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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 현재 미래의 마음은 없다
    金剛經 2012. 2. 14. 06:35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항하 가운데 있는 모래에 대해 여래가 말한 적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항하의 모래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하나의 항하 가운데 있는 모래의 수만큼 많은 항하가 있고,
    그 모든 항하의 모래 수만큼의 부처님 세계가 있다면
    그 세계를 얼마나 많다 하겠느냐?”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저 많은 국토 가운데 있는 모든 중생의 갖가지 마음을
    여래는 다 아느니라.
    왜냐하면 여래가 말하는 모든 마음은 마음이 아니라
    그 이름이 마음이기 때문이다.

    항하의 모래의 비유는 법계의 세계가 한량없이 많으며,
    그 많은 국토 가운데 있는 그 많은 중생들의 갖가지 마음을
    여래가 다 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비유로 드신 것이다.

    여래는 모든 국토의 모든 중생들의 갖가지 마음을 다 안다.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그 모든 중생들과 그 많은 중생들의 마음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로 부처에서 나왔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부처와 마음과 중생 이 셋은 다르지 않다’라고 한 것이다.
    그 나온 곳이 서로 다르지 않다.
    일체를 한성품으로, 한바탕으로 관해 본다는 것,
    일체동관한다는 것이 바로 그 의미다.

    일체가 둘로 셋으로 천으로 만으로 갖가지로 나누어 볼 수 없으며,
    돌이켜 관해보면 한성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한량없이 많고,
    그 많은 사람들이 쓰고 사는 마음 또한 팔만사천을 넘을 것이지만
    그 모든 마음, 그 모든 중생은 모두 한바탕에서 나왔다.

    나뭇가지며 잎사귀들은 한없이 많고 다양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다 뿌리가 근원이 되어 나왔듯이,
    이 세상의 모든 중생과 중생의 마음 또한 나온 곳은 하나다.

    그 하나를 이름하여 부처라고도 하고,
    불성, 신성, 하늘, 주인공, 일심, 본래면목, 어머니 대지, 도, 깨달음
    이라고도 하는 것일 뿐,
    그러나 어느 하나를 고정지어 이름을 명명해주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그것이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한 가지는 그 모든 곳은 하나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중생들의 마음이야 얼마나 많고 다양하고 복잡하며
    상황따라 경계따라 인연따라 끊임없이 오고 가는가.
    그러나 그 모든 마음이 저마다 실체가 있어서
    그렇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어떤 인연이 오느냐에 따라
    그 인연에 응하여 한 마음이 일어나고,
    하나의 번뇌가 일어나는 것이며,
    또한 그 인연이 다함에 따라 자연스레 그 마음은 소멸되는 것이다.

    육신도, 마음도, 생각도, 번뇌도, 업도 모두
    인연따라 잠시 왔다 인연이 다하면 소멸되는 것일 뿐이다.
    그 어떤 것에도 고정된 실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렇듯 실체가 없이 인연따라 오고가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마음은 마음이 아니라 그 이름이 마음일 뿐인 것이다.
    마음이라고 명명한 이름이 있을 뿐이지 마음의 실체는 없다.

    그러나 그렇게 일체 모든 마음도, 물질도, 업도
    수도 없이 내고 들이지만
    그것을 내고 들이는 본 바탕은 허공과도 같은 한성품이요,
    여래일 뿐이다.
    그러니 어찌 여래가 모든 중생의 갖가지 마음을 모를 수 있겠는가.

    바다가 물결을 모를 수는 없다.
    물결은 제각기 인연따라 다 다르지만
    결국 물결 또한 바다의 한 모습일 뿐인 것과 같다.
    물결은 수도 없이 많은 인연을 만나
    수도 없이 다양한 물결의 모습을 만들어내지만
    그 물결의 바탕은 바다이지 별도로 물결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별도로 물결의 성품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물결의 성품은 바다일 뿐이다.
    물결은 실체가 아니다.
    다만 물결이라 이름 지었을 뿐, 그 근본은 바다다.
    그러니 어찌 바다가 물결을 알지 못하겠는가.


    그 까닭은 수보리야,
    과거의 마음도 가히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가히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가히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 마음은 마음이 아니라
    그 이름이 마음일 뿐이라고 했다.
    마음은 그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모두가 꿈과 같고 환영과 같으며 그림자와 같고 물거품과 같은 것이다.

