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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상황을 느긋하게 즐기라 / 법상스님◑解憂所 2010. 8. 9. 07:46
괴로운 상황을 느긋하게 즐기라 / 법상스님
늘 불안정하고, 불안하며,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삶은 아름답다.
삶이 안전하고 확실하게 정해져 있고,
안정적인 분명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면
그 삶은 얼마나 생기를 잃고 말 것인가.
그런 삶은 언뜻 보기에는 안정되어 보이고 행복해 보이겠지만
그런 삶을 사는 자는 나약하고 속박되어 있으며 틀에 박혀 있고
생기가 없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고, 그것도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다면
거기에 나만의 자유의지를 펼칠 공간이 없다.
확실한 삶에 틀어박히고 구속된 채 자유를 잃고 해맬 수밖에 없다.
그런 삶은 얼마나 희뿌옇고 재미가 없는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지, 한 달 뒤, 일 년 뒤, 십년 뒤
먼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면
그것처럼 따분하고 기계적인 맹숭맹숭한 삶이 또 있을까.
그것은 삶이 아니다. 그저 기계의 움직임일 뿐.
그것이 아무리 부유한 미래일지라도 그것은 구속이요 속박이다.
돈과 재물로 가득 찬 부유한 노후라고 할지라도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그런 삶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런 삶에 지쳐 미쳐버릴 지도 모른다.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고, 노후를 준비하려 들지 말라.
내 삶의 미래며 노후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가장분명하고 알찬 미래며 노후준비는 오직지금 이 순간에
주어진 삶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살아내는 일이다.
노후자금을 은행에 넣어두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이 순간의 깨어있는 삶으로써 시공의 법계에 무량한 공덕을
저축하는 일이다. 삶은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안정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단 한 순간의 미래도 보장되어 있지 않고 언제나 변하기 때문에 경이롭다.
우리는 그 불확실한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그 흐름에
나를 얹어 놓은 채 다만 따라 흐를 수 있을 뿐이다.
물론불확실하고 정해진 바가 없다면 불안할 수는 있다.
그러나 불안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 삶에서 때때로 마주하게 될 혼란과 위험을 거부하지 말라.
삶이라는 것은 우리 생각처럼 그렇게 좋은 일만 일어나는 곳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일만 일어나는 곳이 아니다. 원하는 대로 다 하며
살 수 있는 사람도 없고 그런 삶도 없다.
좋은 일만 일어나며, 원하는 대로 다 하고 살 수 있는 인생이
있다면 그 인생처럼 따분하고 심심하며 불행한 삶은 없을 것이다.
그런 삶에는 생기가 없고 지혜가 없으며 자유가 없다.
삶은 누구에게나 때로는 힘겹고 때로는 눈물겹다.
삶의 모퉁이에서 역경을, 위험을, 좌절을 만나게 된다면
호흡을 가다듬고 반짝이는 눈으로 눈부시게 지켜보라.
혼란스런 삶도 깊이 바라보면 눈부시게 빛난다.
또 때로는 극단적인 좌절과 혼란이 도리어 저 반대편의
극적인 기쁨이 되는 수도 있다.
최악의 상황에서 인생을 포기하려고 하던 사람들의
기도를 본 적이, 들은 적이 있는가.
인생의 최저의 나락에 빠져 있는 이들 일수록
그것에서 빠져나오려는 에너지는 최고조에 달한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단번에 그 상황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 극과 극은 언제나 가깝다.
그 둘은 서로 다른 극단이 아니라 다만 에너지의
다른 흐름일 뿐이다. 에너지의 흐름만 살짝 바꾸어
놓는 순간 그 삶은 경이로운 반전이 시작된다.
그렇기에 최악의 괴로운 삶은 곧 최고의 행복과 가깝다.
그 둘은 극단의 먼발치가 아니라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길벗이다.
살짝 고개만 돌리면 언제나 눈빛을 나눌 수 있다.
사랑을 시작했다면 그 이면에 증오를 또한 시작하고 있는 것이며,
크게 성공할수록 크게 실패할 가능성도 안고 있는 것이고,
삶에 대한 욕구가 클수록 죽음에 대한 고통 또한 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을 놓아버릴 때 증오 또한 놓여지며,
성공에 대한 욕구를 놓아버릴 때 실패의 두려움도 사라지고,
삶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릴 때 죽음에 대한 괴로움도
사라지는 것과 같다. 이처럼 극과 극은 언제나 함께 길을 걷고 있다.
인생이 자꾸만 꼬이고, 괴롭고, 답답하다고?
인생에서지 금이 최악의 순간이라고?
괴로운 일들이 몇 가지고 겹쳐서 나를 미치게 한다고?
잘되었다. 지금이 바로 삶의 경이로운 반전이 시작될 시점이다.
내생에 가장 큰 공부가 곧 시작될 것이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의 깊게 삶을 지켜보라.
‘이럴 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고민하지 말고
주의 깊게 마음을 지켜보기만 하라. 지켜보는 관조가
예민해지고 깊어지는 순간 마음의 메시지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불현듯 어떤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기도를 하고 싶을 수도 있고, 절을 하고 싶을 수도 있고,
아니면 무언가를 저질러 볼까 하는 생각이 일어 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만 그것을 하라.
주의 깊게 지켜보면서 다만 그것을 해 보라.
