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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냥년 & 호로자식의 유래
    ※잡동사니 2008. 3. 31. 10:06
    화냥년 & 호로자식의 유래
     
    사람들이 평소 남자관계가 복잡한 여자를 나쁘게 욕할 때“화냥년”, 그리고 버릇없는 못된 사람 주로 남자를 말할 때“호로자식”이란 욕을 하는 경우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욕들의 유래에 대해서는 자세히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것 같아 역사적인 유래를 살펴보고자 한다.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년 후금(後金)은 국호를 청(淸)으로 바꾼 후, 정묘약조에서 설정한 형제관계를 폐기하고 새로 군신(君臣)관계를 맺어 공물과 군사 3만 명을 지원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조선이 거부하자 12만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여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대군에 밀린 조선군은 남한산성에 1만 3천의 군사로 진을 쳤지만 세력의 열세로 45일만에 항복하고, 인조(仁祖)는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고 청과 군신의 의(義)를 맺는 한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청에 볼모로 보내야 했다.

    그리고 척화론(斥和論)을 펼치던 홍익한, 오달제, 윤집 등도 청으로 끌려갔다. 뿐만 아니라 청군들은 철수하면서 상당히 많은 조선인들을 끌고 갔다.


    화 냥 년
    인조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났다고 온 백성들은 안심하였으나 며칠후 백성들이 궁궐 앞에 모여들어 청나라에 끌려간 딸과 며느리는 물론 아내를 구해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인조는 청에 끌려간 인원을 조사해보니 대부분 부녀자들로서, 그 수가 50만 명이나 됨으로 청에 사신을 보내어 돌려보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청나라는 끌려간 사람들을 등급을 매겨놓고 엄청난 돈을 요구함으로 인조는 하는 수 없이 백성들이 각자 재산을 팔아서 그 돈으로 청나라에 가서 데려오도록 하여 상당수의 여자들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 때 청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인들을 환향녀(還鄕女)라 부르면서 온 동네에서 고생하고 돌아왔다고 위로를 해주었다.

    그런데 이 환향녀들은 청나라에 끌려가서 못된 성관계를 배워와서 온 동네 남자들을 모두 해치우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 여자들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으나 국가에서 묘한 방법이 없으므로 각 가정에서 단속하도록 하였다

    이에 각 가정에서는 노인들이 밤낮으로 대문을 걸어 잠그고 부녀자들의 바깥출입을 못하게 하였음은 물론, 부득이 외출을 할 때도 치마 같은 것을 뒤집어 쓴 후 눈만 내놓고 다니게 하고 게다가 감시자를 동행케 하였다.

    ※ 이때부터「환향녀[화냥년] 이라고 하며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

    호로(胡虜)자식
    이들 환향녀들은 돌아올 때 이미 임신을 한 경우가 많았으며 거기서 낳은 자식을 호로 즉 오랑케 자식이라 하여 사회에서 냉대하였다.



    ▶ 역사적 의의
    환향녀나 호로자식들은 멸시의 대상이 아닌 "피해자"들이다. 그러므로 국가에서 그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평소 국가의 안보를 튼튼히 하지 못했고 또한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여 전쟁에 대비하지 못했다.

    전쟁이 나자 왕 밑에 신하들은 왕을 홀로 두고 도망가기 바빴고  전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결국 나약한 여성들만 끌려가 청군들의 노리개가 되어

    처참한 노예생활을 하다 돌아왔는데도 조선에서는 전쟁에 대해 책임지는 자가 없이 모든 것을 불쌍한 여자들에게만 죄를 뒤집어씌운 가슴 아픈 역사의 한 단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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