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조고각하!(照顧脚下·네 발밑을 살피라)
    宗敎 단상 2012. 1. 4. 17:31

     

     

    ‘용의 해’가 밝았다. 용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꿈에라도 보고파 하는 희망의 상징이다. 이 신비의 존재를 출세간에선 ‘마음’으로 묘사했다. 형체도 빛깔도 볼 수 없는 마음이 세상의 길흉화복과 극락·지옥을 만들어내니 그런 것이다. 또 세속에선 용을 ‘제왕’의 상징으로 삼았다. 세간에서도 마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고 했으니 출세간의 묘사와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없지 않다.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해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지도자들이 선출되는 해다. 잠룡들이 여기저기서 백성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나서는 해다. 그러면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바로잡아,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새해가 밝은 다음날인 지난 2일 소백산 속으로 출세간의 용을 찾아 떠났다. 충북 단양 소백산 골짜기 속 구인사. ‘대한불교 천태종’ 총본산이다. 산골 초가집 한채로 시작해 1966년 종단이 설립된 지 40여년 만에 신도 200만을 이끌고 있는 대종단이다. 불교와 기독교를 통틀어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보적인 성장사다. 대부분의 신생교단들이 지도자가 전면에 나서 ‘얼굴’ 구실을 하는 것과 달리 천태종의 최고지도자인 종정은 지금까지 세간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천태종 중창조인 상월(1911~74) 원각대조사와 2대 종정 남대충(1925~93) 대종사에 이어 지난 1993년 법통을 이어받아 20년 가까이 종단의 명실상부한 ‘법주’(法主)로서 가톨릭의 교황과 같은 실권을 행사했다. 그런데도 세간의 언론에는 단 한차례도 자신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불교계의 대표적인 ‘신비’였다. 그러니 어찌 설레지 않을 것인가.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첫차에 올라 달린 지 3시간. 연잎 같은 봉우리들이 둘러싼 좁은 협곡에 마치 경복궁을 옮겨놓은 듯하다. 아래선 시야가 트이지 않은 골짜기여서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그 자태가 드러난다.
    열흘 전 ‘상월 원각 대조사 탄신 100돌’ 법회를 2만5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마쳤고, 바로 전날엔 1500명이 무려 한달간 밤을 세우며 용맹정진한 동안거를 끝낸 뒤다. 그런데도 한겨울 산사엔 인파가 적지 않다.

     

    누각들 앞에 빼곡히 들어찬 된장독, 장독들이 살림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매년 11월이면 배추 3만포기와 무 6t씩으로 지상 최대의 김장 풍경을 연출하는 곳이다. 기도객이 없을 때도 500여명이 상주하는 도량이다. 기도객까지 오면 수천명에서 수만명까지 붐비니 공양간은 쉴 틈이 없다.

     

    대중들이 먹을 농작물을 가꾸는 1만여평의 농장과 이곳 공양간은 천태종 승려(비구 200여명, 비구니 250여명)라면 누구나 승려가 되기 전 3년 동안 행자로서 거쳐야하는 곳이기도 하다. 선가(禪家)의 자립 기반과 선농일치(禪農一致·선과 일이 하나)를 바로 세운 백장회해(720~814) 선사의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의 백장청규 정신이 이곳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다. 천태종 승려들은 누구나 낮에는 이렇게 일하고, 날이 어두워질 때부터 새벽 4시까지 공부하고 수행하는 주경야선(晝耕夜禪)을 해야 한다. 왜 편리한 삶을 두고 이들은 이 고초를 자처한 것일까.

     

    의문은 그들의 멘토를 알지 못하고선 풀리지 않는다. 산내에서도 외부와 차단막 노릇을 하는 굳게 닫힌 철문을 열고 들어섰다.
    천태종의 상징, 종정의 주석처인 조실(祖室)이다. 종정 김도용(69) 스님이 묵연히 앉아있다. 불과 50살에 종단의 최고어른이 된 때문일까. 완연한 노인이다. 자그마한 키의 노인은 어느 산골의 할아버지와 다름 없는 인자한 모습이다. 그런데도 찰라간에 내뿜는 안광은 사물을 뚫는 듯하다. 또 감춘 듯 숨은 손은 ‘물 한번 안 묻힌’ 귀한 손과는 거리가 멀다. 그 거친 손은 ‘일이 곧 수행’이었던 그의 삶의 징표가 아닐 수 없다.

     

    그는 34살이 되어 늦깎이로 구인사에 출가했다. 스승인 2대 종정 남대충 스님은 그를 대중들과 격리시켜 강건너에서 소를 키우며 우사에서 살게 했다. 선종의 5대 조사인 홍인이 육조 혜능의 근기를 한눈에 알아보고 대중과 격리시켜 방아간으로 보내 “방아나 찧게” 했다는 고사를 연상케 한다. 그는 소를 키우고 1만여명이 일하는 농장을 관리하면서 소처럼 일했다. 그는 밤이 되어도 자지 않은 채 장좌불와(바닥에 눕지않고 앉아서 좌선)로 밤을 지새우며 수행하는 정진력을 보였다고 한다.

