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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냄새 나는 ‘날건달’에게 새빨간 홍시 건네준 스님…-김용택시인宗敎 단상 2011. 10. 10. 07:59
사찰들이 너무 크다. 갈수록 신도들은 줄어드는데, 절에 짓는 집들은 늘어가고 새로 짓는 집들은 너무 크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집을 지을 때 집의 방향과 집이 들어설 곳의 산 높이와 계곡의 넓이를 생각했다.
절은 절대로 크게 짓지 않았다.
있는 듯 없는 듯 바위처럼 나무 한 그루처럼 산세를 거스르지 않았다.
적어도 절의 크기로 인해 산중의 균형이 깨지면 안 되었다.
조촐하되 빈한하지 않게 가난해 보이지만 누추하지 않게 작지만 당당하고 의젓하게 절집들을 지었다.
지금의 절집들처럼 있는 욕심 없는 욕심을 다해 크고 거대하게 짓지 않았다.
어느 절에 가든 모두 절집들을 크고 웅장하게 새로 지었거나 짓고 있다.
남해 금산은 아름다운 산이다. 바위가 바위 위에 올라 서 있거나 누워 있거나 앉아 있거나 모로 누워 있는 모양들은 마치 부처 같기도 하고 나무꾼들이 나무하다가 땀을 식히는 모습 같기도 하고, 스님들이 수행하다가 먼 남해 바다 아름다운 섬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곳에 지어 놓은 절집도 그리 크지 않아 먼 데서 보면 마치 작은 바윗덩이 같아 보인다. 절의 크기와 모양이 바위를 닮은 것이다. 절묘한 건축미였다. 그러나 언젠가 그 곳에 큰 절 집이 등장했다.
절이야 스님들이 필요에 의해서 불가피하게 그리 지을 일이겠지만 절로 놀러간 사람들 중에 는 그러한 큰 집에 대해 여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절마다 절을 꼭 그렇게 크게 지어야 하는지 절 밖에 사는 나는 잘 모르겠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다시 세상에 나오셔서 자기들을 위한 어마어마한 집을 보시고 과연 좋아하실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절에 대해서 더 말해보자면 풀 한 포기 없는 절 마당을 보며 나는 늘 의아해 한다.
절 마당에 도대체 풀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절에 가서 나는 그 사실을 확인했다.
제초제였던 것이다. 제초제를 써서 풀을 없애 버리는 것이다.
소쿠리 속처럼 폭 들어앉은 부안 내소사 지장암은
소나무숲이 빽빽하게 둘러싸여 있다.
지장암의 눈은 내리지 않고 휘날렸다.
붕붕 솟구치거나 휘휘 휘돌아다녔다.
하늘로 하얗게 솟구치다가
절 마당에 사뿐히 내려앉은 눈송이…
내가 다녀 본 절중에서 풀이 자라는 절은 남원 실상사뿐이었다. 실상사는 내가 다녀본 절 중에서 가장 편한 곳이다. 절이 너무 깔끔해서 어쩐지 내가 들어 갈 곳이 아닌 듯한 절들이 너무 많다. 절 마당에 풀을 뽑는 스님을 본지도 오래되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절에 가서 스님 방에 들어 선 절이 내소사 지장암이었다. 어느 해였는지 모른다. 겨울이었다. 전북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부안 내소사 부근에서 모임이 있었다. 밤에 엄청 눈이 많이 왔다. 부안에 눈은 유명하다. 밤을 새워 술들을 마시고 이튿날 아침 우리들은 내소사로 놀러 가기로 했다. 우리들은 눈을 뒤집어쓰고 내소사로 향했다.
눈이 엄청나게 퍼부었다. 내소사 가기 전에 지장암이 있는데, 우리들은 그 지장암으로 들어섰다. 지장암은 소쿠리 속처럼 폭 들어 앉아 있었다. 절 집 뒤 안에는 커다란 암벽이 버티고 있었고, 절 둘레는 커다란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었다.
