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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Thema)가 있는 사찰순례(15-내원사)
    ♠寺刹巡禮 2012. 11. 13. 04:56

     

    테마(Thema)가 있는 사찰순례(15-내원사)

    지권인(智拳印)을 한 8세기 비로자나불상을 찾아서

     

     

     

     대웅전

     

     공양간에 메달린 곶감

     

     

     

     

    내원사
    대웅전 오른쪽에 위치한 산신각은 바로 옆으로 계곡물이 줄기차게 흐르고 있다. 여느 산신각 보다 큰 이 전각은 산신각이라는 편액뿐만 아니라 칠성각, 천왕전(天王殿)이라는 편액이 함께 걸려 있다. 천왕전은 옛날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왕비로 가게 된 한 여인이 지리산으로 도망을 와서 수행을 하면서 신통력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의 이야기에서 누군가 천왕보살로 모시다가 한 노보살이 보살상을 만들어 자기 집에 보관하다가 산청 내원사에 기증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보살상은 옛날 왕비들이 한 머리모양을 하고 있다. 전각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에 익공계 팔작지붕이다. 처마는 겹처마에 단청이 되어 있다.

    정면에는 산신각의 편액이 걸려 있는데, 빗살무늬 3분합문이 달려 있고 왼쪽 협칸에는 칠성각으로 빗살무늬 4분합문이, 오른쪽 협칸은 천왕전으로 빗살무늬 3분합문이 달려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독성탱과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는데, 산신탱의 호랑이는 털의 색이 희고 얼굴도 여느 호랑이와는 다른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칠성각 편액이 걸린 칸에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칠성여래를 협시하고 있는 칠성탱이 봉안되어 있다. 천왕전 칸에는 보살상 3구가 봉안되어 있는데, 하나는 동불입상이며 나머지 2구는 석불좌상이다.

    산신각 앞에는 바위 위에 작은 3층 석탑이 세워져 있는데, 사각 기단 위 네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공간을 둔 채 갑석을 놓고 가구식 모양의 우주를 올려놓았다. 그 위에 다시 옥석받침이 있는 옥개석을 3층으로 올렸다. 산신각 주련은 다음과 같다. 靈山昔日如來囑(영산석일여래촉) 영산에서 옛날 부처님의 부촉으로 威振江山度衆生(위진강산도중생) 강산에 위세 떨치며 중생을 제도하고 萬里白雲靑장裡(만리백운청장리) 만리에 뻗은 흰 구름과 푸른 산봉우리 속에서 雲車鶴駕任閒情(운거학가임한정) 학이 모는 구름 수레 타고 한가로이 지내시네.

     

     

     산신할매

    대웅전에 모셔진 주불

    내원사의 대웅전 앞에 서 있는 탑으로, 2단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올린 모습이다.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서 기둥 모양을 본떠 새긴 것이 뚜렷하게 보이지만, 불에 타서 심하게 손상된 상태이다. 얇고 평평한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4단씩 두었으며, 수평을 이루던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크게 치켜 올려져 있다.
    지붕돌의 모습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작품임을 알 수 있으며, 당시의 석탑 양식을 살피는 데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내원사 삼층석탑은 2 층기단(二層基壇) 위에 3층의 탑신을 건립하고 정상부에 상륜(相輪)을 장식한 신라 시대 일반형 석탑이며 높이 4.8m이다. 이 석탑의 북쪽에 옛 법당지가 있고, 주변에 석등부재와 석탑의 상륜부재, 각종 조각석의 파편등이 높여 있는 것으로 보아, 본래는 남향한 1탑가람으로 현재의 위치가 원 위치임을 알 수 있다.
    지대석(地臺石)과 하층기단 면석(面石)은 같은 돌 4매로 구성되었는데, 하층 기단 각 면에는 두 개의 우주(隅柱)와 두 개의 탱주(撑柱)가 모각되어 있다. 탑신부(塔身部)에는 탑신과 옥개석이 각각 한 돌로 조성되었고 옥개석(屋蓋石) 받침은 4단씩이며 물매는 얕고 추녀는 직선이다. 옥개석 상면에 2단의 받침으로 그 위층의 탑신석을 받고 있는 점과 특히 기단부의 구성 및 각부의 양식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하대(下代)의 석탑의 원형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지리산 중턱에 있던 석남암사지에 있다가 현재 내원사로 옮겨 놓은 돌로 만든 비로자나불상이다.

    (보물1021호)

    비바람에 의한 마멸 때문에 세부표현은 명확하지 않지만 당당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머리 위에 있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는 높고 큼직한 편이나 약간 파손되었으며, 둥근 얼굴은 부피감이 풍부하여 8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상체는 건장한 모습으로 자연스러운 가슴, 허리의 굴곡, 어깨나 팔의 부피감 등에서 사실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전신을 감싸고 있는 옷은 얇아서 신체의 굴곡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옷주름 역시 촘촘하고 부드럽게 표현하여 8세기 불상의 옷주름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손모양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쥐고 있는 모습으로 이 불상이 비로자나불임을 알려주고 있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臺座)는 상대•중대•하대로 이루어졌는데, 8각의 하대에는 아래를 향한 연꽃무늬를 새겼다. 중대는 8각의 각 모서리마다 기둥을 새겼으며, 상대에는 2겹의 연꽃무늬를 새겼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에는 연꽃무늬와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위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하단까지 깨져 약 3분의 1정도가 없어져 버렸다.

