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존선겸(欲尊先謙)
존경을 받으려면 먼저 겸손하라
1987년 군사독재정권은 국민들의 저항에 더 이상 못 버티고 마침내 개헌을 하여 대통령 직선제(直選制)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이 이른바 6·29선언이다.
그 이후로 봇물 터지듯이 각종 토론이 활성화되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매주 정기적으로 토론프로를 편성한 것은 물론이고, 각급 기관, 각종 단체 등에서 주관하는 토론이 경향각지에서 많이 생겼다.
독재정권 시절 일방적으로 지시하던 체제에서 자기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토론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큰 기대를 하였고, 텔레비전 토론프로의 경우, 시청률이 대단히 높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토론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점점 미미해지다가 요즈음 와서는 토론에 대해서 기대는커녕 도리어 염증(厭症)을 느끼게 되었다. 왜냐하면 장시간 토론해 봐도 결론이 나지 않고, 또 토론을 듣고 있노라면 출연자들간의 언쟁으로 인하여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토론 문화가 성공적으로 정착하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토론에 나오는 사람들이 토론을 하면서 상대방의 의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주장만 펼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체벌(體罰)을 해야 되느냐, 하지 말아야 되느냐로 토론을 벌이게 되면, 다 같이 교육학을 전공한 전문학자거나 교육 현장에서 종사하는 교사들이 출연해서는 '체벌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하는 일파와 ‘체벌은 꼭 필요하다'라고 주장하는 일파로 나뉘어서 열띤 토론을 하는데, 결론이 없이 끝내고 만다.
상대방의 주장은 아예 옳지 않다는 선입견(先入見)을 가지고 대하기 때문이다. '한반도 대운하사업'에 대해서 토론을 하면 운하전문가들이 나와서 토론을 하는 데도 상대방의 의견은 한 가지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역시 결론은 내리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다가 끝낸다.
우리 사회에는 요즈음 너무 자기만 내세우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풍조가 만연하다. 국가 기관끼리는 국가는 국민을, 국민은 국가를, 정부는 국회를, 국회는 정부를, 여당은 야당을, 야당은 여당을 무시한다. 상대방의 입장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진보단체와 보수단체, 사업주와 노동자, 노인과 젊은이, 남자와 여자 등등 모두가 서로 대립적으로 되어 자기들의 주장만 펼친다. 결과는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지도 못하면서, 상대방의 기분만 나쁘게 만든다.
사람은 누구나 남의 존경을 받고 싶다. 존경을 받고 싶으면 자신이 자신을 높여서 되는 것이 아니고,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고서 상대를 높이는 데 있다.
겸손(謙遜)할 '겸(謙)'자는, '말을 겸(兼)해서 한다'는 뜻이다. '말을 겸해서 한다'는 말은, 자기만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도 겸해서 배려한다는 뜻이다. 남을 배려한다는 것은 인간 존중으로 결국 그 효과가 자기에게 돌아온다.
교만하게 굴면서 남을 무시하면 결국은 그 결과가 자기에게로 돌아온다. 자기가 대우받고자 한다면 먼저 남을 존경해야지, 남을 타도하고 교만하게 지내서는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