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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철스님의 유일한 비구니제자 묘엄스님 입적
    宗敎 단상 2011. 12. 2. 17:51

     

    서울 북한산 도선사의 중창주인 청담 스님의 딸이자 성철 스님의 애제자로 비구니 교육의 요람인 수원 봉녕사 승가대학을 일군 비구니계의 원로 묘엄 스님이 2일 오전 9시5분 봉녕사에서 입적했다. 법랍 67년이며 세수는 80세다.


     묘엄 스님은 1931년 진주에서 태어났다. 외아들로서 노모와 처를 두고 출가했다가 가문의 뒤를 이을 씨 하나만 심어달라는 노모의 눈물 어린 간청에 못이겨 하룻밤 ‘파계’의 씨앗으로 태어났다. 14살에 어머니에 의해 청담 스님에게 보내졌다. 청담 스님은 그를 박대했으나 절친한 도반인 성철 스님이 애틋하게 거두어 “내가 아는 것은 너에게 다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청담 스님이 출가한 뒤 수절하며 시어머니를 모시고 묘엄 스님을 키우다가, 훗날 묘엄 스님을 출가시킨 그의 어머니도 묘엄 스님에게 맡겨 머리를 깎아 도성 스님이 되었다. 청당 스님은 성철 스님과 마음을 터놓은 도반이었으며, 박정희 대통령 부인 고 육영수씨가 귀의했던 인물이다.


     묘엄 스님은 아버지의 한마디에 발심 출가했던 월혜 스님은 은사로, 성철 스님은 계사로 사미니계를 받았다. 1961년에는 통도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받았다. 비구니가 구족계를 받은 것은 정화종단 이후 처음이었다.


     고인은 경북 문경 대승사 윤필암에 머물면서 대승사에 주석하던 성철 스님에게서 한국역사를 배웠다. 고인은 윤필암에 머물 때 성철 스님으로부터 ‘능엄주력’이 공덕이 있다는 법문을 듣고 신심이 발동한 모든 대중들이 철야용맹정진에 나섰을 때 그는 눕지도 자지도 않고 21일동안 꼬박 서서 주력을 하며 견뎌냈다고 한다. 당시 스님은 하루 108독 능엄주 주력을 하면서 시공을 초월하는 경험을 하면서 만성 배탈병이 나았다고 한다. 

     

    묘엄스님올-.jpg

     

     


      그 뒤 묘엄 스님은 청담.성철뿐 아니라 향곡, 운허, 경봉, 동산, 자운 스님 등 근현대 불교의 대표적 고승들의 채찍과 자애로운 가르침을 받아 이 나라 최초의 비구니 강사로 성장했다.


     이에따라 묘엄 스님은 1959년에는 동학사에서 최초의 비구니 강사로 학인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971년 수원 봉녕사에 정착한 스님은 40년 만에 봉녕사를 비구니 승가 교육의  요람으로 변모시켰다. 봉녕사 강원 개원 이후 40년간 학장을 맡아 지금까지 39회 8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시켰다. 스님은 또 1999년 세계 최초의 비구니 율원인 금강율원을 개원한다.


     묘엄 스님은 열반 전 “마음공부는 상대적인 부처님을 뵙고 절대적인 나 자신을 찾는  것이다”라는 유훈을 남겼다.


     장례는 전국비구니회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봉녕사에 마련됐다. 6일 오전 11시로 예정된 영결식과 다비식이 봉녕에서 봉행된다. (031)256-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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