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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관, 깨달음의 순간은 어떠한가?
    ◑解憂所 2012. 2. 28. 07:13

     

    직관은 일종의 직접적이 자각이다.
    그것은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다.
    깨달음 역시 직접적인 자각이다.
    그것은 사고하거나 비교할 필요 없이 오는 어떤 것이다.
    장미를 볼 때, 직접적인 자각이 일어난다.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귀납하거나 연역할 필요도 없다.
    당신이 그것을 장미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거기 아무런 생각이 없어도 그렇다.
    어떤 생각도 어떤 이름도 필요 없다. 당신은 장미임을 알아차린다.
    거기에는 의식의 개입이 없다. 이미 직접적 자각이고 직관이다.

    직관은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황혼무렵 산 길에서 뱀을 보고 놀랐다면, 진짜 뱀일 수도 있고 새끼줄일 수도 있다.


    수행자는 더 많은 마음 챙김과 집중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모든 순간에 진정으로 거기 머무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일종의 '이해'가 일어난다.
    어쩌면 그 사람은 그것을 구하거나 찾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갑자기 찾아온다.
    어느 날 꽃이 피는 것과 같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의 수행의 열매이다.
    그것은 마음 챙김과 집중의 산물이다.
    왜냐하면 마음 챙김과 집중은 늘 통찰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통찰은 사토리(悟覺) 또는 깨달음, 통찰이라고 불린다.


    그 통찰은 많은 행복을 가져온다.
    갑자기 당신은 빛을 본다.
    당신은 걱정과 두려움, 화에서 벗어난다.
    거기에는 해방의 요소가 깃들어 있다.
    그것은 책에서 배우는 것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 챙김과 집중의 삶을 사는 데서 온다.


    싯달타 태자도 보리수 나무 아래 앚아 있을 때
    생각으로 하는 명상만 한 것이 아니다.
    그는 몸, 느낌, 지각과 깊이 접촉하고 있었다.
    그는 몸, 느낌, 지각을 아주 세밀히 관찰했다.
    수행의 과정에서 마음 챙김과 집중의 힘은 점점 더 강해졌다.
    바로 그것 때문에 어느 날 샛별이 반짝일 때, 그는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안에 있는 어두움을 몰아냈다.
    그 순간은 행복의 순간이었다.
    그것이 아주 큰 자유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불교 전통에서는 그와 같은 수행의 관점에서 직관을 이야기한다.
    진정한 이해, 진정한 통찰은 오직 마음 챙김과 집중의 수행을 통해서만 온다.
    그것은 호주머니 속에 있던 것 같지만, 오래동안 무시해 왔다.


    통찰이 일어날 때는 웃음을 터뜨린다.
    그것은 기쁨의 순간이고 만족의 순간이다.
    부처님께서는 그런 순간을 가지셨다.

    -틱낫한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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