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에
조용히 식어가는 차 한 잔에서
사람의 생애를 봅니다
우리 한생애도 그저
저 혼자 식어갈 따름입니다.
당간에 내걸린 누더기 한 벌도
일자불설(一字不說)이라......
한 말씀도 아니라지만
오늘은 누더기에 입이 생겼습니다.
누구나 제 살아온 껍데기를 버리고
이렇게 이승을 떠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옛적 달마가 동으로 오셨다더니 이제 소문만 남았습니다.
다시 오시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조주의 뜰에 천년 묵은 잣나무 아직 푸릅니다.
다람쥐들 드나드는 것 보니 잣도 벌었는가 봅니다.
원효는 당(唐)으로 가다 돌아섰다고 했습니다.
우리 시대는 머릿속부터 남의 땅입니다.
천년을 남의 머리 남의 가슴으로 살았으면
이제 내 머리로 생각하고
내 가슴으로 사랑하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명당이 발복하게 한다고 합니다.
묏자리 하나 제대로 잡아 앉으면
나라도 얻고 돈도 얻고 명예도 얻고
온갖 영화를 다 누릴 수 있다고 합니다.
다 얻는다는 그 자리를 다투는 면면들을 보면
안 믿기도 어려워집니다.
벌써 절반 넘게 갖춘 사람들이라
그 자리 얻으면 마저 다 얻을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는다 해도,
그렇게 많이 누리고 살면 정말 좋은지는
확신하기 어려운 노릇입니다.
많아서 좋은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는 일이 대장부 일이라 했습니다.
이 밥도둑놈들아!
지는 꽃잎에게 묻습니다.
안 자고 안 먹고 꽃피우셨는가?
꽃잎은 말없이 웃고 집니다.
졸음 이기지 못하여 잠에 듭니다.
무엇 이기지 못하면 죽음에 드는 것인지요?
꽃이 피었습니다.
온통 밝습니다.
저 밝으니 나도 밝습니다.
밝은 그 꽃을 보고 마주 웃어줍니다.
저는 꽃피운 보람 있고 나는 저 만나 기쁨이 있습니다
좋은 날입니다.
새 한 마리가 나를 피해 저쪽 나무로 옮겨 앉습니다.
네가 나를 잘 아는구나!
단박에 아는구나!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정진도
세상에서는 겉멋이 되고 분위기가 됩니다.
어느 수행자가 좌탈이 소원이어서
방 안에 연탄불을 피우고 앉아
사투를 벌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모양 내고 살려는 욕심이 대개
앉아서 죽겠다는 바보짓과 비슷한 꼴입니다.
미물이 사람보다 나아서
배추 한 포기 위에서 한생애를 다 보내는 청벌레도
꾸미고 살지는 않습니다.
꾸미고 죽지도 않습니다.
청벌레 한 마리,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러 터뜨려 죽입니다.
적적하고 고요한 삶이 귀해진 지 오랩니다.
뜻깊은 자리마다 길을 내고
바퀴 달린 물건들이
바퀴벌레처럼 누비고 다니면서 더러운 것을 흘려놓습니다.
조망이 좋은 산꼭대기 암자에도
바퀴벌레는 거침없이 올라오고 내려갑니다.
나가서, 문 닫아걸어라!
기계는 낡으면 애물단지가 됩니다.
냉장고·자동차·컴퓨터가 다 그렇지만
첨단의 기계일수록 망가지면 곧 쓰레기가 됩니다.
손으로 만든 옛 물건이 손때가 묻을수록
편하고 아름다워지는 것 보면
,첨단’이 무언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깊이 있고 아름답기도 한 노경이
흔치 않은 것도 시대가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뜻하지 않은 돌발사고에
사고사, 비명횡사가 흔해졌습니다.
존재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는 셈입니다.
뿌리 없는 시절입니다.
풍요로운 세상이라 가난하게 살기도 쉽지 않습니다.
쓰고 버리는 것만 뒤져다 써도 호사를 하게 생겼습니다.
이 세상의 살림살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마도‘낭비’가 될 터입니다.
가난한 삶이라야 깊고 아름답습니다.