    그 까닭은 바로 과거의 마음도 가히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가히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지만
    단 한 번도 과거의 마음을 쓰면서 살아온 적이 없고,
    또한 미래의 마음을 쓰면서 살아 온 적도 없다.
    오직 우리가 쓸 수 있는 마음은 순간 순간이었을 뿐이다.

    즉 과거라고 생각하고 미래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만이 있을 뿐이지
    실제로 과거나 미래의 마음은 본 적도 직접 써본 적도 없다.
    과거에 쓴 마음도 사실 그 때는 그 순간이었지
    결코 그것이 과거의 마음이 아니었다.

    과거나 미래라고 하는 것이 본래 없다.
    다만 우리가 과거다, 미래다, 현재다 하고 이름지어 놓았을 뿐이지
    우리는 늘 순간을 살고 있었을 뿐이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시간이 흐른다는 개념을 만들어 놓고는
    우리 스스로 그 개념에 얽매여
    과거 때문에 걸려서 괴로워하고
    미래 때문에 걸려서 괴로워할 뿐인 것이지
    본디 시간이란 개념 또한 텅 비어 공할 뿐이다.

    오직 순간 순간 즉(卽)한 상황만이 있을 뿐
    우리에게 시간은 없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다.
    그건 그냥 지어놓은 이름일 뿐이다.

    과거라고 애써 이름지어 놓았지만 그 실체가 있는가.
    과거를 살아 본 적이 있는가.
    과거는 지나가지 않았다.
    과거가 내 앞에 지나갔던 그 때는 더 이상 과거가 아니다.

    우리가 과거를 살아와 지금이라는 현재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순간 순간을 살아왔을 뿐 과거를 살아온 적은 없다.
    과거는 텅 비었다. 실체가 없다.

    백 번 양보 해 과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과거는 지나갔다.
    과거의 마음은 이미 사라졌다.
    그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의 마음을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는 없다.

    과거라는 개념 자체가 말 그대로 개념이고 이름일 뿐
    실체가 없는데 어떻게 과거의 마음이 성립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말장난일 뿐이다.

    미래 또한 실체가 없다.
    미래라는 이름이 있을 뿐.
    도대체 그 누가 미래를 본 적이 있단 말인가.
    미래에 가 본 적도 미래를 살아 본 적도 없다.

    백 번 양보해 아마도 언젠가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고 한들
    그것은 언젠가 있을 예정일 뿐 현존인 것은 아니다.
    예정이라는 것은 꿈이라는 말이고 환영이라는 말이며
    물거품이란 말과 무엇이 다른가.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오지 않은 것은 말 그대로 오지 않은 것이다.
    실존이 아니다.
    그리고 사실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미래가 오는 순간은 이미 그것은 미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 내일이 있을 지 없을 지 그걸 어찌 알겠는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나를 살게 한 것은 오직 지금 이 순간이었지
    결코 과거도 미래도 아니었다.

    그렇듯 미래라는 것이 텅 빈 환상일 뿐인데,
    어디에서 미래의 마음을 찾을 것인가.
    미래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이렇듯 과거도 미래도 텅 빈 비실체적 관념일 뿐,
    다만 이름일 뿐이다.
    그러니 과거의 마음도 미래의 마음도 없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떠한가.
    우리는 과거나 미래를 살 수 없고
    오직 순간의 현재를 살 뿐이니 현재의 마음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현재의 마음이 무엇인가.
    현재의 마음은 순간 순간 인연따라 상황따라 조건따라
    찰나로 생했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찰나로 멸하는 것일 뿐이다.

    마음이 저 혼자 실체가 있어 만들고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다.
    현재라는 찰나 또한 마음은 없다.
    본 바탕은 오직 무심(無心)이다.
    본래 아무것도 없는 바탕에 인연의 바람이 한바탕 휘몰아치면
    인연에 따라 마음이 잠시 움직일 뿐이다.

    자 이 사람의 일상을 보라.
    아침에 동이 틈과 동시에 자연스레 일어나
    자연스럽게 씻고 밥 먹고 출근을 한다.
    그 때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만 해가 뜨니 내 눈도 떠 졌고 눈이 떠 지니 일어나 씻었으며
    배가 출출하니 밥을 먹었을 뿐이다.

    그건 애써 억지로 마음을 찍어 눌러 한 행위가 아니다.
    다만 무심에서 무위(無爲)로 한 것일 뿐이다.
    자연의 이치대로, 자연스럽게 함이 없이 한 것이다.
    그런데 출근을 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차를 몰고 출근을 하는데 앞에 차가 끼어드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안에서 화가 치민다.
    불같이 마음이 일기 시작한다.
    화나는 마음으로 욕도 하고 싸움도 건다.
    분한 마음을 잡을 수 없다. 출근 해서도 마찬가지다.

