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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독심(三毒心)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일日念苾 2011. 11. 30. 07:18
내 것이라고 집착하는 마음이
갖가지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이 된다.
온갖 것에 대해 취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훗날 마음이 편안하여 마침내 근심이 없어진다.
화엄경(華嚴經)
자기 마음에 드는 것에
집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
이것은 탐심을 끊어버리기 위함이다.
자기 마음에 거슬리는 것에
성내지 않아야 할 것이니
이것은 진심을 없애기 위함이다.
어리석은 말에
집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
이것은 치심을 끊기 위함이다.
수행(修行)은 집착하지 않고
동요하지 않는 지혜의 연마이다.
잡아함경(雜阿含經)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독이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것이다.
이는 모두 ‘나’ 에 대한 집착에서 오는 것이니,
내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
탐욕을 끊는 공부이고,
내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성냄을 끊는 공부이며,
실체적인 어떤 ‘나’ 가 있다는 생각을 비우는 것이
어리석음을 끊는 공부가 되는 것이다.
이같은 탐진치(貪瞋痴)의 뿌리는
한마디로 아상(我相), 아집(我執)에 있다.
‘나’ 라는 상에 집착(執着)하기 때문에
‘내 것이다’ 라는 소유욕(所有慾)이 일어나고,
나의 소유물(所有物)이 없으면 곧 나도 없다는 착각(錯覺)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처럼 내가 마음에 드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집착과 소유욕(所有慾)을 버리는 것이
탐심(貪心)의 뿌리를 뽑는 첫 번째 수행(修行)이다.
두 번째로 ‘내가 옳다’ 는 생각에 집착(執着)하므로
내 생각과 어긋나는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화를 내게 된다.
내가 옳다는 것은 너는 틀리다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모든 다툼과 성냄의 씨앗이다.
사실 그 어떤 생각도 전적으로 옳거나 그를 수 없다.
다만 서로 다를 뿐이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이 내 생각과 다르다고 화를 낼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주는 것
이것이 진심의 뿌리를 뽑는 두 번째 수행(執着)이다.
그리고 셋째로 이 모든 뿌리에 있는 생각인
‘내가 있다’ 고 하는 착각(錯覺)이 바로 어리석음 곧 치심(侈心)이다.
나는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인연 따라 생겨난 비실체적이고 연기적인 존재임을 바로 알고
나에게 집착(執着)하지 않는 것이
치심(侈心)의 뿌리를 뽑는 세 번째 수행(執着)이다.
수행(修行)이란 이렇듯
‘나’ 에 집착(執着)하지 않고 동요하지 않는 지혜(智慧)를 연마(練磨)하여
탐진치 삼독심(三毒心)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일이다.'日念苾'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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