頭巾)을 쓰고 양손을 복부에 놓고 엄지를 곧게 펴서 맞대어 보주(寶珠), 곧 여의주(如意珠)를 감싸 쥔 전형적인 두건 지장보살상이다.

    두건은 이마에서 관자놀이까지 두른 뒤 끈으로 묶지 않고 곧장 귀 뒤로 하여 어깨까지 늘어뜨렸다. 두건 자락은 왼쪽 어깨에는 곧게 표현된 반면 오른쪽 어깨에서는 한 번 접혀져 물결 형태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목 뒤에서는 단정한 타원형을 그린다.

    얼굴은 통통하게 살이 올라 복스런 모습이다. 그리고 두 눈을 지긋이 감고 작은 입을 살짝 다물어 동안(童顔)을 연상시킨다. 둥근 얼굴 모습과 어울려 신체 역시 예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둥근 맛이 강하다.

    몸의 굴곡이 완연한 신체 조형과 적절한 신체 비례는 자칫 위축되기 쉬운 집보주상의 조형적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사실적으로 조각한 오른발을 드러내며 가부좌한 너비가 넓은 하체와 몸 중앙에서 모은 수인과 조화롭게 구성된 양팔의 모델링(modelling)이 그러하다.

    가사는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이며 수직으로 넓게 트인 가슴 사이로 직선적으로 표현된 내의(內衣)의 끝 자락과 그 아래로 나비매듭으로 군의(裙衣)를 묶은 허리띠 매듭이 단정하게 조각되었다.

    상의 뒷면에는 양어깨 뒤로 넘긴 가사 자락이 조각되어 있다. 대좌는 상·중·하대로 구성된 삼단 대좌이다. 상대와 하대석은 볼륨이 강한 복판(複瓣 : 겹잎) 연꽃이 조각된 팔각 연화좌이지만 중대석은 고려시대의 부도나 석등 등에서 흔히 나타나는 고복형(鼓腹形)인 점이 흥미롭다.

    잘 알려져 있듯이, 두건 지장은 서역의 투르판(Turfan)과 중국의 변경 지역(敦煌 등)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 주로 발견되는 특이한 지장보살의 도상(圖像)이다.

    그러나 회화가 아닌 조각으로서의 두건 지장보살상이 특히 전라북도 지역에 많이 유존하고 있는 사실(禪雲寺의 금동지장보살상 2구 및 약사전의 석조지장보살상 등)은 이 지역 특유의 신앙 형태를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석불이 있었던 곳은 신청림사(新靑林寺) 터로 알려진 곳이다. 주변에 기와 편이 흩어져 있으며 여기서 출토된 고려시대 동종 1구가 현재 내소사(來蘇寺)에 보관되어 있다.

     

     

     

     

     

     

     

     

     

     

    개암사 동종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6호

    전체높이 89㎝, 구경 61.5㎝의 크기로서 숙종 15년(1689)년에 주조되었다. 종신의 견부(肩部)에 사각형의 구획을 연결한 견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 안에 범어(梵語)와 2행의 한자명문이 양각되어 있다. 견대의 아래에 4개의 유곽(乳廓)이 있으며 그 내부에 8판화형(八瓣花形) 유좌(乳座)를 갖춘 9개의 유두(乳頭)가 돌출되어 있고 연화모란문(蓮花牧丹文)이 양각되어 있다. 이 유곽의 각각의 사이에 4개소의 보살입상이 양각되어 있으며 운형좌(雲形座) 위에 천의(天衣)를 입고 두손으로 향화(香火)를 잡고 보관을 쓰고 있다. 종의 머리부분(頂部)은 용으로 장식하였는데 4개의 발 모두 종머리를 딛고 있으며, 용머리 뒷편에는 용통(甬筒)이 있다.

     

     

     녹차밭

    개암여관의 고드름

     

    사찰을 순례하면서 종무소에 들러 동진보살님으로 부터 개암죽염과 같은 구수한 사찰설명을 잘들었으며 잔설이 쌓이 조용한 사찰에서 커피한잔의 공양이야 말로 감로수와 같은 맛이였다.

    우리니라 사찰중에서 49천도제가 처음시작되었다는 설도 있으며 우금바위 아래에는 원효대사가 수행하던 석굴2개와 암자가 존재한다고 전해오고 있다.

    우리나라 개암죽염의 생산지이기도 하였으며, 용의 해 임진년을 맞이하여 용이 가장 많은 사찰이라고 해서 용을 쓰고 보물찾기 하듯 용을 찾기 시작하였다.

    석가모니불위 닷집에는 용들이 야단법석을 하고 있었으며 천정에 모두 12마리의 용과 법종 머리에 2마리 용두, 그리고 반야용선을 상징하는 대웅보전 밖에 공포에 배치된 2마리 용 모두 합쳐서 16마리를 찾았다.

    신묘년의 묵은 망상들은 훌훌 털어버리고 개암사에에 임진년의 염원을 용들과 함께 에너지를 가득 품어 보았다.

    유명하지 않아서 아름답고, 고즈넉해서 오히려 정겨운 개암사 ....

    용이 봉황을 없고 있는 모습 어느곳에서도 찾을수 없는 또 하나의 보물이라 할 수 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