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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가루가 아무리 귀하다고 해도 눈에 들어가면 병이 되느니라
    ◑解憂所 2011. 11. 19. 03:04

     

    해인사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단풍행락객들의 나들이와 겹쳐 길은 계속 막혔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라디오를 틀었다. 신청곡을 받으면서 몇 마디 수다를 주고받는 프로그램이었다. 결혼 5년차 새댁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분이 왁스의 ‘머니(money)’를 신청했다. 대중가요는 보통사람의 정서를 잘 대변하는 영역이다. 물질만능의 시대이긴 하지만 노래 제목에까지 ‘머니’가 노골적으로 등장하는 세태가 씁쓸했다. 하지만 첫 구절을 듣고서 안심했다. 거의 건전가요 수준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돈이 많으면 좋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마음이 예뻐야 남자지~’.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라고들 한다. 선물 중에 가장 좋은 선물은 봉투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시대다. 하긴 괜히 필요 없는 선물이 될까 봐 걱정할 일 없고, 뭘 선물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여간 편한 게 아니다. 이런 심리를 비집고 요즘은 상품권이 최고의 선물로 등장했다. 말이 상품권이지 현금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뭔가 빠진 게 있다. 바로 정성이다. 그런 마음을 제대로 담지 못했기 때문에 금방 잊히는 것이 봉투선물의 한계이기도 하다.

     

    모임에서 들은 ‘봉투’ 이야기다. 시어머니께 며느리가 봉투에 7만원을 담아 드렸다. 시어머니가 받고서 ‘아들이 분명히 10만원을 주었을 텐데 3만원 배달사고가 난 것이 아닐까’ 하고 며느리를 의심했다. 그래서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눈치 빠른 아들이 전화를 받고 지혜롭게 대처했다.

     

    “아이고 어머니! 그러세요. 며느리가 2만원을 더 보탰네요.”
    여자의 직감은 정확하다고 했다. 아들 말을 믿을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무엇이 진실인지 제3자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들의 입장에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정의 평화를 위한 순발력이었다. 삶의 지혜가 녹아 있는 ‘깨달음의 언어’인 셈이다.

     

    순발력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아야 한다. 일본의 에이사이(1141~1215) 선사는 쌀쌀한 바람이 몰아치는 날 교토(京都) 건인사(建仁寺)에 머물고 있었다. 때마침 구걸을 하고 있는 병들고 굶주린 낭인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선사 역시 가진 것이 없었다. 한참 궁리하던 끝에 그는 법당으로 들어갔다. 본당에 안치된 불상의 뒷면을 꾸며주는 장엄물인 광배(光背)의 일부분을 잘라 “쌀을 사라”며 건넸다. 물론 그 재료는 금이다. 이튿날 사실을 알게 된 절집 식구들은 야단과 함께 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선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자약했다. 나눔은 때로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가끔 만나 함께 차를 마시는 지인은 ‘화장품에도 금을 넣고 술에도 금을 넣고 그것도 모자라 음식에도 금을 발라주는 시대’를 개탄했다. 뭐든지 금만 들어가면 솜씨에 관계없이 일등품이 된다고 믿는 모양이다. 여의도 63빌딩의 빛 바랜 금색 유리창을 모두 교체한다는 뉴스가 나온다. 황금빛으로 번쩍거리는 걸 좋아하는 심리는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김치도 배추 값이 비싸면 ‘금치’라고 부른다. 같은 김치인데도 재료·고추 값이 비쌀 때의 ‘금치’가 확실히 맛있는 걸 보면 사람 심리란 참으로 묘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임제선사(?~867)는 이를 한마디로 일축했다.

    ‘금가루가 아무리 귀하다고 해도 눈에 들어가면 병이 되느니라’

    -원철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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