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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도중 망념은, 시장길을 통과해 절에 가는 것과 같아...
    법륜스님 즉문즉설 2011. 10. 24. 06:40

     

    ▒ 문
    저는 입으로는 열심히 기도를 하는데, 머리 속은 다른 생각들로 가득합니다.
    그래도 기도를 계속 해야 되는지 궁금합니다.

     

    ▒ 답

    우리가 참선을 하든, 기도를 하든, 다른 일을 하든.. 온갖 망상들이 떠오르죠?
    안 그런 사람, 손 들어 보세요? 아무도 없죠? 이건 매우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밥 안 먹으면 배고프듯이, 기도할 때 망념이 떠오르는 건 정상적 현상에 속합니다.
    우리의 의식 구조가 그렇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기를 바란다면, 이건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어떤 시장을 통과해서.. 저 건너편 절에 기도를 하러 간다고 가정해 봅시다.
    시장을 지나가려면 주위에 이것저것 볼 게 많죠?
    절에 가는 게 목적이지만 이것저것 좋아보이는 것 기웃대는 게 나쁜 거예요 정상적인 거예요? 정상적인 거죠?
    또 어떤 점포에선 상인들이 나와서 소매를 잡아 끌면서 들어와 보라고 호객행위 해요 안 해요? 하죠?
    그 사람들 나쁜 사람이라서 그래요 자기 일이라서 그래요? 자기 일이라서 그러죠?


    내가 절에 간다고 나와가지고는 좋아보인다고 해서 첫 번째 집에 가서 1시간, 두 번째 집에 가서 1시간..
    또 세 번째 집에 가서 1시간씩 들어앉아 있으면, 절에 간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좋아보여도 그냥 가야 되고, 팔을 잡아 끌어도 그냥 가야 되겠죠?
    마찬가지로.. 망념이 일어나는 건, 상인들이 호객행위를 한다든지,
    내가 물건을 보고 견물생심하는 것과 똑같은 겁니다. 그건 그냥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거기에 내가 끌려가지만 않으면 됩니다.


    기도할 때 망상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내가 절에 갈 땐 호객행위도 하지 말고, 보면 내 마음이 흔들리니깐 물건도 다 치우고
    내가 절에 가는 날은 시장 점포들 다 문 닫고 있으라는 거와 같습니다.  
    그런 점포들 시장길을 통과해서 절에 가는 것처럼
    망념들을 통과해서 수행정진 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생각에 끄달려서 공상에 공상을 거듭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호객행위를 해도 그들의 일이고, 물건이 아무리 좋아도 그들 일이지, 나랑은 관계 없는 일인 것처럼
    망념이 일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 끌려가서 같이 놀지만 않으면 됩니다.
    물건을 치우라고 시비할 필요도 없고, 그것들은 그대로 두고.. 나는 내 갈 길을 갈 뿐입니다.
    그들을 나무랄 필요도 없고, 그들을 좋아할 필요도 없습니다.


    소매를 당기면서 호객행위를 하다가도 계속 내 갈 길을 가면
    그들이 손을 놓습니까 아니면 목을 잡고 매달립니까? 놓아줍니다.
    어떤 가게에서 잡다가 놓아줘도 다음 가게에서 또 잡아당기고, 또 다음 가게에서 잡아당겨도
    내 갈 길이 분명한 사람은 구애받음이 없습니다.
    이렇게 공부하는 게 수행입니다.


    그런데.. 절에 갈 생각이 간절한 사람은 아무리 잡아도 내 갈 길이 바쁩니다.
    별로 간절한 생각이 없는 사람은 절에 가다가도 여기저기 들러서 놀 확률이 높습니다.
    수행할 때에도 원(願)이 분명하면 온갖 망념에 끄달릴 일이 적지만
    원(願)이 분명치 않고 그저 막연히 '기도한다..' 할 때엔 중간에서 노닥거릴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내가 물어봅니다. 천수경을 왜 치나? 염송은 왜 하나? 법화경은 왜 하나? 그냥 하면 좋다는데요..
    절에 왜 가나? 그냥 가면 좋다는데요.. 이러면 이제, 절다운 절엔 가보지도 못하는 겁니다.
    남이 장에 간다니까 그냥 따라가듯이.. 여러분이 이렇게 하니까 잘 안 되는 겁니다.


    만약 아이가 교통사고로 다친 긴박한 상황에서 기도를 한다면
    그때도 망념은 일어나겠지만, 망념하고 놀아요 절하기 바빠요? 절하기 바쁘죠.
    원이 분명하니까 집중이 잘 되는 겁니다. 그때 일어나는 망념은 문제가 안 돼요. 왜? 내 갈 길이 바쁘니까.
    그러니까 여러분, 간절함이 일어나려면 급한 일이 생겨야 하겠죠? 다급해야 한다..
    그래서 집에 불난 것처럼.. 발등에 불로 느껴져야 용맹정진이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생각으로 아무리 열심히 할래도 잘 안 됩니다. 열심히 하겠다는 건 의식의 생각이고..

    무의식에선 '아냐.. 괜찮아.. 넌 죽으려면 아직 멀었어..' 그렇게 속삭이고 있거든요.
    그래서 귀가 솔깃해서 유혹에 빠집니다. 아이고 낼 하지 뭐.. 자고 일어나서 하지 뭐..
    수행을 제대로 하려면 자기 까르마를 넘어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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