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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이지오(第二之吾)
    ♤좋은글 2024. 11. 19. 04:44

    제이지오(第二之吾) :
    제2의 나를 찾아서

    18세기 지식인들의 우정론은 자못 호들갑스럽다.

    박지원은 벗을 한집에 살지 않는 아내요, 피를 나누지 않은 형제라고 했다.
    제이오(第二吾), 즉 제2의 나라고도 했다.

    마테오리치 Matteo Ricci(1552~1610)는 예수회 신부로 1583년에 중국에 와서 1610년 북경에서 세상을 떴다. 놀라운 기억술을 발휘해서 사서삼경을 줄줄 외우고, 심지어 거꾸로 외우기까지 해서 중국인들을 경악시켰다.
    그가 명나라 건안왕(健安王)의 요청에 따라 유럽 신사들의 우도(友道), 즉 'Friendship'에 대해 쓴 교우론(交友論)이란 책에 '제2의 나'란 표현이 처음 나온다.

    몇 구절을 소개하면 이렇다.
    내 벗은 남이 아니라 나의 절반이니 제2의 나다. 그러므로 벗을 나와 같이 여겨야 한다.
    吾友吾友非他, 即我之半, 乃第二我也 故當視友如己焉

    벗은 가난한 자의 재물이요, 약한 자의 힘이며, 병자의 약이다.
    友也為貧之財, 爲弱之力, 為病之藥焉.

    원수의 음식은 벗의 몽둥이만 못하다.
    仇之饋, 不如友之棒也.&

    일화도 소개했다. 줄거리가 이렇다.
    알렉산더 대왕이 아직 미약할 적에 나라 창고에 물건이 없었다.
    정복으로 얻은 재물을 모두에게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적국의 왕이 비웃으며 말했다.
    "그대의 창고는 어디 있는가?" 알렉산더가 대답했다. "내 벗의 마음속에 있소."
    이런 글을 보고 중국 지식인들은 큰 감동을 받았다.

    이전까지 오륜 중에 붕우유신(朋友有信)은 다섯번째 자리에 놓여 있었다.
    마테오 리치의 《교우론》을 읽은 뒤로 우정에 대한 예찬론이 쏟아져 나왔다.

    이덕무가 지기(知己)에 대해 쓴 글은 이렇다.
    만약 한 사람의 지기를 얻게 된다면 나는 마땅히 10년간 뽕나무를 심고 1년간 누에를 쳐서 손수 오색실로
    물을 들이리라. 열흘에 한 빛깔씩 물들인다면, 50일 만에 다섯 가지 빛깔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를 따뜻한 봄볕에 쬐어 말린 뒤, 아내를 시켜 100번 단련한 금침을 가지고서 내 친구의 얼굴을 수놓게 하리라.
    귀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고옥으로 축을 달아 아득히 높은 산과 양양히 흘러가는 강물 사이에 펼쳐놓고 마주보며 말없이 있다가, 날이 엿해지 면 품에 안고서 돌아오리라.

    살다가 막막해져서 부모도 아니고 처자도 말고 단 한 사람 날 알아줄 지기가 필요한 날이 꼭 있게 마련이다.
    그 한 사람의 벗으로 인해 우리는 세상을 다시 건너갈 힘을 추스를 수 있다고 한다.

    바람결에 매달린 낙엽 바람에 이리 휘청 저리 휘청 올 마지막의 끈을 부여잡고 흔드리고, 떨어진 낙엽은 뒹굴고 날리다 내년의 자양분이 되어 한해를 바삐 보내고 내년의 새로운 싹으로 태동한다.

    주변의 지기(知己)들도 삶의 끄나풀을 하나씩 풀어가며 떠나가고 있음은 자연적인 현상일텐데

    나 아닌 나, 제2의 나가 없는 인생은 차고 시린 밤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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