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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면적인 일요법회 시행을 천명하자
    宗敎 단상 2011. 8. 19. 06:38

     

    조계종 1년 예산이 여의도 순복음교회만도 못하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일이다. 종단 책임자는 일을 하고 싶어도 예산이 없어 일을 못한다. 그런데 한국불교가 이렇게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하겠으나, 그 하나는 대승불교의 6바라밀 중 첫째인 보시바라밀, 보시문화와 자원봉사가 정착이 되지 않은데 있다고 진단된다. 그리고 그 중요한 원인은 일요법회를 하지 않는데 있다. 부처님도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자주 모여서 법을 설하고, 듣고 함께 수행할 것을! 그런데 불교계 현실은 어떠한가?

    온 인류가 태양력을 쓰고 있고 일요집회를 열고 있는데, 한국불교는 아직도 태음력을 쓰며 일요법회를 외면하고 있다. 일상생활에 바쁜 일반인을 포교하는데 가장 역행되는 일이다.

     

       온 세상은 태양력 쓰는데 불교는 여전히 음력 고집

    기독교는 일요집회를 통해 자연스럽게 본인 수입의 1/10, 즉 십일조를 내며 선교 및 봉사를 하고 있다. 교인이라면 첫째로 십일조를 내어야 하며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자연스럽게 법보시와 재보시를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부자가 천당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지나기 보다 더 어렵다’고 하는 것은 익히 들어본 문구이다. 이렇게 되니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헌금을 많이 내는 것과 자원봉사야 말로, 신앙심을 재는 척도이고, 천당가는 티켓을 확보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불교는 어떠한가? 우리는 21세기 현대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불교도 당연히 시스템을 운영하는데는 재원이 필요하다. 스님들도 요즘은 도시에 살며 자가용을 타고 다닌다. 예전의 고행수행자의 모습은 산중에서나 만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 급속한 도시화로 변화된 모습이다. 일찍이 논객들이 말했다. 불교는 현시대에 맞는 종교개혁을 못했다고...! 그래서 타종교에 뒤지는 것이라고! 반문했다. 아니 대승불교가 불교 개혁운동이 아니었나? 아니다. 이 시대에 맞는 개혁을 말하는 것이다. 대승불교, 불교개혁운동은 이미 2천년 전 얘기 아니던가? 이제 새로운 시대에 맞는 불교철학과 경제, 윤리강령이 탄생되어야 한다.

    16세기 루터와 칼빈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종교개혁은 처음부터 환영받었던 것은 아니다. 수많은 반발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지난한 노력을 통해 사부대중적 합의와 지지를 이끌어 냄으로써, 크나큰 개혁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프론티어정신이 오늘의 최대 강국인 미국을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이런 점에서 한용운스님이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제시한 강령을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는 농경시대가 아닌, 자본주의 시대이다. 물물교환 시대가 아닌 자본 축적의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정신에 대한 대처가 부족하니 불교가 타 종교에 비해 뒤질 수 밖에 없다.(物神主義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재원이 없으니 불교적 사업을 일으킬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 아닌가? 알면서도 방법을 고민하지 않는 것은 웬말인가? 과거 이런 노력이 왜 실패하였나?

     

       재보시는 줄고 종단은 수익사업

    종단에서도 뒤늦게 수익사업이니 하면서 노력하는데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러한 재원은 일차적으로 많은 스님들이 전법의 자리에 나서고, 사부대중이 자주 만나서 법을 설하고 수행하는 자리에서, 신도들의 보시와 봉사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저 기독교를 보라! 그들에게 민족종교의 자리를 내주게 될지도 모르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대승불교의 덕목인 6바라밀의 첫째가 보시이지 않는가! 그런데 왜 재보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가? 어떠한가? 금강경을 비롯한 법화경 등 대승경전 거의가 보시를 거론하며 재보시보다는 법보시의 우월성을 말한다. 그러나, 이제는 재보시와 자원봉사를 통한 철저한 버림으로 인색함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것이 깨달음에 다가서는 첫걸음이라고, 현세에 불국토를 건설하는 기반이 됨을 가르쳐야 된다.

    단지 아득히 기원정사의 고사만을 애기하며, 길상사보살의 큰 기부만을 칭찬할 수는 없다. 그런 보시가 찬탄되어짐은 당연하나 대중적인 것이 아니다. 제도적, 대중적인 마련이 필요하다. 이 시점에서 항상 자신은 제외하고 남의 주머니만 넘겨다보는 인색한 불자는 없는 것인가? 사찰의 공동재산을 제 것인양 개인 주머니에 넣고 있는 승려는 없는 것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불교는 최상승 수행종교가 아닌가? 하등의 다른 종교를 따라할 수 없지 않는가?

    1,600년의 불교인데 타종교에 설마 밀릴까? 라고 생각하는 불자들이 많다. 다수의 많은 깨인 불자들이 솔선수범 애종심을 내어 제일 덕목바라밀인 보시바라밀을 먼저 행해야 한다. 우리는 한국불교가 뒤처지고 있음을 말로만 우려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신앙심이 약함을 통감하고 이웃종교를 본받아 보시행과 사회봉사를 통해 불교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단은 포교에 힘을 적극 실어 한글의례 실천을 좀 더 강력히 추진케하고, 도심사찰을 중심으로 일요법회를 상례화해야 하며, 사찰을 좀 더 신나는 장소로 바꾸어야 한다(일회용, 이벤트성을 말함이 아니다).

