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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승사-문경
    ♠寺刹巡禮 2007. 10. 17. 07:26


     
    늦었다. 많이 늦었다. 산길 만큼 마음도 급하여 아름드리 전나무, 소나무 내음을 즐길 여유가 없다. 아침부터 기다리는 안동에서 오신님과 해후를 위해 주변에 전개된 풍광, 한가로움은 바람에 실려보내고 그렇게 일주문을 통과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죽령 동쪽 백리쯤 되는 곳에 높은 산이 우뚝 솟아 있고, 진평왕 9년 정미(丁未)에 별안간 사면이 방장(方丈)만 하고 사방에 여래가 새겨진 일대석(一大石)이 붉은 비단에 싸인 채 하늘로부터 산정(山頂)으로 떨어졌다.
     
    그 소문을 들은 왕이 그곳으로 찾아가  왕은 이 돌에 예배를 올리고 바위 곁에 절을 창건했으니 그 절이 대승사(大乘寺)다. 왕은 이어 연경(蓮經), 곧 〈법화경〉을 외는 스님을 청하여 주지로 삼았으며 산 이름을 역덕산(亦德山) 혹은 사불산(四佛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찻집에서 느긋하게 분(?)을 삭히고 있는 님들에게 용서를 구한 후 삼층탑을 바라보았더니 아뿔싸! 내가 그님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구하지 않았는지 석탑이 넘어질려고 한다. 연두님, 물돌이님, 선민아 미안해!!!
     
    이지방 특색인 단층기단에 기단 면석에는 탱주가 표현되었다. 1층 몸돌은 사다리꼴이며 근자에 조성한듯한 감실이 있다. 불현듯 김제 귀신사 석수가 떠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기계로 가공한 흔적이 역력하다. 본래 얕은 감실을 깊게 새겼는지 일부러 후대에 감실을 마련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떤 경우도 바람직한 불사는 아니다.



     
    루를 조성하는 불사가 한창이다. 감히 가타부타 거론할 처지도 아니지만 산지가람이 주는 포근하고 그윽한 배치가 훼손될까 두렵다. 중건전의 안온함, 편안함, 포근함이 불사후에는 답답함, 중압감으로 느껴지는 현장을 우린 너무도 많이 보았다. 강진 백련사 해남 미황사 은혜사 거조암......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겹처마, 팔작지붕 이며 1960년 이후 중건했다고 한다. 전면 측칸의 창호는 4분합의 문을 달았으며, 어칸은 6분합의 문에 꽃살을 장식하였다.



     
    대웅전과 무량수각 선원은 기와불사에도 불구하고 화려하거나 거부감을 주는 색조는 아니다. 하지만 두기의 정료대 위치는 모호하다.
     


     
    대웅전 기단부 면석에 연꽃이 피어나는 모습은  소박하게 보인다. 대승사 초대 주지스님 입적후 무덤위에 피어 났다는 연꽃을 묘사한 그림이 아닐까? 물론 길상의 의미가 강하겠지만 선원 관음보살의 연꽃, 마애여래좌상 머리위의 연꽃도 왠지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옹기를 반자른 듯한 항아리에 수련이 심어져 있다. 그냥 꽃으로 보아야하는데 기단 연꽃과 묘하게 대비되며 엉터리 가설을 확신하게 만든다.



     
    홍천 수타사 대웅전 앞 청수대와 같은 용도일까?



     
    -. 선민아. 용이 왜 고기를 물고 있을까?
    -.배가 고프니까요.
    -.헉!!!!
     
    꼬마의 눈이 정확하겠다. 민물과 바다에 사는 숭어를 인간의 양면성에 빗대어 마음 수련을 의미한다는 설명은 어쩌면 견강부회요 사이비 종교 교주의 설법일 것이다.



     
    나의 가장 큰 목적이 목각탱 답사였지만 언감생심 설명을 할 수 없어  문경시청 홈페이지 글을 옮겨온다.
     
    "조선후기에 조성한 아름답고 섬세한 목각의 후불탱으로, 그 관계 문서 등과 함께 보물 제575호로 지정되었다. 이 목각탱의 크기는 높이 4m, 너비 3m이고 11개의 판목으로 구성되었다. 본래 영주 부석사(浮石寺)에 봉안되어 있던 것을 1869년(고종 6) 무렵 대승사로 옮겨왔다.
     
    이 목각탱은 아미타후불탱을 나무에 부조(浮彫)와 투조(透彫)의 기법을 혼용하여 조각한 것인데 비단에 채색하는 일반적인 아미타후불탱과 구도나 형태 면에서 거의 흡사하다. 중앙에는 키형 광배와 연꽃 대좌를 부조하고 여기에 별도의 본존 아미타불상을 안치하였다. 이 좌우로 5단에 걸쳐 협시상들을 배치했는데, 좌우 3위씩 4열을 맞추어 좌우대칭으로 배열하고 있다.
     
    사천왕, 관음․세지․문수․보현․제장애(除障碍)․금강장(金剛藏)․지장․미륵의 팔대보살, 2천상(二天像), 일궁(日宮)과 월궁(月宮)의 이천자(二天子), 6대제자상 등이 졍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들 불보살상의 자세는 입상과 좌상 외에 무릎 꿇고 앉은 공양상 등 매우 다양하다.
     
