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를 여는 가장 큰 이유
우리의 삶이 잘못된 생각의 그림자에 가려져
모순에 잠겨져 있음을 자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참생명을 구현하여 밝고 맑은 나날을 창조 하는데 있습니다.
이는 곧 부처님의 가르침의 참뜻을 따르는개인과 가정과 사회사 보다
살 만한 가치를 가질 수 있음을 굳게 믿으며, 구호나 명분이나 취미가
아닌 삶 그자체를 증명 하려 함입니다.
사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이켜 볼 때 너무도 형식적이며 수동적이
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능동적인 참여에 의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영화관에 구경가듯 진열장
물건보듯뒷짐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은 어느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슴을 알면서도 방관자의
입장을 고집 하였던 것입니다.
시간시간 흐르다가 벌써 하루 지나가고하루하루 흐르다가 훌쩍 한달
지나가고한달한달 흐르다가 문득 일년 지나가고일년일년 흐르다가
언뜻 죽음 닥쳐오네
이런상황인줄 번연히 알면서도언제까지 기다리고만 있을수는 없습니다.
물론 주위를 둘러보면 수 많은 종교와 종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당신의 목타는 갈망에 얼마만큼이나 답하고 있습니까?
진리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오히려 삶의 편벽성이나
도피주의를 조장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가뜩이나 갈망에 가득찬 사회에 대해또 다른 탐욕을 부추기는 소음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요?
사람으로 태어나기어렵고, 부처님 가르침 만나기 어려우며,
더욱이 바른 스승 만나기 어렵습니다. 는 이말을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이 소중한 인연을 허송세월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참생명을 드러내는 구체적인 몸짓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법회에 동참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에 젖어 들어갈때
가능합니다
이제, 지난날의 게으름과 방관자적 자세를 벗어버리고 우리의 무한한
생명의 가치를 들어 낼때가 왔습니다.
본래 없는것을 잇다고 하면 거짓 이거니와 없는것을 있다고 믿는것은
어리석음 이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향해야할 삶은 참으로 있는 것이어선 안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본래 삶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이미 주어져 있는 참 생명의 가치를 깨닫고, 깨달은 대로 살아갈때만
감히 살아 있다고 할수 있을 뿐입니다.
마치 글을 깨친 사람일지라도평소에 글을 대하지 않고 지낸다면,
결과적으로 문맹과 다르지 않는것과 같습니다.
글을 배우는 이유는 글을 읽어서 삶을보다 풍요롭게 하기위한것이지
글을 깨치는것 자체가 목적이 아닐 것입니다.
불교는 학문적 호기심의 대상이나 사산체계가 아닙니다.
허공에 뜬 관념도 아닙니다.
우리 삶의 중심으로 부처님을 모시는 생명의 약진을 말합니다.
따라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우리 삶의 키를 돌린다면,
번뇌의 격랑을 헤치고 마침내 행복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렇습니다. 부처님은 언제나 우리 삶에서느끼는 괴로움의
신음소리를 자기화하는 우리의 참 생명을 말 합니다.
이렇게 참 생명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려고 하고
스것을 실현하고자 함이 바로 법회의 목적 입니다.
오십시오. 와서 듣고 믿음이 돋아날 때
이미 당신은 극락정토에 왕생했슴을 알게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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