운이 좋다면 삶의 엄청난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알아챌 수도 있다.
언제나 그렇듯 기적은 아주 사소하게 우리 삶에 등장한다.
진리도 그렇고, 변화도 그렇고, 깨달음도 그렇고,
언제나 정점을 지나는 일은 놀라울 만큼
조용하고 차분하고 미세하게 다가온다.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 삶에 엄청난 진리가, 부처가,
신이 봄 바람이 불듯 그렇게 살며시 왔다가 살며시
몇 번이고 우리 존재를 스쳤을 터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깊은 관찰로 삶을 지켜보아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이처럼 삶의 역경과 혼란을 타고 진리는 온다.
삶이 비탈진 내리막에서 뒤집혀 막 내동댕이 쳐 지고
있을 때 도리어 삶의 획기적인 변화가 소리 없이 찾아온다.
이처럼 불안과 혼란과 위험과 역경은 모두 우리를
더욱 더 내면 깊은 곳에 뿌리내리게 하고, 존재의 깊은 심연에
이르게 해 주는 영적인 동반자요 도반 같은 것이다.
그것들이 없다면, 그래서 세상일들이 원하는 대로
순탄하게만 펼쳐진다면 그때부터 우리의 삶은 중심을 잃고
헤매게 될 것이다.
역경이 없고 순경만 있는 삶이란 그것이 곧 가장 큰 역경이다.
우리의 삶이 역경과 순경, 편안과 불안, 긴장과 이완이
반복된다는 것은 여간 감사한 일이 아니다.
또한 여간 당연한 일이 아니다.
그것이 삶의 속성이요, 진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다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좋고 싫게 받아들이고, 집착과 미움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다만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대로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지 않고 불안과 위험을 버리려 애쓰고, 행복과 편안과
순탄한 삶만을 바라기 위해 애쓴다면 그때부터 삶은
그대를 외면하고 심지어 파멸시켜 버릴 것이다.
그런 사람은 삶을 온전하게 살아 낼 수가 없다.
온전한 삶이 그대를 비켜가기 때문이다.
삶을 조종하려 들지 말라. 삶을 내 방식대로 통제하려
들지 말라. 내가 원하는 삶만을 살고자 애쓰지 말라.
그런 삶은 없다. 그렇기에 그런 삶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삶은 컴컴한 어둠 속이다.
내 앞에 일어나는 삶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이라.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여 선택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전체적으로 통째로 받아들이고 환영하며 감사하라.
삶을 조종하려는 자는 삶을 살 수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들만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자는
삶을 살 의지를 포기한 것일 뿐이다.
그런 자는 삶을 살아갈 아무 이유가 없다.
안정적이고 평탄한 삶을 추구하려는 생각이
모든 화를 부른다. 순탄한 삶만을 바라는 생각이
도리어 순탄하지 못한 삶을 만들어 낸다.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고정적으로 정해놓은
생각이 많을수록 ‘그런 삶’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만다.
‘이러이러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그 모든 생각을
놓아버릴 때 삶은 저절로 삶 그 본연의 길을 걷게 된다.
편안함을 갈구할수록 더욱 불편해지고,
안정을 갈구할수록 삶은 더욱 불안해진다.
편안, 안정에 대한 욕구를 놓아버릴 때 삶은 순조롭다.
이 세상의 근본 이치는 언제나 변한다는 제행무상의
이치와 고정된 것, 확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제법무아의 이치를 따른다.
또한 그러므로 삶이란 언제나 불안전하고 불안정하며
괴로울 수밖에 없다는 일체개고의 이치에 기초하고 있다.
그것이 삶의 기본 원칙이며 이치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기초를 거스르려 애쓴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며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을 살면서,
안정적이고 확실하며 불변하는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그런 것은 어디까지는 꿈이고 환영이며
억지일 뿐, 그런 것은 없다.
없는 것을 찾아 나서봐야 찾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삶을 전체적으로 받아들이라. 삶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하라. 그랬을 때 삶은 아름답다.
아니 사실은 불안하고 불안정하며 삶의 곳곳에 내재된
위험과 혼돈이 있기 때문에 삶은 경이롭고 찬연히
빛날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삶의 복잡성과 혼란과 어느 때고
쉴 사이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위험과 근심과 역경들,
그것들이야 말로 우리 삶에 가장 필요한 요소다.
그런 도전들이 없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피폐하고
나약해지고 말 것인가.
삶은 언뜻 보면 혼란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본질적인
진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모든 혼돈은 혼돈이 아니라
한치의 오차도 없는 조화로운 인연의 화합이요,
진리의 드러남이다. 혼란스럽게 보이는 모든 삶에는,
그것이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분명한 신의 메시지, 붓다의 뜻이 담겨있다.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라. 느긋하게 삶의 혼란을 즐기라.
아수라장처럼, 난장판같이 튀어나오는 삶의 모든 위험들을
그저 한발자국 떨어져 가만히 지켜보라.
다가오는 삶을 전체적으로 느끼고 만끽하고 수용하라.
그리고 그 모든 삶에 감사하라. 이렇게 될 수도 있고,
저렇게 될 수도 있으며, 이것이 될 수도 있고,
저것이 될 수도 있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삶이란
얼마나 생기로우며 아름다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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