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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위일체(三位一體)인 물·불·술
    ♥일상사 2011. 9. 30. 08:56

    술자리는 유시(酉時) 지난 술시(戌時)에
     
    사람들은 술잔을 주고받는 수작(酬酢)을 통해 오랜 회포를 풀고 교분을 나누는 등 일상적인 술자리를 자주 갖지만 술에 담겨진 깊은 철학적 의미를 별반 마음에 두지 않고 마신다. 사실 필자도 뜻을 함께하는 지인이나 벗들과 어울리는 술자리를 즐겁게 여기기는 하지만 주량도 약한 편이고 술에 관한 기본지식이 거의 없는 문외한이다.
     
    水(물 수)와 酉(술병 유)를 더한 酒(술 주)는 음력 8월 한가위인 유월(酉月. 백로추분)에 빚는 술을 나타낸다. 해질 무렵 둥우리를 찾아든 새를 본뜬 西(서녘 서)에서 비롯된 것이 酉인데, 술병(西) 속에 햇곡식(一)을 넣어둔 형태로도 酉를 풀이하기도 한다. 해질 무렵의 저녁 酉時(5시~7시)는 마침 새 술을 빚는 음력 8월에 해당하며, 12지지(地支)로 열 번째에 자리한다.
     
    흥미로운 것은 유(酉) 다음의 열한 번째 지지인 술(戌)이다.

    마시는 ‘술’과 발음이 똑같기 때문인데, 하루로는 일과를 마치는 밤중(7시~9시) 때가 이르고 1년으로는 농사를 끝낸 늦가을 음력 9월이 이르러야 술을 마실 때가 되는 것이다.
     
    본래 추분(秋分) 전후의 백로(白露), 한로(寒露)의 가을철은 매끄럽고 차가우며 단단하게 열매를 맺는 金기운이 왕성한 때이다. 대개 싹이 돋고 꽃필 무렵에는 어떤 열매가 맺을지 알기 어렵지만 가을철에는 사물 본래의 진면목(眞面目)이 분명하게 드러나 실체가 노출(露出)된다. 콩 심은 데 콩 열매가 달리고 팥 심은 데 팥 열매가 달리듯이, 자성(自性)의 본래면목이 완전히 눈뜨는 진아(眞我)가 발로(發露)하는 때인 것이다. 대중들이 즐겨 마시는 술 가운데 하나인 진로(眞露)란 명칭도 맑고 깨끗한 참이슬이라는 뜻이다. 이와는 차원이 다르지만 ‘취중진담(醉中眞談)’이라는 말처럼, 술자리를 가져보면 상대방의 의중이나 성격이 대략 파악되기 마련이다.
     
    수작(酬酢)과 교역(交易)
     
    술은 제주(祭主)와 신명(神明)을 이어주는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특별하고 희귀하며 값비싼 술이야 헤아릴 수 없겠지만 아마도 신명(神明)이 강림(降臨)하는 데 필요한 제주(祭酒)가 가장 귀중한 술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음복(飮福)은 제주(祭酒)를 올리고 제사를 다 끝낸 다음 신명에게 바친 술을 돌려 마시는 풍속으로, 정성껏 예를 갖추어 신명에게 제사를 지낸데 대한 보답으로 신명이 감응(感應)하여 복을 내려줌을 말한다.
     
    술잔을 주고받는 수작(酬酢)은 주인이 손님에게 먼저 술(酬)을 권한 다음에 그 답례로 손님이 주인에게 술(酢)을 권하는 것이다. 제사는 후손이 없으면 지낼 수 없으므로 후손이 곧 제사를 주장하는 주인이 되고, 제사에 강림한 조상은 곧 초빙된 손님이 된다. 후손이 조상에게 올리는 제주(祭酒)가 ‘酬(술잔 보낼 수)’로 앞서고 조상이 후손에게 내려주는 음복(飮福)이 ‘酢(술잔 돌릴 작)’으로 뒤따르는 것에서도 주객의 선후가 나타난다. 대개 술자리 상대가 지위나 나이가 높을 경우 아래에 처한 신분으로서 상대에게 술을 올리는 것이 상례이긴 하지만 처지가 비슷한 입장이라면 상대에게 술을 사거나 술값전부를 내는 측에서 먼저 술을 권할 주인의 자격이 있다고 하겠다.
     
