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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십행(十行)
    #佛敎 2009. 8. 27. 08:06

    보살에 십행이 있음은 삼세제불이 설하시는 바이니 어떤 것이 열이 되는가?


    첫째 불자가 되어 무량한 여래의 묘덕을 구족하여 시방에 수순함을 歡喜行이라 이름하고,

    둘째 능히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함으로 饒益行이라 이름하며,

    셋째 자기를 깨닫고 남을 깨닫게 하여 어긋남이 없음을 無瞋恨行이라 이름하고,

    넷째 미래세가 다하도록 시방삼세에 통달하는 것을 無盡行이라 이름하며,

    다섯째 일체가 화합하여 갖가지 법문에 착오가 없는 것을 離痴亂行이라 이름하고,

    여섯째 하나 가운데 갖가지 다른 경계를 보고 다른 것들 가운데 하나의 경계를 보는 것을 善現行이라 이름하며,

    일곱째 시방세계에 갖가지 경계에 장애되지 않음을 無着行이라 이름하고,

    여덟째 갖가지 경계가 모두 바라밀의 세계인 것을 존중하므로 尊重行이라 이름하고,

    아홉째 원융하여 시방제불의 가르침을 따라 행함을 善法行이라 이름하고,

    열째 낱낱이 모두 청정무구하여 무위의 성품자리에 드는 것을 眞實行이라 이름한다.   

     

    무엇이 보살 마하살의 즐거운 행(歡喜行)인가?

    불자들이여, 이 보살이 큰 시주가 되어 가진 것을 모두 보시할 때 그 마음이 평등하여 뉘우치거나 아낌이 없으며 과보를 바라지도 않는다. 이름을 내세우거나 어떤 이익을 탐하지도 않고 다만 일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이며, 거두어 주기 위해서이며,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이다. 부처님들이 닦으신 행을 배우고, 부처님들이 닦으신 행을 생각하고 부처님들이 닦으신 행을 좋아하고, 부처님들이 닦으신 행을 청정케 하고, 부처님들이 닦으신 행을 증장시키고 부처님들이 닦으신 행에 머무르고, 부처님들이 닦으신 행을 드러내고, 부처님들이 닦으신 행을 말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괴로움을 벗어나 즐거움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보살은 이와같이 중생을 이롭게 하지만 나란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있다는 생각, 목숨이라는 생각, 짓는 이란 생각, 받는 이란 생각이 전혀 없다. 자기 몸도 보지 않고, 보시하는 물건도 보지 않고, 받는 이도 보지 않고, 복밭도 보지 않고, 업도 보지 않고, 과보도 보지 않는다. 이것이 보살 마하살의 즐거운 행이다.

     

    무엇이 보살 마하살의 이롭게 하는 행(饒益行)인가?

    온갖 현상은 허망하고 진실하지 못해 잠깐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고, 견고하지 못해 꿈과 같고 그림자 같고 환상 같아서 어리석은 이를 현혹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는 사람은 곧 모든 현상(一切諸行)을 깨달아 생사와 열반을 통달하고 부처님의 보리를 증득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제도하고 남도 제도하며, 스스로도 해탈하고 남도 해탈케 하며, 스스로를

    조복하고 남도 조복케 하며, 스스로 고요하고 남도 고요하게 하며, 스스로 안온하고 남도 안온하게 하며, 스스로 때를 벗고 남도 때를 벗게 하며, 스스로 청정하고 남도 열반에 들게 하며, 스스로 즐겁고 남도 즐겁게 한다. 이것이 보살 마하살의 둘재 이롭게 하는 행이다.

     

    무엇이 보살 마하살의 어기지 않는 행(無瞋恨行)인가?

    보살은 갖가지 극심한 고초를 당하면서 생명이 위태롭게 될지라도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이만한 고통으로 마음이 흔들린다면 자신을 조복하지 못하고 자신을 수호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분명히 알지 못하고 스스로 닦지 못하고 스스로 안정하지 못하고 스스로 고요하지 못하고 스스로 아끼지 못하고 스스로 집착하게 될 것이니 어떻게 남의 마음을 청정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보살은 또 생각한다. '이 몸은 공적(空寂)하여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으며 진실하지 않고 공하다. 그러므로 내가 비록 이런 고통을 당할지라도 참고 견디어야 한다. 그것은 중생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이며, 중생을 안락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중생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이여 중생을 거두어 주기 위해서이며 중생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이며 스스로 깨닫기 위해서이며 남들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며 마음이 불퇴전하기 위해서이며 불도에 나아가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셋째 어기지 않는 행이다.

