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흘러 청년은 머리가 백발이 되고, 매화나무도 꽃이 피고 지고 자랄대로 자라났다. 그는 설날이나 단오 같은 명절이 돌아오면 그녀에게 예쁜 옷을 입히지 못하는 대신 꽃 그릇을 만들어 매화나무를 그곳에 옮겨 심었다. “내가 죽으면 널 누가 돌봐 줄까? 내가 없으면 네가 어떻게 될까?” 하며 몹시 슬퍼했다.
아직 채 겨울이 가시기도 전에 피는 꽃 매화. 그 모양이 흡사 죽은 용에서 꽃이 피는 것 같다고 하였다. 옛사람들은 매화를 가꾸는 것만으로도 춘정이 돋아오른다고 하였다. 경기도에 전래되는 [매화타령] 중에 “인간이별 만사 중에 독수공방이 상사난이란다, 좋구나 매화로다, 어야 더야 어허야 에 디여라, 사랑도 매화로다” 라는 구절이 있다. 임도 없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는 과부의 속을 가장 먼저 긁는 것이 바로 흐드러지게 핀 매화인 것이다.
매화의 이런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사랑의 의미로 사용된 매화문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것은 유교사회의 엄숙주의에 기인한 것이기도 할 테지만, 무엇보다도 사군자 혹은 세한삼우(歲寒三友) 로서의 매화가 더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만들어진 청자상감매죽수금매병이나 조선시대 백자에 매화 문양이 자주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사군자로서의 매화인지 사랑의 상징으로서의 매화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여인네들이 사용하는 비녀에서 그 모습을 흔히 찾아볼 수 있고, 조선 후기의 세속적인 분위기에서 창작된 민화들에서 사랑을 상징하는 매화가 등장한다.
오히려 매화는 문양에서보다는 문학작품에서 그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옥같은 살결엔 아직 맑은 향기 있네”라고 읊은 이규보나, “곱고도 아리따운 옥선(玉仙)의 자태여”라고 노래한 김구용의 시는 희고 순결한 미녀를 매화에 빗대어 예찬하고 있다.
또한 [매화가]라는 작자미상의 12가사에서는 “매화야 옛 등걸에 봄철이 돌아온다, 춘설이 하 분분하니, 필지 말지도 하다마는… 그물 맺세, 그그그물 맺세, 오색당사로 그그그물 맺세” 라고 하여 남녀간에 오가는 사랑의 실랑이를 그물을 맺는 행위에 비유하고 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경복궁의 아미산 굴뚝에는 매화와 대나무가 함께 새겨져 있다. 또한 조계사 법당문틀에도 화려한 매화 한그루가 올려져 있다. 이것들이 비록 다른 의미로 만들어졌을지라도, 이른 봄에 그것을 보는 청춘 남녀에게는 사뭇 정겨웠을 것이다. 왜 예전에는 탑돌이를 하다 눈맞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지 않는가.
매화(梅花)
세한삼우(歲寒三友)란 겨울날의 세 친구란 뜻으로 추운 겨울을 잘 견뎌 함께 해를 넘긴다 하여 소나무, 대나무, 매화를 한 데 묶어 부르는 이름이다.
매화가 대나무와 함께 그려질 때는 주로 부부를 의미하는데 여기서 매화는 아내를, 대나무는 남편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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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문 벼루, 조선시대
나전모란당초매죽문의함, 조선시대
나전상자 매화문, 조선시대
홍매도(紅梅圖), 조희룡, [편우영환첩] 중 17면, 서울대박물관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