     

       스님 권력싸움에 신도는 재보시 거부

    그리고 사찰은 재정을 공개하고 운영에 사부대중을 적극 참여시켜야 한다. 미래불교에 대한 철저한 플랜과 재원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불법이라도 뒤처지게 마련이다.

    한편, 불자들이 재보시하지 않는데는 또 다른 원인이 있음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최우선은 종단적인 안정이다. 앞서 초유의 몇 차례의 종단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신도들이 개종을 하고 불자들이 등을 돌렸음을 잘 알고 있다. ‘중 벼슬 닭 벼슬 만도 못하다’는 말은 이제 옛 말이 되어 버렸고, ‘주지직을 주니 몰래 야밤에 도주했다’는 이야기도 이제는 허망한 고사가 되어버렸다. 몇 스님들의 권력싸움이 다분 잿밥싸움인 것은 세인이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러하니 누가 보시를 한단 말인가?

    언론에 비친 몇 본사(本寺)들의 거액의 기부금 쾌척에는 항상 주지스님의 얼굴만 보이고, 재가신도들을 앞에 세우는 모습은 없다. 분명 재가 신도들의 재보시가 쌓인 것을 내놓는 것에도 불구하고 상을 내는 것은 스님들이다. 무주상보시를 배우고 있는 재가자는 의아한 얼굴이며, 스님들이 엄청 부자인줄로 착각한다. 그리고 왜 종단에서 열악한 사찰들을 지원해 주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사찰 재정 운영도, 재원 출연도 적극 사부대중을 참여시켜야 함은 빼놓아서는 안될 사항이다.

     

       재가자 무주상보시금 주지스님이 생색내기

    또한 적극적인 봉사정신을 이끌어내야 한다. 사찰은 조직면에서도 타 종교에 훨씬 뒤지고 있다.

    불교는 한가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며, 게으른(?)사람들이 갖는 종교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 가슴으로, 뜨거운 정열로 실행하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수동적이며, 조직적인 것을 싫어하는 집단인 듯하다. 젊은 층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기독교인들은 자비(自費)로 저 오지에 자원봉사를 나가며, 여름휴가를 맞이하여 가르침을 전하겠다고 세계지도를 갖고 다니고 있지 않는가? 이차돈의 순교정신을 되찾자고 부르짖는 이유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찰이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에 드러나는 국가보조금 신청은 불교 전체의 부로 비쳐지는 것은 어쩔 것인가? 특정 국가지원사업에, 또는 국가 문화재의 보존에 필요한 최소의 보조금 조차도 불교의 부(富)로 트집잡는 저들을 무지라고 언제까지 물리칠 수 있겠는가? 재정 자립도가 이렇게 약해서야 어찌 한국불교의 미래를 기약할 것인가? 옛적 인도성지순례를 나섰을 때 붓다가야를 힌두교인들이 지키고 있음을 보고 아연 놀랐던 일이, 한국에서도 불교문화유산을 30년 뒤, 1세기 뒤에 이교도가 지키는 일이 생겨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부처님의 원음을 가지고 법을 설하고, 법을 바탕으로 현대에 맞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많은 방편이 불교를 더욱 어렵게 하고, 번쇄하게 하며, 재식불교는 스님들 조차 어렵게 하고 있다. 개혁해야 할 것이라면 전통과 관습을 과감히 벗어던져야 한다. 제도 개혁을 통한 자발적인 보시와 봉사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웃 종교를 보라. 그들은 십일조, 감사헌금 등을 아무런 방편없이 하고, 봉사 및 해외전도에 적극 나서고 있지 않은가?

    거듭 불교집안 내 부조리하고 구태의연한 제도부터 검토해 보아야 한다. 밑바닥부터 철저한 드러냄과 현실에 맞는, 시대를 선도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불교로 탈바꿈해야 한다. 물론 이 일은 공의와 함께 종단의 최고의 브레인들이 적극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부조리·구태부터 재검토 해야

    요즈음, 템플스테이 등, 사찰이 갖고 있는 장점을 살려 포교에 적극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템플스테이를 피부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불교의 많은 장점들이 일요법회를 통하여 계층별 프로그램에 활용될 수 있도록 연구되어져야 한다. 이것은 물론 어린이 법회, 청소년, 청장년 법회 등 젊은층을 겨냥한 프로그램을 말한다.자주 모이고, 많은 이들이 모일 수 있도록 사찰문을 개방하고 포교에 적극 힘을 기울이고, 보시와 봉사활동을 독려해야 한다. 이러한 힘을 불교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복지분야에 보탤 수 있을 것이다.

    종단의 3대 역점사업은 역경, 포교, 인재양성이다. 모두 불법 진흥을 위한 구체적 내용들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사업들이 제대로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탄력적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아니면 어디가 막혀있는가? 그 원인은 어디에 있나? 면밀히 검토하고 고쳐나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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