     

    무엇이 보살 마하살의 굽히지 않는 행(無盡行)인가?

    어떤 사람은 이와 같이 말한다. '무량 아승지 큰 바닷물을 그대가 한털 끝으로 찍어내어 다하게 하고 무량 아승지 세계를 부수어 티끌을 만들어 그 물방울과 그 티끌을 낱낱이 세어 그 수효를 알고는 중생들을 위해 그와 같이 많은 겁을 지나도록 고통 받기를 끊임없이 하라.' 이와 같은 말을 듣더라도 보살은 잠시라도 고통스러운 생각을 내지 않고 더욱 기뻐하면서 도리어 큰 이익을 얻었다고 다행하게 생각한다. 내 힘으로 중생들을 영원히 온갖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라고 한다. 보살은 이같이 행하는 방편으로 모든 세계에서 일체 중생에게 끝까지 무여열반을 얻게 한다. 이것이 넷째 굽히지 않는 행이다

     

    어떤것이 보살 마하살의 어리석음과 어지러움이 없는 행(離痴亂行)인가?

    보살은 아승지 세계에 큰소리, 거칠고 탁한 소리, 몹시 두렵게 하는 소리, 마음을 기쁘게 하는 소리, 마음을 기쁘지 않게 하는 소리, 귀를 시끄럽게 하는 소리 등이 가득함을 듣더라도 잠시도 마음이 산란치 않는다. 악업을 짓지 않으므로 악업을 장애가 없고 번뇌를 일으키지 않으므로 번뇌의 장애가 없고 법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므로 법의 장애가 없고 정법을 비방하지 않으므로 과보의 장애가 없다. 보살은 삼매에 들어 거룩한 법에 머물고 모든 음성을 사유 관찰하여 음성이 생기고 머물고 사라지는 모양과 그 성질을 잘 안다. 보살은 잠깐 동안에 수 없는 백천삼매를 얻어 갖가지 소리를 듣더라도 마음이 산란치 않고 삼매가 점점 더 깊어진다. 그리고 이와 같이 생각한다. '내가 마땅히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위없는 청정한 생각에 편안히 머물러 일체지에서 물러나지 않고 마침내 무여열반을 성취케 하리라.' 이것이 다섯째 어리석음과 어지러움을 떠난 행이다.

     

    무엇이 보살 마하살의 잘 나타나는 행(善現行)인가?

    중생들이 성숙되지 못하고 조복되지 못했는데 그냥 버려두고 나만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는 것은 차마 못할 일이다. 그러니 내가 먼저 중생들을 교화하면서 무량겁을 두고 보살행을 닦아 성숙하지 못한 이를 먼저 성숙케 하고 조복하지 못한 이를 먼저 조복케 하리라. 이것이 여섯째 잘 나타나는 행이다.

     

    무엇이 보살 마하살의 집착이 없는 행(無着行)인가?

    보살은 이와 같이 생각한다. '나는 한 중생을 위해서라도 시방세계의 낱낱 국토에서 무량겁을 지내면서 교화하고 성숙하게 할 것이며, 이 한 중생을 위해서 하듯이 일체 중생을 위해서도 그와같이 할 것이다. 끝까지 이 일을 위해 싫어하거나 고달픈 생각을 내어 그냥 버려두고 떠나지 않을 것이다. 손가락 한번 튕길 동안이라도 내 자신에 집착하여 '나'라든가 '내것'이란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오는 세월이 다하도록 보살행을 닦아도 몸에 집착하지 않고 법에 집착하지 않고 그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살은 이와 같이 관하기 때문이다. 즉 일등 법계가 환상과 같고 모든 부처님은 그림자 같으며 보살행도 꿈과 같고 부처님의 설법은 영원의 메아리 같다고 관하기 때문이다 모든 세간이 화현(化現)과 같으니 업보로 유지되기 때문이며 차별의 몸이 환상과 같으니 업의 힘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며 일체 중생이 업으로 생겨남이니 여러가지로 물이 들기 때문이며 모든 유위업이 항상 변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곱째 집착없는 행이다.

