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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과 족제비의 술래잡기를 찾아서 불갑사(佛甲寺)로
    ♠寺刹巡禮 2012. 1. 3. 08:26

     

    불갑산
    불갑산(516m)기슭에 자리잡은 불갑사는 인도승 마라난타가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에 제일 처음 지은 불법 도량이라 하여 절이름을 불갑사라 하였다고 한다. 불갑사 오는 길목에는 봄이면 벚꽃이, 8월이면 백일홍이 9월이면 전국 최대 군락을 이루는 상사화(꽃무릇)가 만개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고 등산로가 잘가꾸어져 있어 산을 찾는 등산객이 늘어가고 있다.

    대웅전 (보물 제830호)
    겹처마인 팔작지붕으로 된 다포계(多包系)건물로 매우 화려한 양식을 자랑하고 있으며 3가지 특색있는 것은 관솔문·삼신불좌상·지붕위의 스투파다.

    불갑사는 백제 침류왕 원년(384)에 인도승 마라난타가 세웠다는 설과 무왕때 행은 스님이 세웠다는 설이 있으나 세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석가모니 불상을 모셔 놓은 법당인 대웅전은 18세기 이전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데, 기와 가운데 건륭 29년이라고 쓴 것이 발견되어 조선 영조 40년(1764)에 고친 것으로 짐작한다. 그 뒤 융희 3년(1909)에 수리하였으며,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지붕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지붕 위부분에서 작은 석탑과 보리수를 조각한 장식을 볼 수 있으며, 가운데 칸 좌우의 기둥 위에는 용머리를 조각해 놓았다. 또한 가운데 칸에 달린 문은 연꽃과 국화모양으로 꾸며 뛰어난 창살 조각 솜씨를 엿보게 한다.
    건물 안쪽의 모서리 공포부분에도 용머리를 장식하고 있고 천장은 우물정자모양으로 꾸몄으며 화려한 무늬와 조각을 새긴 조선후기 목조 불전 건축으로 시대적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어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천왕문

    일주문과 금강문

    당초 전각들에 배치한 용두를 새로이 번와 공사를 하면서 이곳에 모셔둔듯 싶다.

    임진년을 맞이하여 또다른 용을 맞이함에부처님의 에너지를 뜸뿍 담았다.

    개암사 동진 스님이 개암사가 우리나라에서 용이 제일 많다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어린아이처럼 용을 세워 보았다. 대웅전 내부에 16마리, 대웅전 밖에 4마리를 찾았다. 사찰순례시 특히한점을 찾아 보물찾기하듯 순례를 하다보면 한결 아름다움과 선조들의 향기를 느낄수 있다고 본다.

     

     

     

     

     

     

    만세루
    대웅전앞 중심축선상에 있는 중층형루. 대개는 누하진입을 하는 문루인 경우가 많은데 유일하게 화엄사의 보제루와 이곳 만세루가 낮은 중층을 이루고 있으며 하절기에 강학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겨울 산사의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불갑사 장독대

    탑신은 소실되고 없는 진각국사탑

    영광 불갑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靈光 佛甲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불갑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나무로 만든 삼세불좌상으로,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하여 왼쪽에는 약사불이 배치되고 오른쪽에는 아미타불이 자리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은 주존불로서 삼불 가운데 가장 크고 건장한 신체에 넓은 무릎을 하여 안정되어 보인다. 육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머리에는 정상계주와 중앙계주를 큼직하게 묘사하였으며 네모꼴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엿보인다. 두 귀는 길어서 어깨까지 늘어졌고, 약간 굵어진 목에는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옷은 양어깨를 모두 덮고 있는 형식으로 오른팔을 드러냈으며, 옷주름은 두 다리 위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다. 손 모양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는데, 양손 모두 마치 실제 인물의 손처럼 표현하여 사실성이 돋보인다.

