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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란유골(鷄卵有骨)'
    ♥일상사 2008. 4. 11. 06:00

    ‘계란유골(鷄卵有骨)'

     

    조선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황희(黃喜)는 매우 청렴해 관복도 한 벌로 빨아 입고 장마철에는 집에 비가 샐 지경이었다. 세종은황희의 이런 생활을 안쓰럽게 여기고 도와줄 방법을 궁리했다. 세종은 “내일 아침 남대문을 열어서 닫을 때까지 문 안으로 들어오는물건을 다 사서 황희에게 주겠노라”고 했다.

    그러나 그날은 뜻밖에도 새벽부터 몰아친 폭풍우로 문을 드나드는장사치가 한 명도 없었다. 문을 닫을 때가 돼서야 한 시골 영감이 달걀 꾸러미를 들고 들어왔다. 왕은 약속대로 이 달걀을 사서황희에게 주었다. 그런데 황희가 달걀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삶아 먹으려 하자 모두 곯아 있어서 한 알도 먹을 수가 없었다.‘송남잡지(松南雜識)’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 기에서 ‘계란유골(鷄卵有骨)’이란 말이 생겼다. 원래는 계란이곯았다는 뜻으로, ‘곯다’의 음을 따 ‘골(骨)’자를 쓴 것이다. ‘골’을 ‘뼈 골(骨)’로 보아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운이 나쁜 사람은 좋은 기회가 와도 뜻대로 되는 일이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쁜 일만 이어지니‘계란유골’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머피의 법칙’인 셈이다.

    ‘계 란유골’과 구조가 비슷한 한자 성어로는‘언중유골(言中有骨)’이 있다. 말 속에 뼈가 있다는 뜻으로, 예사로운 말 속에 단단한 속뜻이 들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모양이 비슷하다 보니 ‘계란유골’과 ‘언중유골’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사람이 적지 않으나 둘은 완전히 다르므로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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