    대개 주역에서는 천지신명에게 길흉에 대해 묻는 것을 酬, 천지신명이 괘효를 통해 일러주는 것을 酢이라고 일컫는다. 문답(問答)에도 이렇게 수작(酬酢)과 교역(交易)이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酒에 담긴 동서양의 만남
     
    동양철학서 가운데 으뜸경전인 역경(易經. 일명 周易)에서는 이 술을 지극히 중시하고 신성시하여, 선천(현실세상)에서 후천(이상세계)으로 넘어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교역수단으로 보았다. 주역학의 종장(宗長)인 也山선사(1889~1958)는 공자가 집대성한 주역의 숨은 이치를 극진히 밝혀내어 양력과 음력을 조화한 후천시대의 새 책력인 「경원력(庚元歷)」을 만들고 오행정치학인 서경 홍범(洪範)과 음양철학인 주역을 하나로 통합하여 「홍역학(洪易學)」을 창시한 분이다.
     
    야산선사는 酒(술 주)’에 대해 “주역에서는 동서양의 모든 종교를 술에다 비유한다. 어두운 북쪽을 등지고 밝은 남쪽을 향해 서면 왼편은 해뜨는 동쪽이고 오른편은 해지는 서쪽이 되듯이, 동양은 왼편 양(陽)에, 서양은 오른편 음(陰)에 속한다. 따라서 酒 왼쪽의 ‘?(삼 수)’는 도덕과 철학을 중시하는 동양의 삼교(三敎)인 선불유(仙佛儒)를 말하며, 오른쪽의 ‘酉(술병 유)’는 물질과 과학을 중시하는 서양의 기독교를 이른다. 후천시대를 맞이하려면 술과 술병을 서로 뗄 수 없듯이 동양의 형이상적(道) 세계와 서양의 형이하적(器) 세계가 다 함께 음양조화를 이루되, 반드시 철학이 과학을 이끌고 정신이 물질을 제어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말씀하였다.
     
    유부음주(有孚飮酒)와 음주유수(飮酒濡首)
     
    천지자연의 우주법칙과 생명질서를 64괘(384효)로써 설명한 주역 마지막 괘는 화수미제(火水未濟)이다. 불(火)이 위로 타오르고 물(水)이 아래로 흘러내려 서로 만나지 못하는 미제는 미궁(未窮)·미완(未完)·미래(未來)·미결(未決)을 상징하는데, 그 미제의 마지막 효에는 “믿음을 두고 술을 마시면 허물이 없거니와(有孚于飮酒 无咎) 그 머리까지 취하게 즉 술독에 빠지도록 마시면(濡其首)  믿음을 두는데 옳은 것을 잃으리라(有孚 失是)”고 하였다. 공자는 음주유수(飮酒濡首)가 되는 까닭을 절(節)을 알지 못하기 때문임을 지적하였는데, 술을 마시더라도 적절히 조절하여 마셔야만 미덥게 일을 잘 풀어나갈 수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지구촌이 일가(一家)되는 시대를 맞이하여 다 함께 잘살려면 반목질시와 갈등편당이 없어지고 민생의 근본토대인 경제로부터 정치와 종교의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한다. 완전한 사회, 완전한 시대를 이루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난제는 그 중 종교문제이다.
     
    세상 사람들이 유불선 삼교나 기타 종교적인 믿음을 가지는 것은 술을 마시는 것에 비유된다. 적절히 술을 마시면 허물이 없지만 술독에 빠질 정도로 술을 마시게 되면 종교를 너무 맹신하여 자기 종교만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 존재까지 상실하게 된다. 술을 적당히 즐겁게 마시면서 모든 문제를 술술 잘 풀어가도록 해야지 술독에 빠지도록 마셔 정신까지 술술 풀어 가면 안 되는 것이다.

