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의 법당인 대적광전은 해인사가 화엄경을 중심 사상으로 창건한 사찰이므로 화엄경에 나타나는 최고의 부처인 비로자나부를 모신 불전인 대적광전이 주법당이다. 해인사 대적광전은 처음에는 비로전이라 하다가 1488년 학조대사가 중창할 때 대적광전으로 개명을 했다고 한다. '비로자나'는 영원한 법 곧 진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은 부처님의 진리의 몸이 화엄경을 언제나 두루 설하는 대적광토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해인사 대적광전은 높은 단 위에 있고 마당이 좁아서 마당에서 대적광전 전체를 사진에 담을 수 없어서 한 계단 내려온 마당에서 대적광전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해인사 구광루 앞마당에서 바라본 대적광전
현재의 대적광전은 해인사 창건주인 순응스님과 이정스님이 802년에 지은 건물 자리에다 1817년에 제월, 성안 스님이 중건한 것으로 근래에 여러 번의 수리를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대적광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을 한 단층집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대적광전 앞 마당에는 정중삼층석탑과 석등 괘불지주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제가 갔던 날이 토요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해인사를 찾아 아무리 기다려도 사람이 없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사람들을 포함하여 사진을 찍었습니다.
해인사 대적광전
현재 법당에는 일곱 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정중아의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하여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있고 그 사이에는 지장보살과 법기보살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부처님들과 보살님들의 사진은 아래에 있습니다.
해인사 대적광전
대적광전 앞에 있는 많은 학생들은 견학을 온 학생들로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아주 진지하게들 듣고 있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보고 공부해서 소중함을 가슴속으로 느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해인사 대적광전의 주불인 비로자나불
본존 비로자나불은 1769년에 조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좌우에 있는 작은 보살은 협시불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보다 훨씬 크기가 작은 보살로 왼쪽에 있는 보살은 지장보살이고 오른쪽의 작은 보살은 법기보살입니다.
해인사 대적광전의 주존불인 비로자나불
본래 이 비로자나불은 성주의 금당사에 있던 것으로 금당사가 폐사되자 가야산 용기사로 안치되었다가 용기사마저 폐사되자 이곳 해인사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본존불과 좌우에 문수보살, 보현보살은 고려 시대에 가지가 셋인 큰 은행나무 한 그루를 가지고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해인사 대적광전 보현보살
보현보살 역시 본존불인 비로자나불과 마찬가지로 금당사에서 용기사로 옮겨졌다가 이곳 해인사에 같이 안치되었다고 합니다. 이 불상들의 정확한 조성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보현보살은 지혜를 실천하여 공덕을 여러 곳에 나타내는 보살로 보통은 흰 코끼리를 타고 등장하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손에는 잔이나 연꽃을 들고 있습니다. 이곳 해인사 대적광전의 보현보살은 오른손에 만개하지 않은 연꽃을 들고 왼손으로 줄기를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습니다.
해인사 대적광전 문수보살
목조문수보살은 고려시대에 가지가 셋인 큰 은행나무 한 그루로 본존불인 비로자나불과 보현보살을 만들 때 같이 조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 모든 보살의 으뜸이며, 중생 제도를 위하여 수시로 형상을 바꾸어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보듯이 비로자나불의 협시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으며, 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습니다.
해인사 대적광전 중앙 계단의 소맷돌
계단 양쪽 소맷돌에는 험상궂은 용의 형상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계단을 장식하고 있는 무서운 얼굴은 한 이 용의 역할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으로 범접할 지도 모르는 잡귀를 막기위함은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