이승을 살고 가는 일이 가볍기로 하면
새털이 무색한 것이지만
무겁기로 하면 태산보다
오히려 무거운 것이기도 합니다.
그 길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것이
세상의 평가인 줄 알지만 결국은 우리 심중의 일입니다.
제가 저지른 일이라 평생이 한눈에 들어오기도 마련입니다.
스스로 살펴서 어두우면 서둘러야 합니다.
차 한 잔에 무슨 마음? 하기도 하지만
무릎 꿇고 앉아서 혼자 조용한 순간이면
몸뚱이 문득 마음덩어리이기도 합니다.
차 한 잔에 가득 마음! 입니다.
진초록의 대숲에서
파도처럼 일렁이는 바람 소리에 덩달아
넘쳐버린 마음은
주워담을 길 없이 번져나고 있습니다.
마음 벌써 대숲 밖으로 달아나버렸습니다.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 길에서 우리들 서로 만납니다.
길 없는 길에도
같이 가는 큰길 있고 좁은 오솔길 있습니다.
그 길을 여럿이 함께 갈 수 있습니다.
초록 이정표에는 곳곳의 지명이 선명하게 박혀 있지만,
영어로도 크게 적혀 있지만,세상에는 길 없습니다.
마음에 이르는 길 없습니다.
그 길에서 살펴보니 아, 내게는 눈도 없습니다.
눈 없이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마음의 본지풍광을 깨달아 아는 것이 대장부의 일이라 했습니다.
옳은 말이지만 대장부만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꼭 같이 해당하는 말이려니 짐작합니다.
세상은 사람을 내다버리는 데 이르렀습니다.
휘황한 소비와 환락의 불빛 아래서
시들고 타락해가는 젊음과,
쓸모없어서 일찍 버려지는 장년과 노년의 삶에,
이제 파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 모두가, 마음을 내팽개치고 사는 때문이라 하면
너무 막연하다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결국 마음이 탓입니다.
소나무 그림 중에도 백미라 하는
<세한도>보다 훨씬 잘생긴
소나무가 즐비한 옛 무덤자리가 있습니다.
몇 해째 소나무들이 말라 죽는 것 안타깝더니
이제 젓가락만큼씩 한 어린 소나무들이
그 밑에 번지고 있더라는 소식입니다.
노인네와 고사목은 절의 자연스러운 풍광이라 한
경전의 한 대목이 기억납니다.
어린 아이와 어린 나무도
자연스러운 풍광 아닐 리 없거니와,
노유가 한 자리에서 어우러지면
더 아름다워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효율과 속도 따위가 대접받는 시절이라
‘나이먹은 것’에 대한 존경이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큰 그늘을 드리운 느티나무만 보아도
노경의 아름다움과 뜻깊음을 알 만합니다.
늙마의 일이, 자리를 지키면서
그림자 안에 깃드는 생명들을
쉬게 하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머지 않은 종명(終命)을 생각하고,
이렇듯 작고 철없는 생명에게
몇 마디 이야기를 전해주는 일쯤은
그래도‘늙은이의 마지막 일’이 됨직합니다.
저 소나무 한 그루가
목숨 자리를 알아서 그 소식 전하시는가?
어린 소나무에게 이르는
전등(傳燈)의 사연이 궁금합니다.
소리 없이 천둥칩니다.
힘들면 몸부터 주저앉고 눕게 되는 것에서도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죽은 몸뚱이가 적막한 것을 알면 더 분명해집니다.
사람은 끝내 고요한 데 이르게 생긴 존재입니다.
늦가을이 온통 기품으로 가득 차는 것을 보았습니다.
늦가을 오색 장엄 앞에서
겨울 백발을 짐작키도 어려울 것이 없고
봄 어리광 여름 장난을 이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상한 콩을 골라서 퇴비더미에 쏟아버렸는데,
그 반편들―찌그러지고 썩고 병들어 문드러진,콩들이
소복하게 파란 싹을 틔워냈습니다.
온전한 생명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죄송천만이었습니다.
제 속의 어둠을 툭 터뜨리면서 산벚나무 꽃피었는데......
살지!
힘겨운 삶도 살아보면 기쁨 있는데......