지장암의 눈은 내리지 않고 휘날렸다. 소쿠리 속 같은 지장암 골짜기에 눈이 내리지 못하고 붕붕 떠다녔다. 소나무 숲을 휭휭 휘돌아 다녔다. 지장암을 들어 온 바람이 어디로 나갈 데가 없는지 눈송이들을 데리고 그렇게 붕붕 솟구치거나 휘휘 휘돌아 다녔다. 솔바람 소리가 들렸다. 소쿠리 속 같은 지장암 속을 정처 없이 휘돌아다니는 눈송이들을 보며 우리들은 넋을 잃었다.
마당에는 눈이 가득하였다. 휘돌아 빙빙 돌다가 하늘로 하얗게 솟구치다가 절 마당에 사뿐히 내려앉는 눈송이들을 보다가 우리들은 절 안으로 들어갔다. 눈송이들이 그렇게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떠도는 것과 달리 스님은 고요했다. 떠돌다가 절 마당 나뭇가지에 고요히 앉는 눈송이만큼이나 스님의 모습은 고요했다.
나뭇가지에 앉은 눈송이처럼 지장암의 스님은 고요했다.
술냄새 나는 우리들에게 스님은 감 홍시를 내놓았다.
시린 감을 하나씩 손에 쥔 이 시 쓴다는 날건달들의 모습이
비로소 시가 된 느낌이었다.
술 냄새 나는 우리들에게 스님은 감 홍시를 내 놓았다.
하얀 눈 속에 붉은 감은 먹기가 싫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가 시린 감들을 하나 씩 손에 쥔, 이 시 쓴다는 날건달들의 모습이 비로소 시가 된 느낌이었다.
바람이 잤는지 눈송이들이 가만가만 절 마당에 내려앉았다.
감을 먹고 밖으로 나왔을 때 절도 산도, 세상천지가 눈으로 고요했다.
그 뒤로 나는 지장암에 이따금 가게 되었다.
진달래가 핀 봄날 그 절에 가서 놀다가 절 밖에 있는 집에서 자기도 하고 산행을 하다가 절에 들어가 쉬기도 하고, 일부러 찾아가 밤을 새우기도 했다.
절에서 잠을 잘 때면 변산 앞바다 바닷물이 절 마당까지 들어와 철썩이기도 하고, 절 뒤 바위들이 우루루 우루루 굴러다니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소쩍새가 울기도 하고, 잠 못 든 소나무들이 바다로 나가 밤을 새워 울기도 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 많은 세상의 번뇌와 근심과 걱정들이 절을 찾아와 나 좀 살려 달라고 그렇게 사정하는 바람이 되고, 새가 되고, 눈이 되고, 비가 되고, 꽃이 된다는 것을 지장암 스님은 알 것이다.
인간세상의 번뇌와 고통이 눈송이들을 그렇게 떠돌게 한다는 것을 스님은 알 것이다.
그런 삶의 소용돌이를 다 끌어안고 어르고 달래고 다독거리고 같이 울어주고, 스님은 늘 그렇게 고요하시다.
어려운 삶을 쉽고도 간결하게 해석하시고 자기가 기거하는 절에 무거운 짐들을 부리고 가기를 원하신다.
그리하여 밤이면 그렇게 솔숲에 이는 바람들을 스님은 잡고 우는지도 모른다.
※ 어느 여름날 모사찰을 순례하면서 깜짝 놀란일을 생각해보면 불교가 많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 본다.
전각들이 자연에 녹아들어가야 하는데 자연을 지배해 가고 있는 현실들이다.
자연을 생각하고 보살펴가면서 혜택을 누리고 돌려받음이 있을 텐데
법당주변의 잡초에 제초제를 뿌려서 잡초들이 말라타 들어가는 중에 고약한 내음새는 진동하고 있었고,
그 풀숲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람쥐 한마리가 우리에게 반겨주고 있음을 보고 무척 놀랐다.
제초제란 고엽제라고 하는데 자연생태계를 망치는 이러한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부역하는것도 스님들의 소임인것이요 수행의 일부 일진데.....
제초제는 토양을 산성화하고 초목을 말라죽게 할뿐만 아니라 토양에서 자라나는 미생물까지 죽이는 독약임을
잊어서는 안 될일이다. 그 다람쥐의 생명도 위협을 당하고 있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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