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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리의 참 모습을 보라.(참된 이치를 여실히 보라.)
    金剛經 2011. 12. 19. 05:05

     

    진리의 참 모습을 보라.(참된 이치를 여실히 보라.)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몸의 형상을 보고서 여래를 보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몸의 형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몸의 형상은 곧 몸의 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무릇 형상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볼 것이다.”


    앞의 2분 선현기청분에서 수보리의 질문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의 길로 들어선 선남자(善男子)와 선여인(善女人)들은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물러야 하고,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그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대승정종분을 통해 네 가지 상에 머물지 않으면서,
    함이 없는 마음으로 일체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멸도에 들게 하리라는 서원을 세우도록 이끄셨으며,
    묘행무주분을 통해 머무는 바 없는 묘행을 실천함으로써
    그 마음을 머물러야 함을 일깨우셨습니다.

    이 분 여리실견분에서는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이 이어집니다.
    진리의 참된 이치를 여실히 볼 수 있도록,
    여리실견 할 수 있도록 일체의 모든 상의 허망함을 일깨우며,
    일체의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바로 보도록 이끌어 줌으로써
    결국 여래를 볼 수 있도록 수행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 여리실견분에서 금강경 내용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그 유명한 금강경의 사구게가 등장을 하며,
    이 사구게의 법문을 통해 우리가 수행해 나가야 할
    마음공부의 방향을 설정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침 이 때 대승정종분에서 부처님께서 해 주신 법문에 대해 수보리는
    ‘이렇게 머무는 바 없는 묘행을 실천하면
    가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복덕을 성취한다고 하셨으니,
    이와 같이 실천하셨기에 부처님께서도 깨달음을 얻으셨고,
    저렇게 거룩한 32상의 상호를 구족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일어나고 있음을 부처님께서 관해 보시고
    수보리에게 질문하십니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몸의 형상을 보고서 여래를 보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몸의 형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몸의 형상은 곧 몸의 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형상에 얽매이고, 형상에 집착하며,
    형상으로써 일체 모든 존재를 분별하며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형상이란
    눈에 보여지는 경계로써의 형상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넓게 보면 앞의 묘행무주분에서 언급했던 온갖 경계,
    즉 눈귀코혀몸뜻의 대상이 되는 색성향미촉법의 모든 경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눈에 보여지는데 집착하고,
    귀로 들려지는데 집착하며,
    코로 냄새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감촉하는 모든 대상에 집착하고 분별하기 때문에
    일체의 모든 괴로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점을 바로 관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부처님께서는 질문하고 계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나의 형상인 육신을 보고
    부처라고 할 수 있겠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일체 모든 대상의 형상을 보고
    그것이라고 믿고 집착하고 있으며,
    나아가 부처님 조차 형상으로써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상으로써, 육신으로써는 부처를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수보리 앞에 계신 부처님이라는 형상은
    부처의 참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앞에 서 계시는 부처님의 육신은
    단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가 모여 이루어진
    인연가합의 형상일 뿐인 것이지 부처의 참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지수화풍이 인연따라 모여진 것은
    언젠가는 인연따라 흩어질 뿐입니다.
    인연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은 모두가 항상하지 않으며(無常),
    고정된 실체가 있지 않고(無我), 괴로우며(苦),
    텅 비어 실체가 없는 것(空)입니다.

    부처님의 형상 또한 지수화풍 사대가 인연따라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무상, 무아, 고, 공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의 형상은
    곧 몸의 형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몸의 형상은 다만 지수화풍 사대가 임시로 모여 만들어진 가합이기 때문에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부처님의 형상에 얽매이는 것은
    요즈음 절의 불상에 집착하고 얽매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절에 불상이 있고, 그곳에 절을 하는 이유도
    불상이 부처님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 법계 어느 한 곳 부처님의 숨결 아닌 곳이 없기 때문이며
    결국에는 불상의 모습을 뛰어넘어
    그 이면의 참모습을 보기 위한 방편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실체는 형상으로써의 육신 그 이면에
    법신(法身)으로써 존재를 뛰어넘어 존재합니다.
    법신이란 형상이 아닌 진리 그 자체의 몸이며,
    크고 작다거나 나고 죽는다거나 하는 모습이 아닌 진리의 당체이고,
    온 우주 법계 대자연의 숨결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러니 진리 그 자체로써, 법으로써 부처님을 보아야지
    눈앞에 보여지는 형상으로써의
    거룩한 모습으로 부처님을 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눈앞에 계신 부처님의 육신을 무시하라는 말도 아니고,
    형상은 아무 필요도 없는 것이라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형상을 통해 참진리로 나아가는 방편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강을 다 건넜으면 땟목을 버려야 하듯,
    언제든 참진리를 만났을 때 형상은 놓아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다시말해 형상에 얽매이고,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처라는 형상,
    32상 80종호라는 형상의 거룩함에 얽매이고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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