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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도 스승이다.
고통은 분노를 낳고,분노는 집착을 낳고,
집착은 싸움을 낳습니다.
고통, 분노, 집착, 싸움은 모두 욕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여 욕심으로 오는 집착이나 분노는 눈과 귀 생각과 지혜를 마비시키고 이성을 잃게 하여
결국 파멸로써 종지부를 찍게 합니다.
하여 고통에는 집착과 분노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고통을 무조건 내려놓거나 삭제하려 애쓰지 마십시오. 고통을 내려놓거나,
무조건 비워버린 삭제는 웬만한 무심수행의 경지가 아니고는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삶에 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고통에는 크건 작건, 네 것이건 내 것이건 100% 서로의 잘못이 있습니다.
고통에는 내 탓보다, 네 탓이 뇌에 각인되어 있기가 십상입니다.
고통은, 같은 고통이 재발되면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고통의 재발은 몇 배의 분노나 집착을 불러들여 자신과 상대를 파멸로 몰아갑니다.
하여 고통을 비우기보다, 고통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고통을 돌아보면 욕심으로 비롯된 잘못이 보일 것입니다.
잘못을 살펴볼 때 네 탓을 보지 말고 내 탓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상대의 잘못을 먼저 살피면 가라앉힌 분노가 다시 일어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잘못을 스승으로 삼아야할 것입니다.
스승이란, 상대를 스승으로 삼으라함이 아닙니다.
잘못과 잘못을 스승으로 섬기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은 자신과 양심의 대화입니다.
내안의 양심은 자신이기도 하지만 상대가 되어보는 또 다른 자신입니다.
함부로 행동이나 말을 했을 때, 내가 상대라면 나는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여 양심은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대화하는 관심법이 되겠지요.
상대의 입장을 살피는 양심은 또 다른 나요,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기도 합니다.
나를 살펴 잘못을 깨달았다면 스승의 자리인 양심에 안주하십시오.
내안에서 소통한 양심은 말벗이며 신의 바람인 마음이기도 합니다.
내 잘못이 크면 보상이나 사과를 하면 되는 것이고,
상대의 잘못이 크면 상대를 불쌍히 여기면 되는 것입니다.
신께서 주신 양심으로 성숙을 얻었으니 신의 가르침에 감사함이 도리겠지요.
감사나 상대를 불쌍히 보는 마음은 분노나 집착을 자연적으로 소멸시킵니다.
감사와 불쌍히 봄은, 분노나 집착에 해독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불쌍히 여긴다함은 상대에게 업이 있다는 뜻이니 충분히 생각하여 하루나 이틀이 지난 후
소통하여 이르되, 행여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다 해도 이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내 인생은 내 인생이요, 그의 인생은 그의 인생입니다.
강요하여 비운 업은 자존심만 상하게 할 뿐, 그대의 후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소통이나 스승으로서는 한번이면 족합니다.
더 이상은 자만이요, 상대의 자존심을 죽이려는 교만일 뿐입니다.
하여 불쌍히 여김도 그대로 내려놓아야 다툼이 없는 법입니다.
당신이 진정 아끼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말벗으로 돌아올 것입니다.'♥일상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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