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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현기청분(3)
    金剛經 2011. 12. 7. 03:28

     

     

    세존이시여,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의 길로 들어선 선남자(善男子)와 선여인(善女人)들은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물러야 하고,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수보리여,
    그대가 말한 것처럼 여래는 모든 보살들을 잘 보살피며,
    모든 보살들에게 잘 부촉하고 있느니라.
    내가 그대를 위해서 말하노니 잘 들으라.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의 길로 들어선 선남자와 선여인이
    어떻게 그 마음을 머물러야 하고,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를 그대에게 설하리라. "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기쁜 마음으로 듣고자 합니다."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의 길로 들어선 선남자 선녀인’이란
    마땅히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수행의 길로 들어선 모든 보살들이란 말입니다.

    여기에서는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의 길로 들어선’이라고 번역했는데,
    구마라집의 번역에서는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현장의 번역에서는
    ‘발취보살승(菩薩乘)’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란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이는 ‘더 없이 높고(無上), 비길 데 없는(正等) 바른 깨달음(正覺)의 마
    음’
    이란 의미로, 한 마디로 말하면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장 번역의 발취보살승이
    범어의 원본의 의미와 좀 더 가까운데 이는
    ‘보살승에 굳게 나아가는’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므로 범어 원본과 현장, 구마라집의 번역을 보았을 때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의 길로 들어선’
    이라고 해석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선남자 선녀인이란
    ‘부처님께 귀의한 사람’ 혹은 ‘불자’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불법에 귀의한 남자와 여자를 가리킨다고 보면 됩니다.

    다시 말해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의 길로 들어선 선남자 선녀인’이란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보살의 길에 들어선 수행자들로,
    여기에서는 첫째, 이미 깨달음을 얻은 보살의 의미와
    둘째로, 아직 깨닫지는 못하였지만
    초발심이라도 보리심을 발한 모든 수행자라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금강경의 가르침을 통해서
    두 가지 모든 종류의 수행자들의
    나아갈 길에 대한 해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들 가운데는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제자들도 있으며,
    수보리처럼 이미 아라한과를 얻은 제자들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보리는 두 가지 의미에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지만
    보리심을 발한 모든 수행자들을 위해 질문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처럼 깨달음을 얻었지만
    열반적정의 저 언덕으로 가버리지 않고 이 언덕에 남아
    하화중생의 발원을 가진 보살들을 위해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수행자는
    모두 상구보리(저 언덕) 하화중생이라는 공통된 발원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러한 발원의 성취를 위해
    현재 이 언덕에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두가지 수행자 모두에게 중요한 법문으로 다가옵니다.

    수보리는 부처님의 호념과 부촉을 찬탄하면서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의 길로 들어선 수행자들은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수행해 나가고,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이 질문이 바로 선현기청의 내용이며,
    이에 답변을 하는 부처님의 말씀이
    바로 금강경의 본문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모든 수행자는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물고, 수행하며,
    다스려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질문이야 말로
    보리심을 발한 모든 보살 수행자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핵심이 되는 물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통 구마라집의 번역에서는
    ‘어떻게 머물러야 하며(住),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는지(降伏)’
    다시 말해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만 나오고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하는지’의 물음은 생략되고 있는데
    범어 원전에서도 등장하고
    현장의 번역에서도 ‘수행(修行)’으로 번역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어떻게 수행하는가 하는 말과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가 하는 의미를
    비슷하게 생각하였으므로 생략하였던 것 같습니다.

    또한 항복받는다는 의미가
    선뜻 와 닿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하시는데
    ‘마음이나 생각을 잘 다스려서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것’
    정도로 이해할 수 있으며
    쉽게 말해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불교 수행을 흔히 ‘마음공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결국 이 세상 그 무엇이라도 화엄경의 말씀처럼
    마음에서 나왔으며 이 마음이 세상을 짓고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또한 어리석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이 마음을 잘 다스려
    본래 마음자리를 되찾는 것이
    마음공부의 핵심일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날뛰는 마음을
    어떻게 머물러야 하는지,
    또한 잘 머무르기 위해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하는지,
    어떻게 이 마음을 항복받고 다스려 나가야 하는지가
    불교 수행의 관건이라 할 것입니다.

    또한 깨달았지만
    이 언덕에서 하화중생의 발원을 실천하고자 하는 보살들에게 있어
    어떻게 하면 저 언덕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을 다스려
    이 언덕에서 중생을 교화할 수 있는지,
    이 언덕에서 깨달은 마음과 교화 하겠다는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무르는지,
    어떻게하면 이 언덕에서도
    다시는 퇴전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고 수행해 갈 수 있는지,
    저 언덕으로 향하고자 하는 마음을
    어떻게 항복받고 다스려 발원을 성취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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