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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저귀는 새소리가 있어 산의 고요함을 알겠노라..
    ◑解憂所 2012. 2. 9. 06:36

     

    스즈키 선사의 '선심초심'에 이런 선시가 나옵니다.

    '바람이 멎으니 떨어지는 꽃이 보이고

    지저귀는 새소리가 있어 산의 고요함을 알겠노라'

    그는 이 시를 읽고 하얀 백지 위에 선을 하나 그렸다고 합니다.

      

      

     

       선을 '그렸지만', 마하라지의 표현대로 하면 '자발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선이 나타나기 전에 백지 위에는 그 무엇이 있다도 아니고 없다도 아니었지만

       선이 나타나는 순간 주변에는 '여백'이 드러난다.

       여기에서 선은 나의 몸이요, 여백은 순수의식이다.

       순수의식.. 그것은 그것만으로는 인식될 수 없고

       몸을 연(緣)하여 비로소 드러난다.

       그러면서 둘은 둘이 아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일원상이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일원상의 원[ㅇ]만 주목했었지만.. 관점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그 원 자체가 깨달음 경지를 상징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원보다 주변의 여백이 아닐까?

     

       원을 연(緣)하여 드러난 여백의 세계..

       그것이야말로 '드러나지 않는' 깨달음의 상징이고

       원은 그저 드러난 세계, 즉 색(色)의 모습이 아닐까..

       중생의 눈에는 온통 모순되고 대립되고 분리되고 유한한 세계이지만

       깨달음의 경지에서 보면 모두가 있는 그대로 걸림없고 조화롭고 무한한 세계..

     

       그러므로, 원을 연(緣)하여 드러나는 여백(白), 투명한 경지..

       그것이 일원상의 진면목이 아닐까..

       이 또한 둘은 아니다.

     

       톨레는 이런 말을 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과 '현재'를 혼동하면 안 된다고..

       '현재'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들'보다 더 넓고 더 깊고 더 순수한.. 그 무엇이라는 말일 게다. 

       마찬가지로, '깨달음의 경지'는 '깨달음의 경지로 나타나는 것들'보다

       더 넓고 더 깊고 더 순수한.. 그 무엇이 아닐까..

       물론 그 둘들 또한 둘이 아니겠지만..

     

     

       부처님이 연꽃을 드심은 연꽃을 보이려 함이 아니었네

       구지선사가 손가락을 세움은 손가락을 보이려 함이 아니었네

       큰스님이 주장자를 치켜듦은 주장자를 보이려 함이 아니라네

       지저귀는 새소리는 이토록 영롱한데,

       산의 고요함은 어디로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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