    대좌 중앙의 구멍에 있었던 사리호(舍利壺) 표면에 기록된 글에는 신라 혜공왕 2년(766)에 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석남암사에 모신다는 내용이 있다. 이 불상은 비로자나불상의 가장 빠른 조성 예로 조각사 편년 및 사상사 연구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 석불은 지리산 중턱에 있는 석남암사(石南巖寺)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사리기의 명문(명문)에는 “석남암사” “석남암수(石南巖藪)”로 되어있다.

    대좌(臺座)속에서 사리기(舍利記)가 발견되어 766년 신라(新羅) 때 조성된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임이 밝혀졌다. 풍부한 입체감(立體感)과 우아한 자비의 얼굴 모습을 간직한 세련된 조각 솜씨를 지니고있다. 특히 두 손을 가슴에 모아 지권인(智拳印)을 한 8세기 비로자나불상의 예로서 이상적(理想的) 사실주의(寫實主義)양식을 보여주고 있어 석굴암(石窟庵) 본존상(本尊像)과 비견된다. 광배(光背)에는 화려한 연꽃무늬가 새겨지고 대좌도 갖추고 있어 신라 비로자나불상의 초기 자료가 되는 중요한 석불(石佛)이다.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 장당골과 내원골이 합류하는 위치에 절묘하게 자리한 절이 내원사(內院寺)이다. 절이라기 보다 어느 양반집 후원같이 정갈하고 그윽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곳이다. 신라 태종 무열왕 때 무염(無染)국사가 창건하여 덕산사(德山寺)라 하였으나 그 뒤 원인 모를 화재로 전소되어 그대로 방치되다가 1959년 원경(圓鏡)스님에 의해 다시 주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당시 절 이름도 내원사로 고쳤다.

    장당골쪽의 계곡을 따라 숲속 계단을 올라가면 장당골 계곡 맞은 편에 있는 소담한 절을 마주하게 된다. 내원사(內院寺)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절에 들어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반야교이다. '반야'란 지혜를 의미한다. 세속의 모든 번뇌를 잊어버리는 지혜를 반야교에서 얻어, 절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맑은 물소리와 더불어 천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며, 반야교의 가운데 서면 계곡의 찬 기운을 느낄 수 있으며, 흐린 날에는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신비로운 물안개도 감상할 수 있다.

    반야교를 지나면 일주문이나 불이문 같은 입구도 없이 양반집 후원같은 경내에 들어서게 된다. 계곡의 물소리로 인해 사찰이 물 위에 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웅전 앞마당을 단풍나무가 주변에서 둘러싸고 있고, 대웅전을 중심으로 심우당, 비로전, 산신각, 칠성각, 요사채가 있으며 건물의 규모는 한결같이 작다. 보물로 지정된 비로전에 봉안된 석남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고려시대에 건립된 내원사(內院寺)삼층석탑이 있다.

    대웅전 앞 계단 위에서 앞마당을 보면 더욱 정겹다.

    내원사(內院寺)에는 풍수와 관련된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온다. 이 절터가 풍수상 명당터라 전국에서 찾아오는 관람객으로 큰 혼잡을 이루게 되어 수도하는데 많은 지장을 주게 되었다. 주지스님이 이를 걱정하였더니 어느 노승이 말하기를 '남쪽의 산봉우리 밑까지 길을 내고 앞으로 흐르는 개울에 다리를 놓으면 해결될 것이다.'하고 홀연히 떠나버렸다. 이튿날부터 대중스님들이 총동원되어 개울에 통나무로 다리를 놓고, 봉우리 밑까지 길을 낸 다음 모두 쉬고 있는데 돌연히 고양이 울음소리가 세 번 들려왔다. 이상히 여긴 사람들은 무슨 징조인지 궁금하게 생각했다. 그 후 풍수설로 해명하기를 앞에 있는 봉우리는 고양이 혈이고, 절 뒤에 있는 봉우리는 쥐의 혈인데 여기 길을 내고 다리를 놓으니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이 있고 나자 그렇게 많이 찾아오던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어 스님들이 조용히 수도에 정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로 절은 전부 불타 버리고 말았다. 절이 불타고 있을 때 이 절에 기거하던 세 분의 장사스님이 개울에서 커다란 통나무에 물을 길어 불을 끄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왼쪽에서 길어 쏟는 물은 오른편 개울에 떨어지고, 오른편에서 쏟은 물은 왼편 개울에 떨어지며, 앞에서 쏟은 물은 뒷산 봉우리에 떨어져 결국 불길을 잡지 못하고 절이 전소되었다고 한다.

    당시 이 절에는 '장군수'라는 약수가 있었고, 두부를 만들 때 사용했다는 큰 맷돌과 여름이면 김치독을 채워 두었던 웅덩이가 개울 옆에 있었는데 그대로 남아 있다.

    지리산 골짜기에 있는 소담한 절, 내원사(內院寺)는 계절마다 느낌이 달라 운치를 더하지만 특히 대웅전 마당의 단풍나무가 물드는 가을에 더욱 멋이 있으며, 그 포근함으로 인해 하룻밤 머물고 싶은 곳이다.

     

    내원사 반야교

    검붉게타는 내원사와 대원사의 가로변의 애기 단풍은 이루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주었으며 계곡의 흐르는 물소리는 무아지경에 빠지게하였다.

    가을의 정취와 더불어 단풍, 맑은 계곡물소리, 정감있는 사찰순례를 마치고 지리산 천왕봉을 뒤로 한채 이 고깃덩어리 눕힐 장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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