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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의 돋보기로 전체의 삶을 보라
    ◑解憂所 2008. 1. 23. 10:09

    일곱 단계의 무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이 평화롭고 행복하고 주변에 생기를 주면서 살 자신이 있는 이에게 무(無)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남과 자신에게 상처를 주거나 받고 괴로워할 가능성이 있다면,
    빵만이 아니라 삶 전체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다면,
    무의 돋보기를 들고 자신을 돌아보며 정리할 필요가 있다.


    ‘무’의 돋보기로 전체의 삶을 보라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는 상태

    불변의 실체없는 空함 깨달아야



    첫째 나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더 크게 물어보자.
    우주의 시간적 공간적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어떤 시작이나 끝을 대더라도 다시 그 시작의 시작과 끝의 끝을 연이어서 물을 것이기 때문에, 질문을 마무리 짓는 답은 있을 수가 없다. ‘무시무종’의 무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다.

    둘째 “나는 지금 살고 있는가?”라고 물어보자.
    물론 나는 죽지 않았다. 살아 있다.
    그러나 나의 자력으로 걸어오지 못했다.
    태어나졌다. 탄생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내 삶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내 맘대로 살 수가 없다.
    가정과 사회의 문화, 규율, 바램의 틀을 함부로 벗어날 수 없다.
    나는 군중 속에서 ‘살려진다’ 군중의 물결을 따라 ‘흘러간다’
    ‘떠내려간다’ ‘무리(群)’ 또는 ‘흘러감(流)’의 무이다.

    셋째 나는 주어진 일에 성실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 속옷, 양말, 목도리, 모자 등을 많이 준비해 왔다.
    자료를 챙기느라고 많은 서적을 구입했다.
    등산에 취미를 붙일 때는 등산장비를 이것저것 구입했고,
    테니스 운동을 할 때는 라켓이나 복장을 준비했다.
    스키나 롤러스케이트를 탈 때도 마찬가지로 필요한 용품과 운동복을 갖추었다.
    바다에서의 안전을 위해서 각종 항해 장비를 준비했다.
    그러나 잠깐 세월이 흐른 사이에 속옷들은 노랗게 색이 바래버렸고,
    모든 장비들은 구형이 되어서 쓸모없이 되어 버렸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모아 두었던 회의 자료들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다.
    내가 꼭 쥐어왔던 모든 것들이 변형되고 구형이 되었다.
    나까지도 ‘버려야 한다’ ‘쓸데없음’ 또는 ‘폐기’의 무이다.

    넷째 내 돌아보니 부질없이 세월만 보냈다.
    누구를 지극히 위해본 적도 없고, 목숨 바쳐 보살도를 닦지도 못했다.
    이 몸 지키기에 급급해 왔다. 무의미하게 인생을 보냈다.
    허망하다. ‘회의(懷疑)’, ‘허무’의 무이다.

    다섯째 나만 허무한 인생을 사는가? 누구나 똑 같다.
    세월에 스치면 늙고 병들고 버리게 되어 있다.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을 찾아보자. 없다.
    그러면 항상 없는 것은 있을까?
    끊임없이 돌아가는 우주에서 항상 없기만 한 것도 없다.
    그리고 본래 없는 것은 없으니까 알아볼 수 없다.
    변하는 것을 찾아볼까? 보다 빨리 또는 보다 늦게 변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모두 변하므로, 검정 종이 위에 검정 글씨를 써도 알아볼 수 없듯이,
    변하는 것 위에 변하는 것을 말해 봐야 무의미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물론 찾을 수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까.
    세상이 끊임없이 변하는 상태, 불변의 실체는 없는 텅 빈 상태에 있음을 깨닫는다.
    “만법의 공함을 알아보는” 무이다.

    여섯째 완전히 텅 비어 있는 상태를 뒤집어 볼 수도 있다.
    내 마음에 분명히 지옥, 아귀, 축생, 극락 등이 있는데,
    모두 텅 비었다고 한다면, 그 안에 모든 요소가 뒤섞여 있다는 말과 같다.
     바람이 없어서 파도가 가라앉아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불면 언제든지 파도가 일어날 것이므로, 바닷물에는 이미 파도가 들어 있다.
    지옥과 극락이 항상 갖추어져 있으니,
    어느 쪽에 마음을 두느냐의 선택만 있을 뿐이다.
    ‘충만’ 또는 ‘본래 갖추어 있음’의 무이다.

    일곱째 완전히 공함과 완전히 충만함을 체득하면,
    ‘있고 없음’ ‘온다 간다’ ‘의미 무의미’ ‘행복 불행’ 등에 걸릴 것이 없다.
    해탈의 경지에서 자유자재로 보살도의 세계를 그릴 수 있다.
    ‘보살도의 무대에 출연하기’ 또는 ‘자비 그림 그리기’의 무이다.

    너는 어느 무에 걸려 있는가? 아무도 듣는 이 없으니 솔직히 일러라.
    “예, 소납은 위의 다섯째 텅 빔의 무에 걸려 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앞으로 갈 길이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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