어리석음이 제 목숨을 제가 내다버립니다.
마음 한가운데 색이 앉아 지냅니다
그러면 서로 부끄럽습니다
면목없습니다.
마음 한가운데 어둡고 답답한 기운이 들어와
앉아서 편치 않습니다.
뱃속이나 마음속이나 방귀 크게 뀌고 나야
시원스러워집니다.
마음을 가만히 살피면
오색 종이가 들어 있는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현란하고 변화무쌍합니다
마음의 천변만화가 한눈에 보입니다.
그 마음이 어디서 왔는가?
빨래 다 걷어내고 나니
빨랫줄에 빈 하늘이 잔뜩 내걸렸습니다.
그 하늘에 구름무늬가 들어 있는가?
이승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떠나게 될 풍광을 아시는가?
묻습니다.
모르면 눈 없는 사람 알면 지레 죽은 사람입니다.
창문 열고 보면 그날도
허공에 구름 떠가고 있을 터,
창문 닫아도 허공에 구름 흘러가기 마찬가집니다.
밤 이슥토록 일하고 뜰에 나서는데
어둠 깊은 산의 외줄기 능선 위로
조각달과 초롱한 별이 하늘에
지켜 서 있는 것 보였습니다.
피곤한 삶을 지켜 선 것이
거기도 있었구나 하고 어둠 속을 돌아보니
희미한 달빛에 조용히 제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더 있습니다.
아직 삽자국이 선명한 흙덩이들과
낮은 지붕들과 멀리 잣나무숲입니다.
그것들로 봄밤이 문득 아름답습니다.
한낮 햇살이 눈부시고
그 따사로움이 세상 키우는 힘이지만,
어둠 속에 온기 없이 희미한 달빛만으로도
마음 이렇게 넉넉해집니다.
이만큼만 나누어도 한시절
겨우겨우 살아가기는 하려니......
차고 기우는 달은,
밝고 어두워지는 마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육창(六窓)의 달.
월인천강(月印千江)이라고,
달 하나가 천 줄기 강물에 두루 비쳐 있는
아름다움에 다 밝은 지혜의
두루한 힘을 넌지시 실어 보인 표현이 있습니다.
TV의 작은 화면에 비치는 이미지와 메시지의 힘은
지혜 아니어도 한없이 크고 거침없습니다.
밝은 지혜의 언어는 어디 사시는가?
현주소가 궁금해집니다.
큰 강을 건넜습니다.
썩은 물도 흐르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기 꺼지지 않는 불빛의 홍수 속에서
많이 희미해진 도시의 달이 비치어 있었습니다.
낯익은 풍광인데 눈물겹습니다.
하늘 보면, 다 버리고 사는 것이 옳은 줄 알게 됩니다.
맑은 날, 하늘에 가득한 별들의 사방팔방 연속무늬를 배경으로
가끔 떨어지는 별똥을 만납니다.
별도 때가 되면 꽃 지듯 떨어집니다.
별이 지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지는 별을 보고
땅에서는 달빛의 하얗게 빛나는 배꽃의 낙화를 봅니다.
사람도 지는 법.
별 보고 꽃 보는 우리들도 그렇게 지고 맙니다.
무심한 눈이 되어서 바깥을
조용히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을 그렇게 바라보아도 좋고
새떼들이 먹이를 찾아 몰려다니는
겨울풍경을 그리 바라보아도 좋습니다.
그 눈으로 제 삶의 갈피와
구석구석을 조용히 보고 있으면저
혼자 소란스러운 것이 가여워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가여운 것이 바로 나인 줄 알게 되기도 합니다.
비 오는 날 툇마루에 앉아 내다보는 경치 중에
제일 가까이 있는 것이 낙숫물 떨어지는 풍경입니다.
저 혼자 듣는 낙숫물에 천천히 마음을 맡겨가노라면
낙숫물은 문앞에 드리운 발처럼 조용히 그저 있고,
나는 한없이 작아진 마음 한조각이 되어 있습니다.
문득 그 일뿐,
바깥풍경도 무엇도 다 사라지고 없습니다.
세상은 그 물방울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 버리면 오히려 새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