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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천암-속리산
    ♠寺刹巡禮 2007. 10. 24. 04:58
    복천암 가는 길에 건너가는 '이 뭣고' 다리.
     
    북천암(福泉庵)은 문장대로 올라가는 길가에 있다. 울긋불긋한 옷차림을 한 등산객들
    이 길을 가득 메우고 있다.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뭣고'라는 다리를
    만난다. 마치 옛 친구를 만난 듯이 사뭇 반갑다. 내가 이 다리를 처음 본 것이 아마도 15
    년쯤 되었으리라. 다리는 그동안 얼마나 성성하게 '이뭣고?'라는 화두를 참구했을까. 
    '이뭣고'라는 화두는 철벽으로 꽉 막힌 삶이라는 일물(一物)에 시원한 구멍을 뚫기 위한 
    송곳이다. 그러나 난 꽉 막힌 삶에 길들여져 구멍을 뚫지 않아도 별 불편을 느끼지 못한
    채 여전히 두루뭉술하게 세상을 살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화상이 아닌가. 이윽고 복천
    암 입구에 닿으니 족히 3, 4백 년은 됐음직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길손을 맞는다. 마치 사
    천왕 중의 한 분처럼 당당한 체구로 암자 입구를 지키고 섰다. 
     
    복천암 전경.
     
    복천선원.
     
    선원 앞을 지키고 있는 주목.
     
    복천암 선원은 금강산 마하연, 지리산 칠불암과 더불어 구한말 3대 선방 가운데 하나로
    꼽히던 곳이다. 동산 스님, 성철 스님, 고암 스님 등 내로라하는 선승들이 모두 몇 철씩
    머물다 갈 정도롤 선수행으로 이름난 암자다. 선원 뜰 앞에는 상당히 밑동이 굵은 주목
    한 그루가 서 있다. 태백산이나 소백산 주목 가운데 가장 큰 나무와 맞먹을 정도로 굵은 
    나무다. 이곳에서 꽤 오랜 세월을 머무르면서 숱한 선객들을 지켜보았을 산 증인이다.
     
    수각(水閣)과 장독대. 맞배지붕 형태의 수각을 지어 샘을 보고하고 있다.
     
    선원 뒤 극락전으로 가려면 수각(水閣) 앞을 지나야 한다. 300여년 전, 선비 정시한이
    기이하다고 했던 그 샘물을 보호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 바로 수각이다. 복천암이란 암
    자 이름도 이 샘에서 유래한 것이다. 조선 세조가 복천암에 머물면서 피부병을 치료했
    다는 얘기도 필시 이 샘과 연관이 있을 터. 세조가 병을 고침으로써 복천암이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일까, 아니면 명성을 듣고 나서 세조가 찾아온 것일까. 혹 맑고 담백한 물
    맛을 가진 샘을 암자를 대표하는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울 줄 아는 상재(商才)를 가진
    스님이라도 있었던 것인가.
     
    극락보전.
     
       
         극락보전 좌측에 있는 산신각.
     
    복천암은 두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극락전을 중심으로 선원과 요사가 있는 남
    쪽 영역과 나한전과 요사가 있는 북쪽 영역으로. '속리산복천암선원복원기념비'
    는 극락전과 나한전을 1976년에 복원했다고 적고 있다.  산신각도 극락보전과
    같은 시기에 지어졌다. 산신각 탱화에 적힌 화기(畵記)에 그렇게 적혀 있다. 극
    락보전은 복천선원 뒤편 높은 축대 위에 있다. 극락보전은 정말이지 손바닥만한
    마당도 없다. 부족한 공간을 축대를 쌓아 넓혀서 건물을 짓다 보니 마당을 둔다
    는 것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 했을 것이다. 
     
    나한전.
     
    나한전 요사.
     
    산신각 옆으로 난 문을 나가서 오솔길을 조금만 걸어가면 나한전 영역에 닿는다. 나한
    전 요사는 본래 선원을 옮길 생각으로 신축한 건물이라 한다. 그러나 무슨 사연이 있었
    는지 예전 선원을 계속 사용하기로 함으로써 그냥 요사로만 쓰이고 있다. 나한전은 요
    사 뒤에 높게 쌓은 축대에 자리 잡고 있다. 정면 3간, 측면 2간으로 된 건물이다. 중앙에
    는 석가모니불을 봉안했고, 좌우로 8구씩 모두 십육나한을 모셨다. 극락전 영역보다는 
    이곳이 훨씬 더 아늑하게 느껴진다.
     
    입구의 채소밭.
     
    다시 극락전 영역으로 돌아와 복천암을 나선다. 암자 앞에는 텃밭이 있고 그곳엔 배추
    와 고추가 심어져 있다. 선승들의 노동은 곧 수행의 일환이다. '백장청규'는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이라 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도 말라"는 뜻
    이다.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는 말씀을 아시는가 이것은 나락도 거두어 갈무리하고 고추
    말려서 장에 내고 참깨도 털고 겨우 한가해지기 시작하던 늦가을 어느날 농사꾼
    아우가 한 말이다 어디 버릴 것이 있겠는가 열매 살려내는 햇볕, 그걸 버린다는 말씀
    이 당키나 한가 햇볕이 아깝다는 말씀은 끊임없이 무언갈 자꾸 살려내고 싶다는 말이
    다 모든 게 다 쓸모가 있다 버릴 것이 없다-정진규 시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 일부  
    올해는 정말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까울 만큼 비 내리는 날이 많은 해였다. 놀고 있는 햇
    볕도 아깝거늘, 하물며 놀고 있는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선가의 오랜 가풍인
    선농일치가 이곳에서만이라도 활짝 꽃피었으면 좋겠다. 부디 기복신앙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복천암이 아니라 스스로 복을 일구는 복전암(福田庵)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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