    약사불과 아미타불 또한 불명확한 육계, 팽창된 얼굴, 분명한 이목구비, 부피감 있고 편안한 자세, 사실적으로 표현된 양 손,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옷주름 등의 세부 표현에서 본존인 석가모니불과 공통적인 특징을 보인다. 다만, 석가모니불에 비하여 크기가 다소 작아지고 양어깨를 모두 덮은 옷에 오른팔을 드러내지 않고 아미타인(阿彌陀印)의 손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불상 조성기에 의하여 1635년 무염(無染)스님을 비롯한 승일·도우·성수 등 10인의 화승들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무염비구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초기의 것으로, 전라도·충청도·강원도지역을 거쳐 폭 넓게 활약하던 무염일파의 작품과 경향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익공과 천정 단청

    기둥상부에 흔적을 보면 양쪽다 용으로 조각된것으로 판단되고 훼손되어 용 조각이 없어진듯 하다.

     

    종교미술에 해학이나 유머, 그리고 여유로움이 나타날까?

    용이 족제비를 쫒는 모습....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다. 다른 종교는 근엄함과 경직 그리고 신을 향한 끝없는 복종을 종교미술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불교는 다르다. 불교는 그 근본부터가 인간의 자유롭고 끝없는 사유에서 나타난 깨달음의 종교이다.

    특히 한국 불교미술에서만 나타나는 근엄함 속에 내재된 편안한 그 무엇, 그리고 여유, 이것이 불교미술의 해학이다.

    근엄하고 엄숙해야할 공간에 "미소와 여유"을 담아내고 있으며 술래잡기를 하는 용과 족제비의 조각....

    불교미술의 해학에 대하여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러나 사찰의 구석구석을 찬찬히 살펴보면 조상들이 남긴 사찰 조형물에서 해학과 유머 그리고 여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우리민족은 해학이 풍부한 민족이었다.

     

    해학은 우리들의 삶 속에 없어서는 안 될 멋진 마음의 여유이다. 경직되었던 마음을 일순간에 풀어주고 고단한 삶에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부처님 말씀일 것이다.

     

    불갑사 닷집

     

    불갑사 대웅전 안에 부처님이 앉은 대좌와 닫집 옆을 살펴보자.

    호남의 유서 깊은 고찰로 삼국시대 백제에 불교를 처음 전래한 인도스님 마라난타존자가 남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 침류왕 1년(384년)에 영광 땅 법성포로 들어와 모악산에 최초로 사찰을 창건했는데, “이 절이 모든 부처님을 모신 사찰의 으뜸이 된다.”고 하여 불갑사(佛甲寺)라고 이름 지었다고 하기도 하고 불교가 처음들어온 사찰이라고도 전하고 있다.

    불갑사 대웅전(보물 제830호)의 부처님을 참배하면 그냥 물러 나오고 만다.

    그러나 눈을 돌려 찬찬히 살펴보면 수미단 위에 특이한 석가모니불대좌의 조각을 볼 수 있다.

    양 옆 협시 불대좌와는 사뭇 다른 더욱 장엄된 대좌에 난간이 둘러 쳐지고 둘러쳐진 난간을 용(10마리)들이 입으로 물고 부처님을 떠받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일반적인 조선시대 사찰의 대좌에서 이러한 조형을 종종 볼 수 있다고 전해 오고있다.

    대좌(臺座)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시기 전 길상이라는 목동이 풀을 베어서 부처님이 앉으시도록 바친 좌대로 부처님께서는 이 풀을 펴서 깔고 결가부좌하여 ‘정각을 이룬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나리라’ 말하며 선정에 드셨다.

    그때 목동이 바친 풀이기 때문에 길상초라 말한다. 또한 ‘깨달음을 이룬 자리’라는 뜻으로 금강보좌(金剛寶座)라 말한다.

    이와 같은 좌대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각 이후 그의 설법에 따라 사자좌(獅子座) 또는 연화좌(蓮華座)로 고정되어 지금의 연꽃 위에 앉으시는 대좌가 되었다.

     

    대좌 난간 정중앙에는 용이 아닌 용의 얼굴 보다 작은 크기의 해학적인 사자가 대좌의 주인 행세를 하며 두 발로 서서 두 손으로 대좌의 난간을 살짝 들고 있다.