     

    스승은 열반하면서 경전은 물론 책은 거의 들여다보지 않은 채 오직 소처럼 일하던 50살의 그에게 종단의 법통을 맡겼다. 고서에서나 볼 법한 전법이 현대 불가에서 현실화한 셈이다. 그 전법은 외양간과 농장과 공양간과 같은 일터야말로 그가 일심을 얻고, 생멸의 이치를 명철한 도밭이었다는 것을 천하에 보여준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무위도식하는 수행(명상)제일주의자나 학문적 고수가 아닌 ‘일꾼’에게 이어진 법통은 ‘생활이 즉 불법(佛法)’이며, 인간이 즉 부처’요, ‘사회가 즉 승가(僧家)’가 되게 하겠다는 상월 원각 대조사의 새불교운동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방에 들어선 이후 도용 스님은 기자가 올린 두권의 저작을 살펴볼 뿐이다. 20여분의 침묵이 지났을까.
    “부처가 왔고, 천태 지자대사(1400여년전 수나라 때 천태종 개창조)와 대각국사 의천(900여년전 고려 천태종 개창조) 등 수많은 조사들이 왔는데, 왜 또 상월 스님이 왔는가?”

     

    소백산 산골에 초가삼간 하나로 ‘새 불교’를 연 ‘상월 원각 대조사의 오신 뜻’을 묻는 첫 질문에 스님은 ‘인연’을 들고 나왔다.
    천태종의 소의경전(의지하는 경전)인 <법화경>에서 부처는 사리불에게 “부처는 ‘일대사(하나의 큰 일) 인연’을 위해 왔다”고 했다. 중생은 죽기가 두려워 살며 살기 위해서 일을 하지만, 부처는 ‘깨달아 중생을 구제해 자유와 행복을 주게 하려는 분명한 하나의 목적’을 위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용 스님의 인연법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남녀의 만남만으로 생명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육신을 받아 나고, 자식을 낳는 것 모두 인연 없이 이뤄지지 않는다. 인연들의 소중함을 알라.”

     

    옛 불교는 출세간을 취하고, 세간놀음은 버려야할 것으로만 일렀다. 하지만 그에 이르러서는 진속불이(眞俗不二·진리의 세계와 세속의 일이 둘이 아님)다. 지고한 일대사인연뿐 아니라 세속 인간들의 만남 또한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눈에 보이는 인연만을 말하지 않는다.

     

    “보이는 대로만 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육안이 아닌 심안(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줄 알아야 비로소 실상을 볼 수 있다.”

     

    뒷방 늙은이처럼 앉아있으면서도 심안과 혜안으로 지난 20년간 천태종을 대종단으로 이끌어온 그다. 그렇기에 그가 스쳐 지나가듯 던진 한마디도 제자들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힌다. 총무원장 대행 무원 스님은 어느날 종정 스님에게 “마음에 원래 상(相)이 있나. 공연히 없는 ‘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라는 말을 듣고 뼈에 새겼다.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시비심을 넘어서 내 마음의 편견과 주관과 관념을 내가 만든 상일 뿐이라는 수행심으로 돌리는 경책이 아닐 수 없다.

     

    도용 스님은 특히 ‘정심(正心·바른 마음)’을 강조했다. 미혹한 번뇌망상에 사로잡혀 지옥의 마음을 만드는 게 사심(邪心·삿된 마음)이라면 청정한 본심을 잃지 않음이 정심일 터다. 천태종 신자들이 밤을 세워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부르며 수행정진하는 것도, 농장과 공양간에서 일심으로 일하는 것도 청정한 정심을 얻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정심을 세워 실상을 바로볼 수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욕심에 사로잡혀 정심을 잃게 되면 (사물도 상황도) 바로볼 수 없게 된다.”

    그는 종종 “세상에 욕심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며 “남 욕심 탓하지 말고 제 욕심이나 잘 놓아라”는 말을 들려주곤 한다. 뭔가를 알았거나 깨달았다고 해서 거기서 그쳐선 안된다는 것도 그의 주요 경책 중 하나다. 중생과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중생이 깨치면 부처요, 부처가 미혹하면 중생이라는 사실을 잊지 못하게 매순간 죽비를 내리치는 것이다. 그의 최후의 한방은 ‘영원히 사는 욕망’과는 팔만사천리 떨어져 있다. ‘일념(한생각)이 즉 영겁(영원)’이고, 극락과 지옥, 부처와 중생이 다만 한 생각 가운데 있다고 했던가.

    “한 순간만을 살아라!”

    눈 쌓인 소백산을 내려서니 도처가 빙판길이다. 어찌 살얼음이 이곳뿐이랴. 어찌 세상의 위험을 피하고, 세상을 구제하랴. 한 수행자가 선사에게 ‘달마가 온 뜻’을 물었다. 그러자 선사가 답했다. “조고각하!(照顧脚下·네 발밑을 살피라)”
    경사진 구인사 길을 걸어 내려올 때는 발 밑을 잘 살필 일이다.

     

     단양 구인사/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