     

    삼위일체(三位一體)인 물·불·술  
     
    오행에서 가장 앞서는 것이 물불인 수화로서, 수액(水 液) 은 북방의 맑은 정(精)에 상응하고 화기(火氣)는 남방의 밝은 신(神)에 부합한다. 만물은 물에 의해 태어나서 불로 호흡하며 생활(生活)하다가 그 불기운이 다 소진(消盡)되면 본래 태어난 물로 되돌아가 그 삶을 마친다. 천지자연의 음양조화는 기본적으로 흘러내리는 물과 타오르는 불 즉 물의 ‘적심(흐름)’과 불의 ‘말림(태움)’이라는 두 작용에 의해서 신묘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한글자음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ㅋㅌㅍㅎ’의 진행순서로 볼 때에 ‘물·불·술(ㅁㅂㅅ)’은 서로 이웃하는 친한 관계이다. 과일이나 곡정(穀精) 등을 숙성하고 발효한 산물인 술은 겉은 물처럼 찬 액체이지만 속에는 더운 불이 들어있기에 물·불과 더불어 삼위일체를 이룬다. 그러므로 물·불·술의 음운계통이 또한 동일하다. 한편 늦가을(9월) 상강절후에 상승하는 戌의 시기에 음습한 북방수기(물)가 양명한 남방화기(불)를 수극화(水克火)하여 밝음이 사라짐을 나타낸 글자가‘滅(꺼질 멸, 없을 멸)’인데, 그 속에 이‘물불술(水火戌)’이 다 들어있는 것이 무척 재미있다.
     
    술(酒)에 담긴 절용(節用)의 철학
     
    천도운행은 60으로써 기본절용을 이루므로 주역 60번째 괘에 수택절(水澤節)을 두었다.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인 10干과 12支로 배합된 60간지의 법도에 따라서 달력의 용법도 60일을 기본주기로 하여, 대략 하루씩 달의 차고 비는 날수인 기영(氣盈)과 삭허(朔虛)가 발생한다.
    그런데 주역 64괘 중 술과 가장 잘 통하는 괘가 바로 이 60번째 수택절괘²)이다. 왜냐하면 술병(酉)에 담긴 물(氵)’을 뜻하는 酒라는 글자와 물이 연못 위에 적절히 들어찬 수택절(水澤節)이 합치하기 때문이다.
     
    사시오행의 이치로 볼 적에도 節은 가을(서방태금)을 지나 겨울(북방감수)이 완전히 이르러 계절변화가 끝나고 한해가 종결완료됨을 나타낸다.  마침 12지지(地支: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의 열 번째가 ‘유금(酉金)’이고 열두 번째가 ‘해수(亥水)’인데, 그 사이에 술(酒)을 마시는 시기인 술월·술시의 ‘술토(戌土)’가 들어있다.
     
    못에 물이 알맞게 차있듯이 적절히 조절하여 술을 마시면 심신이 화락(和樂)할 뿐만 아니라 상대와 친교(親交)를 맺는데 있어서도 매우 편리하다. 그러나 말이 지나치면 실수가 따르고 음식을 많이 먹으면 체하며 여색에 빠지면 건강이 상하고 술이 지나치면 정신이 혼미해지기 마련이므로 공자는 중심의 마디(매듭: 節)를 잡아 법도(잣대)를 지으라는 ‘절이제도(節以制度)’와 중정함으로써 잘 소통하게 하라는 ‘중정이통(中正以通)’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술과 사철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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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화뢰서합(火雷噬嗑 ): 봄에서 여름으로

    서합은 번갯불이 번쩍 친 후에 우레 소리가 뒤따라 합치하는 형상으로서 입 속에 든 음식물을 씹어 몸에 합하는 뜻을 담고 있다. 계절로는 목생화(木生火) 즉 싹과 줄기가 나와 잎과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때로서 목(木)의 기운이 왕성한 봄을 지나 화(火)의 기운이 왕성한 여름이 이름을 나타낸다.
     
    공자가 서합을 두고 ‘頤中有物(이중유물,입 속에 든 음식물)’이라고 하였듯이 술병 속에 약초 등의 재료를 넣고 병마개로 막아 술을 담는 것에 해당한다. 서합 괘사에도 ‘감옥을 씀이 이롭다<利用獄>’고 말씀하였다.
     