    주변의 용들은 대좌 밑에서 나와 목을 빼서 강한 이빨을 드러내어 난간을 물고 젖 먹던 힘을 다해 부처님을 받들고 있으나 그러나 정작 대좌 중앙의 사자는 힘도 들이지 않고 살짝 대좌 난간을 들기는커녕 손만 대고 잘난 듯 웃고 있다.

    주변의 용을 쳐다 보면서 ‘용용 죽겠지?’ 하고 놀리는 듯 재미난 해학적 조형미가 뛰어나다. 근엄하게 용들이 호위하는 대좌를 약 올리듯 웃고 있는 앙증맞은 이 사자는 과연 무엇이기에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나? 참으로 이상하고 야릇하다.

    수미단 위의 불(佛) 대좌는 사자좌(獅子座)이다.

    부처님은 인간의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분이므로 사자에 비유한 말이다.

    사자후(獅子吼)는 부처님의 음성을 사자의 큰 소리에 비유하여 일컫는 말로 “사자가 큰 소리를 내면 여우의 대갈통이 깨어진다.”하여 “부처님의 진리의 음성은 모든 악을 물리친다.”는 의미의 파사현정(破邪顯正)을 나타내기도 한다.

    예하(猊下)는 예좌하(猊座下)의 뜻으로 즉 사자(부처님) 자리 아래의 분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종정예하’란 경칭을 쓴다.

    경전의 내용을 이해한 스님들이 조각한 조선시대의 불갑사 대좌는 사자의 자리로 작은 사자가 용들을 부리며 거들먹거리기에 충분하다. 참으로 재미있고 익살스러운 해학과 유머가 넘치는 조각이다.

    또한 대웅전의 석가모니불과 좌우에 약사여래불, 아미타불을 모신 삼세불좌상(보물 1377호)의 닫집 옆 양 기둥에는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용과 족제비 2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취산에서 근엄하게 법화경을 설하시는 영산회상의 공간에 난데없이 나타난 용과 2마리의 족제비. 이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영산회상은 수많은 불보살들과 성중들이 빈틈없이 운집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자리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합장하거나 희유하신 세존을 향해 경배하는 장엄 그 자체이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의 놀이인 숨바꼭질에만 열중하는 용과 족제비의 조각을 보면 근엄함과 경건함을 깨는 해학과 유머 그 자체이다.

    ‘꼭꼭 숨어라 꼬리가 보인다.’ 놀이에 열중하다보니 부처님의 말씀은 귀에 들리지 않고 놀이 삼매에 빠져 버린 듯하다. 용이 술래가 되어서 닫집 위 대들보 속에서 고개를 내미니 한 마리 족제비가 그만 들키고 말았다. 잡았다! 소리치는 용과 들켜버려 고개를 술래 쪽으로 돌린 족제비. 이 광경을 목격한 다른 기둥의 족제비가 고개를 돌려 보고 있다.

    참으로 재미난 조형이다.

    어린아이들의 숨바꼭질 놀이를 부처님을 지키는 용과 산에서 불러들인 족제비가 한판 놀이로 근엄한 공간을 깨는 어린아이들의 웃음처럼 여유를 더해준다. 근엄한 설법 가운데 숨소리조차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기 놀이에 열중인 파격적인 여유! 과연 불교다운 발상이다. 관념화된 질서를 깨트리는 해학적인 안목 우리조상들 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대좌 안상속의 한 마리 사자가 부처님을 지키겠다는 굳은 서원을 세운 듯 용맹스럽기도 하고 안하무인(眼下無人)인 듯한 표정으로 뽐내고 있다. 자기가 부처님을 지키는 최고의 무사인양 태권도를 하듯 머리 갈기를 휘날리며 포효하는 입, 불끈 쥔 두 손은 공격 자세를 취하고 한발은 땅에 대고 다른 발은 옆차기로 곧 날아올 듯한 사실적이고 해학적인 표정이 마냥 신기하고 정겹기만 하다. 1200년의 세월을 지켜온 사자에게 감사의 인사라도 하고픈 마음이 든다. 무섭다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서 조상들의 따듯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하듯 불 대좌의 사자는 부처님을 최 측근에서 모시는 동물로, 우리 조상들은 무섭고 두려움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익살스럽고 친근한 모습으로 표현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여유와 미소를 머금게 한다.