    한편 각각의 불보살상에는 이름을 적은 명패가 붙어 있어 도상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상단 좌우에는 화불(化佛)과 비천(飛天) 등을 장식하였다. 불보살상 각각의 양식은 대체로 사각형에 가깝고 또한 평판적(平板的)이며 투박한 모습을 지녔다. 이는 18세기 불교 조각의 공통적 경향이었다."



     
    "그러나 구도와 조각의 조화, 세밀함 등은 보는 이로 하여금 환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조선 후기의 이러한 목각탱은 예천 용문사와 상주 남장사 등에만 유례가 남아 있다. 여기에 원래의 봉안처였던 영주를 포함하면 목각탱의 조성지는 모두 경상북도 북부에만 한정된다. 이 지역이 지니는 조선 후기 불교문화의 한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구체적 배경 등은 앞으로의 연구 과제로 남는다.
     
    아무튼 대승사의 목각탱은 남아 있는 유례 중에서 규모가 제일 크고, 또 조각이 가장 뛰어난 걸작이다. 목각탱과 함께 보물로 일괄 지정된 문서가 4건이 있다. 그것은 상주대승사외사사승도등장』,『상주사불산대승사승도등장』,『도내상주사불산대승사제승등장』,『완의』 등이다.
     
    이들 문서는 1869년과 1876년에 각각 작성되었는데 목각탱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부석사와의 갈등에 관한 내용이다. 즉 당시 부석사가 거의 폐찰로 남아 있어 무량수전에 있던 목각탱을 가져왔는데 뒤에 부석사에서 반환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대승사는 반환 불가의 입장을 고수하였고, 마침내 1876년 대승사가 부석사의 조사전 수리 비용을 부담한다는 조건으로 일단락되었던 것이다."



     
    대웅전 내부 들보 아래 부재의 호랑이 상. 사자, 코끼리에 익숙하여 그 의미를 모르겠다. 단지 벽사의 상징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유례가 없지 않은가?



     
    삼성각 진영각. 조붓한 전각들이 마냥 편안하지 않은가?. 지극히 자기자신을 낮추고도 크게 존경받는 성인들의 삶을 보여주려는 듯......




     
    참선공간인 무량수각과 대승선원이다. 우리 고건축에서 공(工)자형 건물은 피한다. 工이 빌 공(空)과 같은 음으로 붕괴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도산서원과 표충사 선원에도 工자형 전각이 있다.
     
    어떤님 들은 工자를 工夫의 공으로 해석하여 열심히 학문에 정진한다는 상징성이라고 설명하지만 무엇하려 그리 어렵게 생각하는지...
     
    그냥 영어 H로 생각하면 만사형통이요 삼대가 조용할텐데 ㅎㅎ 
     

     
    문경 대승사 금동 보살좌상...문화재청
     
    대웅전 목각탱을 친견한 후 어쩌면 선원의 금동보살좌상을 뵐 수 있을까라고 궁리하던중 법당에 들린 젊은 스님에게 부탁했더니 난색을 표한다. 잠시 후 스님이 나를 부르더니"처사님 잠시만 보고 가세요"
     
    그렇게 먼 발치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인연이 있으면 초파일날 인연 지으면 될 것이고...
     
    문경시청 글.  문화재청 사진을 옮겨왔다.
     
    "대웅전 동쪽에 있는 요사인 선당(禪堂) 안에 금동관음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보살상은 조선 중기인 15세기에 조성한 것으로 크기는 전체 높이 90㎝, 무릎 너비 57.5㎝이다. 현재 보물 제991호로 지정되어 있다. 복장에서 「관음보살원문(觀音菩薩願文)」이라는 기록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 1516년(중종 11)에 새로 도금하였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로 보아 불상의 조성 시기는 이보다 앞선 15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양쪽 귀에 걸친 머리카락은 여러 가닥으로 흩어져 어깨를 덮고 있다. 이마 사이에는 백호(白毫)가 있고 귀는 약간 짧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분명하게 보인다. 상호는 대체로 정제되고 원만한 느낌이다. 두 어깨를 감싼 옷은 팔에 걸쳐 내려 무릎을 덮고 있으며, 전신에 걸쳐 화려한 구슬 장식이 있다.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있고, 왼손은 팔꿈치와 수평으로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손바닥을 위쪽을 향해 놓았다. 가슴, 배, 무릎에 표현된 구슬 장식이 보물 제993호 영덕 장륙사 건칠보살좌상과 영천 은해사 운부암의 관음상과 흡사하지만, 어깨와 등의 번잡한 장식이 옷 속에 감추어진 점이 다르다. 특히 띠 매듭 바로 위의 주름이 상체의 가운데에 표현되어 마치 보살상을 둘로 나눈 것처럼 보이게 한 것 또한 이 불상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대승사는 들어 올때는 일주문 편액이 보이지만 다른 사찰과 달리 천왕문 불이문이 차례로 전개되지 않고 일주문 뒤에 또하나의 편액이 있다.
     
    불이문. 즉, 대승사사 순례객은 참배 후에는 모두 부처가 되어 사바세계로 내려간다는 기분 좋은 의미이니 우리모두는 화택의 사바세계가 아니라 극락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2007.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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