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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종예불
    ◑解憂所 2022. 10. 26. 06:18

    일곱 종류의 예불  (칠종예불/七種禮佛) ” 
     
    일곱 가지 예불 은 중인도 출신의 삼장 법사 륵나마제(勒那摩 提)가 한 말이라 한다. 
     
    첫째는 아만례(我慢禮)로
    비록 머리 숙여 절을 하는 것 같지만 부처님에 대한 깊은 믿음이 없어 고개도 제대로 숙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둘째, 구명례(求名禮)로
    다른 말로는 창화례(唱 和禮)다. 이는 수행의 목적이 다만 명예를 구하는 것으로 거짓으로 위의를 나타내며 입으로만 부처님의 명호를 읊조리는 것을 말한다. 
     
    즉 부처님의 명호를 지극하게 부르는 것은 바로 부처님의 인격과 깨달음을 향한 구도 의지를 본받아 스스로 그렇게 되고자 함인데 그렇지 않고 겉모습에만 관심을 두어 대충대충 소리나 멋있게 지르는 것을 말한다. 
     
    셋째, 신심례(身心禮)이다.
    이는 입으로는 부처님 이름을 부르고,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모습을 그리며, 몸으로는 공경한 자세로 절을 하고 공양을 올리면서 다른 생각이 없는 것을 말한다. 
     
    넷째는 발지청정례(發智淸淨禮)다.
    슬기로운 마음으로 부처님 경지에 이르러 안팎이 청정하고 걸림이 없어 한 부처님에게 예를 올리면 그것이 곧 여러 부처님께 올리는 것이 되며 여러 부처님께 올린 것은 한 부처님께 올린 것과 같으며 가르침(法)과 스님(僧)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예불을 말한다. 
     
    다섯째는 변입법계례(便行入法界禮)다.
    조금 어려운 표현이지만 예불하는 이의 마음이 진리와 어긋나지 않으므로 부처님 또한 그를 떠나지 않게 되고 그럼으로써 비록 한 번 절을 하더라도 모든 부처님께 절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방의 모든 면에 거울을 붙여 놓으면 방 안에 있는 어떤 사물도 비추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여섯째는 정관수성례(正觀修誠禮)다.
    이것은 정말 불교의 사상을 멋지게 나타낸 것이라 할 것이다. 비록 몸은 부처님에게 절을 하지만 그순간 나의 마음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갖춰져 있는 자기 부처님(自性佛)께 절을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물이 들어서 중생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어느 누구라도 부처가 아닌 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밖에 있는 불상에게는 온갖 좋은 것을 공양하면서도 자신에게 갖춰져 있는 부처님에게는 향(香) 하나, 등(燈) 하나 올리지 않고 공경하지도 않는데 스스로 비춰 보아 제대로 알게 되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과 같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절을 하고 공양을 올린다는 사상은 불교 말고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를 『유마경(維摩經)』에서는 “몸의 참모습을 제대로 보는 것은 곧 부처를 보는 것”이라 했다. 
     
    일곱째는 실상평등례(實相平等禮)다.
    이는 부처님을 최고로 존경하는 승가에서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것이지만 예불을 별도로 드리지 않아도 예불의 대상인 부처와 예불을 올리는 중생의 구별이 없는 경지를 말한다. 이는 더더욱 불교의 특성을 멋지게 나타내는 사상이라 할 것이다. 
     
    일곱 가지 예불 중에 앞의 두 가지는 바람직하지 못한 예불이지만 뒤의 다섯 가지는 바람직한 예불이라 할 것이다. 
     
    나는 어떤 사상과 자세로 예불을 모시는지 살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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