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마음은 둘이 아니요
둘 아님이 믿는 마음이니,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과거.미래.현재가 아니로다.
(信心不二요 不二信心이니 言語道斷하여 非去來今이로다.) - <신심명>
어떤 큰스님께서는 손님이 오면, 후원의 소임자를 불러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나와 한 고향 출신이다. 잘 대접하도록 하여라.” 큰 스님과 동향출신이라는 말을 듣고는 최선을 다해 손님을 모셨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거의 오는 손님마다 한 고향출신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이를 궁금히 여겨서 여쭈었더니, 큰스님께선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사실 우리 모두가 한 고향출신이다. 본마음 참 나 자리에서 온 것이지.”
인도에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지금도 거기에서는 밥 먹을 때 맨손을 사용하는 습관이 남아있다. 또한 시골의 화장실에는 아직도 휴지가 없다. 휴지 대신 작은 물통 혹은 물 컵 하나씩 놓여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용변을 보고나서 휴지로 뒤를 닦는 것이 아니라, 물을 사용해서 손으로 세척하는 것이다. 사실 휴지를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깔끔하고 개운해서 일단 맛을 보게 되면 이러한 방법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본 마음 입장에선 ‘일체가 나’
삶과 진리 不二 믿는 것이 신심
이렇게 맨손으로 먹기도 하고 맨손으로 닦기도 하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손이 정해질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먹는 것은 오른손, 뒤를 닦는 것은 왼손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오른손은 깨끗함, 왼손은 더러움을 상징하게 된다. 이러한 두 손을 합쳐서 인사하는 합장(合掌)인사에는 다분히 중도적 의미가 담겨있다. ‘깨끗함과 더러움이 둘이 아니다. 그대와 내가 둘이 아니다.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다. 선과 악이 둘이 아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바로 지금 여기서 나의 삶과 진리가 둘이 아님을 확고히 믿는 것이 진정한 신심이다. 불상을 향해서는 108배는 물론 삼천배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정작 자신의 주변사람들에게는 고개 숙여 삼배조차 하지 않는 마음은 진정한 신심이 아니다. 부처와 중생이 둘 아님을 굳게 믿어야한다. 나아가 일과 수행이 둘이 아님을 굳게 믿어야한다.
출가해서 행자생활 당시 주로 설거지나 해우소 청소를 도맡아 하였다. 아마도 평생에 먹은 밥그릇만큼의 설거지를 하지 않았을까? 큰 법회라도 있게 되면, 한꺼번에 수백 수천 그릇의 설거지를 한 적도 있었다. 그때에 만약 “내가 뭐 설거지나 하려고 출가했나?”하는 생각으로 대충대충 그릇을 닦고, 시간나면 책이나 보려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찌꺼기 담긴 그릇이 나의 오염된 마음과 같다. 마음그릇을 닦는 심정으로 설거지를 하자’하고 설거지를 하게 되니, 즐거운 생각이 들었다. 깨끗하게 닦아 보송보송한 그릇을 보면, 마치 내 마음도 깨끗해진 듯 기분이 상쾌해졌다. 결국 수행과 일이 둘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본마음 참 나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둘이 아니다. 일체가 ‘나’이므로 나 아닌 것이 없어져서, 언어분별이 끊어지고 시간조차 의미를 잃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