    (2) 택화혁(澤火革 ): 여름에서 가을로
    혁은 연못속에 불이 들어있는 형상으로서 솥단지에 쌀을 넣고 물을 부은 다음 불로 가열하여 밥을 하거나, 풀무질 즉 불로 쇠붙이를 녹여 주물(鑄物)한 다음 물로 냉각시켜 도구(그릇)를 새로이 만드는 뜻을 담고 있다.
     
    계절로는 화극금(火克金) 즉 부풀어 잘 익은 열매가 마침내 단단히 맺히고 여무는 때로서 화기가 극성한 삼복여름으로부터 서늘한 금기운의 가을로 급격히 바뀜을 나타낸다. 혁괘 괘사에 ‘시기가 무르익어야 미덥게 된다<已日乃孚>’고 하였듯이 술병 속의 숙성한 과실(果實)이나 곡정(穀精) 등이 마침내 발효되어 술로 바뀌는 것에 해당한다.
     
    (3) 수택절(水澤節 ): 가을에서 겨울로  
    절은 서방 金이 주장하는 가을철을 지나 밖으로 북방 水가 주장하는 겨울철이 완전히 이른 상태이다. 금생수(金生水) 즉 오곡백과를 수확하여 창고에 저장하는 시기이며, 열매곡정(金)에서 숙성·발효된 술(水)이 적절한 도수로 완성된 것에 해당한다.
     
    12시괘로 볼 적에 술(戌)은 땅위에 산이 가로막아 유순히 그치는 상인 산지박(山地剝)이므로 술의 절지(節止)와 절제(節制)에 부합한다. 그러므로 ‘剝은 나아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다<不利有攸往>’고 괘사에 말씀하였는데, 술을 알맞게 조절하여 마시면 쌓인 스트레스가 잘 풀리고 심신회복에 큰 도움을 주지만 지나치게 술을 마시면 오히려 심신건강에 큰 해로움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4) 뇌수해(雷水解 ): 겨울에서 봄으로
    해는 모체 양수 속에서 길러진 어린 생명이 마침내 태어나 우는 형상으로서 계절로는 해동(解凍) 즉 북방수기로 대표되는 한겨울이 물러가고 동방목기로 대표되는 봄기운이 밀려와 생명이 험한 데로부터 풀려나옴을 뜻한다. 겨울의 고난이 끝나고 봄의 희망이 열리듯이 그 동안의 노고를 풀고자, 겨우내 갈무리하여 저장하였던 술을 꺼내어 마시는 때이다. 解라는 글자에 쇠뿔을 단김에 빼는 뜻이 담겨있듯이 그동안 아끼고 아껴두었던 묵은 술을 꺼내어 마시는 것이다.
     
    節로 인해 解가 주어지므로 매듭을 맺은 자가 매듭을 풀어야 한다. 이것을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하는데, 마치면 곧 새로움이 있다는‘종즉유시(終則有始)’와도 통한다. 선천에서 후천으로 바뀌는 시기<節>를 알고 그 때(절)에 맞추어 모든 일들을 풀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서합은 술자리를 통하여 주흥이 일어나는 것이라면 혁은 술로 인해 심신상태가 변화가 크게 일어나는 것이고 절은 바야흐로 술자리를 그만 조절할 때가 이른 것이라면 해는 술자리를 완전히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견줄 수도 있다.
     
     
    ¹) 만물의 기본원소인 ‘수화목금토(水火木金土)’ 오행순서에 따라 생명의 탄생 또한‘액기형질체(液氣形質體: 수액-화기-목형-금질-토체)’의 다섯 단계를 거친다. 임신과정에 있어서도 태아가 부모의 정혈(수액)로 잉태되어 기혈(화기)이 흐르고 모발(목형) 골격(금질) 피부(토체)가 생기는 다섯 단계를 거친다.
     
    ²) 12지지의 방위에서 정서(正西)에 상응하는 酉는 연못과 입을 상징하는 서방(西方)의 태괘(兌卦)에 배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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