     

    무엇이 보살 마하살의 얻기 어려운 행(尊重行)인가?

    세간 중생들이 은혜를 갚을 줄을 모르고 서로를 원수로 상대하며 삿된 소견에 집착하여 미혹되고 전도되며 어리석고 지혜가 없으며 신심이 없고 나쁜 벗을 따라 나쁜 생각을 일으키며 탐욕과 애착과 무명과 갖가지 번뇌로 가득차 있으니 이곳이야말로 내가 보살행을 닦을 만한 곳이다. 중생들이 은혜를 알고 총명과 지혜가 있고 선지식이 세간에 가득하다면 나는 그런 곳에서는 보살행을 닦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생들에게 친하고 섬길 것도 바라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보살은 실 한올 풀 한줄기를 구하거나 칭찬하는 말 한마디도 구하지 않고 미래겁이 다하도록 보살행을 닦으면서도 한번도 자신의 몸을 위하지 않는다. 다만 일체 중생을 제도하여 청정케 하고 영원히 께어나게 하려는 것이다. 중생을 지도하는 이는 마땅히 그와 같이 하여 취하지도 구하지도 않으며 다만 중생을 위하여 보살도를 닦으면서 그들로 하여금 안온한 피안에 이르러 위없는 보리를 이루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여덟째 얻기 어려운 행이다.

     

    불자들이여, 무엇이 보살 마하살의 법을 잘 말하는 행(善法行)인가?

    보살은 대비심이 견고하여 중생들을 널리 거두어 주는데 삼천대천세계 곳곳에서 금빛으로 변신하여 불사(佛事)를 짓는다. 중생들의 기질과 기호에 따라 깊고 넓은 혀로 한 음성에 한량없는 소리를 나타내어 때에 알맞도록 설법하여 모두를 기쁘게 해준다. 가령 가지가지 업보로 된 무수한 중생들이 한 곳에 모여 한꺼번에 저마다 각지 다른 말과 내용으로 물을지라도 보살은 한 생각중에 모두를 알아듣고 따로따로 대답하여 그들의 의혹을 풀어준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일체 중생이 나에게 각자의 말로 한꺼번에 묻더라도 나는 그들에게 법을 말하되 끊임도 없고, 다함도 없으며, 그들을 기쁘게 하여 착한길에 머물도록 할 것이다. 또 그들이 온갖 말로써 캐묻더라도 한 생각에 다 알아듣고 한 음성으로 대답하여 모두 깨닫게 하고 남음이 없게 하리라. 불자들이여, 보살 마하살은 이 선법행에 머물면서 스스로 청정하고 집착이 없는 방편으로 일체중생을 이롭게 한다. 이것이 아홉째 법을 잘 말하는 행이다. 보살이 이 행에 머무르면 일체 중생을 위해 시원이 법의 못이 되어 모든 불법의 근원을 다하게 된다.

     

    불자들이여, 무엇이 보살 마하살의 진실한 행(眞實行)인가?

    보살은 첫째가는 참된 말을 성취하여 말한대로 행하고, 행한대로 말한다. 보살은 삼세 부처님들의 진실한 말을 배우고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가고 부처님들과 함께 선근을 닦고 여래를 따라 배워서 지혜가 성취되었다. 보살은 여래의 걸림없는 해탈을 성취하여 큰 사자후로 청정한 법륜을 운전한다. 지혜의 해탈을 얻어 모든 세간의 경계를 알고 생사의 소용돌이를 끊고 지혜의 바다에 들어가 일체 중생을 위하여 삼세 부처님들의 정법을 호지하고 모든 불법의 바다인 실상의 근원에 이른다. 보살이 이 진실한 행에 머물고는 모든 세간의 하늘 사람, 악마, 범천, 사문, 바라문, 건달바, 아수라들중 가까이 하는 이는 모두 마음이 열리어 깨달아 환희하고 청정하게 한다. 이것이 열번째 보살 마하살의 진실한 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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