     

     

    인도의 영향이라 할수 있는 대들보에 코끼리상의 벽화를 엿볼수 있다. 물론 다른 사찰에서 흔히 볼수 있는 코끼리상은 아니다.

    익공과 보부분에 다른사찰에는 회벽 처리를 하고 벽화를 그렸으나 불갑사에는 판재를 사용해서 그곳에 판화를 그려넣은것 또한 불갑사만의 독특한 양식이라 볼수 있다.

    귀면상을 대웅전에서 접하고 보닌 천안 각원사 문틀의 귀면상과 개암사 대웅보전위에 배치된 2개의 귀면상이 생각 났다.

    개암사 대웅보전위에 배치된 귀면상은 밖에다 배치한 반면 불갑사의 귀면상은 석가모니불을 향해 2개의 귀면상이 조각 단청 배치되어 있어 석가모니불을 지키고 있는듯하다.

     

    대웅전뒤 벽면에 배치된 수월관음도 수수하고 단아하기도 하다.

     

     

     

     

    용마루에 배치한 귀면 모양의 보탑

    내림막새에 새겨서 번와한 불경

    모악산호랑이와 산신할아버지

     

     

     

     

    불갑사는 최근에 단청불사를 한듯하다.

    단청을 하고 전각들을 보수등 하여 옛모습이 사라진게 안타깝다.

    몇년전의 모습은 간곳없고 처마밑에 주렁주렁달린 메주의 정겨움도 찾을길 없었다.

    요즈음 바뀌어가는 돈냄새가 나는 사찰로 변해가고 있는듯 겉모습에서는 친밀감을 잃어간다고나 할까?

    특히 대웅전앞으로 물이 고여 있는 것이 보기에 매우 안쓰러웠다. 물론 전각들에 습기로 인한 보존관리에 문제가 발생할 수 도 있기때문이다. 불갑사 종무소에서는 배수공사를 새로 하여 전체적으로 불갑사가 물이 많이 흐르는 곳으로 판단되므로 물길을 잡아야 할것으로 생각된다.

    사찰순례하는 불자들에게도 불편을 제공하는 배수문제해결이 시급하다.

    잔설이 남아있는 겨울 사찰순례만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산문을 나왔다.

     

    범종루
    지옥중생의 고통을 그치게 하고 마음을 청량하게 하는 의미의 대범종을 모신 2층 누각 건물로서, 전면은 낮은 중층형이고 후면은 고루를 이루는 특이한 형식을 띄고 있다.

     

     

    영광 불갑사 불복장전적(靈光 佛甲寺 佛腹藏典籍) -보물 제 1470호

    영광 불갑사의 명부전과 팔상전 그리고 사천왕상에서 나온 복장전적은 몇 권의 고려본을 포함하여 대부분 조선조 전기에 간행된 것으로 법화경, 금강경 등 당시 널리 유통된 대승경전들과 불교 전문강원 중등과정인 사집과(四集科)의 교재를 비롯한 선종관련 이론서, 수륙재 관련문헌 등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이들은 조선 전기 한국불교신앙 형태를 살피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함께 나온 31건의 나한상과 시한상 등의 조상 발원문, 중국에서 수입한 만력년간의 불교문헌은 우리나라 불교사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등 한국불교사상과 문화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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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광 불갑사의 명부전과 팔상전 그리고 사천왕상에서 나온 복장전적은 몇 권의 고려본을 포함하여 대부분 조선조 전기에 간행된 것으로 법화경, 금강경 등 당시 널리 유통된 대승경전들과 불교 전문강원 중등과정인 사집과(四集科)의 교재를 비롯한 선종관련 이론서, 수륙재 관련문헌 등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이들은 조선전기 한국불교신앙 형태를 살피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함께 나온 31건의 나한상과 시한상 등의 조상 발원문, 중국에서 수입한 만력년간의 불교문헌은 우리나라 불교사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등 한국불교사상과 문화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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