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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밀(오방지영물)
    &약초방 2012. 2. 5. 10:10

     

     

    밤이 참 길고도 깊은 때다. 동지섣달 긴긴 밤이라고 했던가.

    상념의 탑을 쌓아올렸다 허물기를 몇 차례 거듭해도 밤은 좀체 끝날 줄을 모른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온몸으로 달려드는 허기. 심심해진 입과 헛헛하고 출출한 속을 행복하게 채워줄 밤참이 간절히 그리워지는 무렵이다. 

    겨울밤 빈속을 달래주는 밤참으로는 달큰하고 구수한 군고구마도 있고 얼음 동동 띄운 동치미말이 국수도 있겠지만, 배추김치 송송 썰어 참기름 깨소금에 버무려 올리고 살짝 구운 김가루를 얹어 먹는 메밀묵 무침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아쉽게도 잊혀진 소리가 되었지만 한겨울 밤이면 온 동네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던 "메밀묵 사려!"하는 외침이 새삼 귓가를 맴돈다.

    밤참은 맛도 맛이지만 무엇보다 음식을 먹은 후 속이 부대끼지 않아야 한다.

    아무래도 밤에는 위장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기름기가 많거나 딱딱하면 위에 부담을 주어 소화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칼로리가 높아서도 안 된다.

    열량 소모가 적은 시간이라 조금만 칼로리가 높아도 고스란히 살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가장 좋은 밤참은 소화흡수가 잘 되면서 칼로리가 낮은 음식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 단백질과 비타민, 미네랄 등 영양소까지 고루 갖추고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게 바로 도토리묵, 청포묵, 메밀묵 같은 묵 종류다.

    특히 메밀묵은 수입 재료가 아닌 토종 재료로만 만드는 유일한 묵인데다 농약을 안 쓰는 무공해 식품이라니 더 말할 여지가 없을 성싶다.

    한방에서는 메밀을 '교맥(蕎麥)'이라 부르는데 그 성질이 달면서 독이 없고 위와 장을 튼튼히 해주는 것으로 전해진다.

    '본초강목'에 따르면 "메밀은 위를 실하게 하고 기운을 돋우며 정신을 맑게 하고 오장의 노폐물을 훑는다"고 했으며 '동의보감'에서는 "비위장의 습기와 열기를 없애주며 소화가 잘 되는 효능이 있어서 1년 동안 쌓인 체기도 내려간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선조들은 메밀을 청엽(푸른색 잎), 홍경(붉은색 줄기), 백화(하얀색 꽃), 흑실(까만색 열매), 황근(노란색 뿌리)의 오색을 갖춘 오방지영물이라 해서 귀히 여겼으며 민간에서는 약으로도 많이 이용했다.

    두통 증상을 동반한 감기를 다스릴 때는 메밀껍질을 볶아 파뿌리와 함께 달여 마셨고, 살이 짓무르거나 땀띠가 났을 때에는 메밀을 곱게 가루내 피부에 발랐다.

    그리고 베갯속을 메밀껍질로 채워 머리를 시원하고 맑게 하는 효과를 얻었다.

    최근에는 메밀에 함유된 루틴이란 성분이 모세혈관을 강화시켜 뇌출혈을 예방하고 고혈압, 당뇨 등 성인병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체질적으로 "몸이 냉한 사람은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찬 성질의 메밀을 지나치게 먹으면 원기가 크게 상하고 심한 경우엔 눈썹이나 수염이 빠질 수 있다.

    만약 메밀을 잘못 먹어 이상이 생겼다면 무즙을 내 마시거나 무씨를 갈아 먹으면 된다.

    메밀국수나 냉면을 먹을 때 무를 갈아주거나 무 생채를 얹어주는 것도 이런 원리에서다.

    [한의사-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겸임교수 조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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