    쌓인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괴로운 마음이 생겨난다.
    그로인해 하루 종일 기분이 상하고 답답하다.
    신경이 곤두서고 예민해진다.

    그러다가 또다시 직장 상사에게 칭찬을 받고
    일에 대한 포상을 받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진심은 사라지고
    즐거운 마음이 생겨난다.
    진심은 더 이상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리고 이제 남은 마음은 행복감이다.

    그러다가 또 다른 상황을 만나면
    그 상황에 따라 괴롭고 즐겁고, 외롭고 들뜨고,
    수도 없는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진다.

    우리 마음이 이와 같지 않은가.
    일상에서는 다만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일반적일 때, 별 일이 없을 때 우리 마음은 없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본래 마음이고 본성이다.

    본래 우리의 최초는
    텅 빈 무심이었고 무위였으며 무작(無作)이고 무주(無住)였다.
    그러나 조건이 생겨날 때 자연스럽게 우리 마음도 함께 일어난다.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독자적이지 않고 조건적이다.

    평상심은 조건과 상황을 만나면
    그 상황에 따라 온갖 마음을 만들어 낸다.
    문제는 마음이 아니라 조건이고 상황이다.
    마음 안에서 스스로 온갖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조건과 상황에 따라 잠깐 그 상황에 맞는 마음을 만들어 내는 것일 뿐이다.

    그렇듯 마음엔 실체가 없다.
    현재에 일어나는 이 마음 조차 고정된 실체가 없는
    상황과 조건의 그림자일 뿐이다.
    그 상황이 지나고 나면 그 마음도 사라지고,
    다음 상황이 올 때 또 다른 마음이 생겨난다.

    그렇게 조건에 따라, 인연 따라 만들어졌다 사라지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어디에서 현재의 마음을 찾겠는가.
    그 마음은 실체가 아니다.
    환영처럼, 꿈처럼, 물거품처럼 파도쳤다가 사라져갈 뿐인 것이다.

    그러니 그 어떤 마음에도 집착할 것이 없다.
    과거의 마음에도 현재의 마음에도 미래의 마음에도 집착할 것이 없다.
    마음이 없는데 어디에 집착할 것인가.
    집착할 주체도 없고 집착의 대상도 없다.

    일으킬 마음도 없고 집착할 마음도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 마음을 일으켜 마음에 집착한다.
    그러니 우리가 괴롭다, 혹은 즐겁다, 외롭다, 슬프다 하는
    그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

    또한 그런 마음에 스스로 얽매여 꼼짝달싹 못하고 있는 모습은
    또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과거에 이미 지나간 일을 가지고 지금까지 붙잡고서는
    그 과거의 마음에 얽매이고 집착하며 괴로워하는 일이 얼마나 공허한 일인가.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먼저 분별하고 계획하고 상상하고 추측하면서
    거기에 울고 웃는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또한 현재에 주변 상황에 따라 실체없이
    찰나생 찰나멸하는 마음에 휘둘리는 것은 또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이 모두가 마음 없음, 무심의 도리를 어기는 데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이 모두가 과거심 불가득 현재심 불가득 미래심 불가득이라는
    금강경의 이치에 어두운 데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공연히 마음을 스스로 만들어 내어,
    공연히 스스로 그 마음에 빠지고 집착하며,
    또한 공연히 그 마음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다가
    그 마음이 다하면 아쉬워하고 서글퍼하는
    이런 어리석고도 공허한 일들이 우리 삶에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아니 일어나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삶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그러니 우리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금강경에서는 바로 그 점을 올바로 볼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마음이 만들어 낸 모든 것은 다 개시허망일 뿐이며,
    마음 그 자체도 없다.
    오직 무심만이 이 허공같은 세상에서 환히 빛을 비추고 있을 뿐이다.

    마음 없음. 무심의 이 도리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무심하게 모든 일을 다 하면서도
    무심하여 걸림 없을 수 있어야 한다.

    본래 없던 마음을 애써 만들어내어
    그 만들어 낸 것에 한껏 휘둘리다가
    수행을 통해 그 마음을 없애고 비워야 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무심이었음을 보면 된다.

    그래서 옛 스승들은 닦을 것이 없다고 했다.
    본래불이라고 했다.
    깨닫고자 하거든 공연히 수행하고 마음을 닦고자 할 것이 아니라
    본래 마음 없는 도리를 알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까닭은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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