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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기야말로 자신의 주인 -월호스님
    ◑解憂所 2009. 6. 18. 06:32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부처님의 뜻이라거나, 신의 뜻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리고 부처님이나 신을 주인으로 섬기지도 않는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주인은 자신일 뿐이다.

     

      자기야말로 자신의 주인 

      어떤 주인이 따로 있으랴?

      자기를 잘 다룰 때,

      얻기 힘든 주인을 얻은 것이다.

     

    부처님은 위대한 스승이자, 후원자일 뿐이다.

    스승이나 후원자는 가르치고 도와줄 수는 있지만 나를 대신할 수는 없다.

    아무도 내 대신 밥먹어주고 대신 잠자줄 수는 없는 법이다.

    심지어 부모 자식 간이라 해도 대신 행복해하고 대신 불행해할 수 없다.

    이것은 신이라 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를 제외한 외부적 존재는 그 아무리 가깝거나 위대한 존재라 할지라도

    나를 도와줄 수 있을 뿐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야말로 불교의 인연설과 잘 맞아떨어지는 속담이다.

    불교에서는 인연설을 주장한다.

       인(因) × 연(緣) = 과(果)

    여기서의 인은 직접적 원인이며, 연은 간접적 원인이다.

    인은 주관적 요인이며, 연은 객관적 요인이다.

    예컨대 인은 나 자신의 마음가짐이나 노력을 말한다.

    은 주변의 상황이나 배경, 불보살님의 가피 등을 말한다.


    예컨대, 현재 나 자신의 노력이 100만큼이고,

    주변상황도 100만큼 충실하다면, 결과는 100×100=10,000점이 된다.

    나 자신의 노력이 100만큼이라 해도 상황이

    배경이 50만큼밖에 안된다면 100×50=5,000점밖에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주변조건이 100만큼이라 해도 나 자신의 노력이 50만큼이라면

    이것도 50×100=5,000점이 된다.


    박수로 예를 들어보자. 왼손은 인, 오른손은 연이라고 하자.

    왼손과 오른손을 모두 활짝 펴서 박수를 치면 온전한 박수소리가 크게 난다.

    하지만 왼손이나 오른손 한쪽만이라고 손바닥의 일부만을 사용한다면

    박수소리는 작아진다.

    충실한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충실한 결과를 기대하기위해서는 인과 연이 모두 충실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연은 사실상 과거의 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거의 나의 마음가짐이나 노력 등에 의해서

    현재의 주변상황이나 배경 등이 결정된 것이다.

     

    결국 현재의 연이 마음에 맞지 않는다면,

    그래서 미래에는 다른 연을 만나고 싶다면,

    무엇보다 현재의 인을 바꾸어야 한다.

    현재의 연을 탓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나는 내가 창조합니다.

       지금 이 모습도 나의 작품일 뿐!


    부처님 작품이라면 부처님이 고칠 수 있으며,

    신의 작품이라고 하면 신이 고칠 수 있다. 이럴 경우 나는 속수무책이다.

    그저 관대한 처분만을 기다리며 눈치나 보고 있을 수 밖에.

    결국 구걸형 기도나 할 수 밖에 없다.

     

    부자가 되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해주세요.’

    ‘시험에 합격하게 해주세요.’ ‘재수가 좋게 해주세요.’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해달라고’만 빌어대니 구걸형 기도인 것이다.

    잘 되었건 못 되었건 일단 내 작품이라고 인정해야 내가 고칠 수 있다.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발원형 기도를 할 수 있다.


    적당히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마음 닦겠습니다.’

    ‘열심히 벌어서 알뜰히 쓰겠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실력발휘 하겠습니다.’

    ‘나는 억세게 재수 좋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스스로 ‘하겠다’는 다짐을 해나가면서

    ‘지켜보아 주시고, 도와주십시오’라고 하는 것이야말로

    인연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수소리는 분명 내 작품이다.

    부처님이 친 것도 아니요, 신이 만든 것이 아니다.

    내 스스로 왼손바닥과 오른손바닥을 부딪혀 소리를 낸 것이다.

    작게 치면 작게 나고, 크게 치면 크게 난다.

    소리는 왼손바닥과 오른손바닥이 만나서 생겨난다.

    또한 손바닥이 떨어지면 사라진다.

    인과 연이 만나서 과가 이루어지고, 인과 연이 다하면 과도 사라진다.

     

    결국 소리 그 자체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인연이 닿으면 홀연히 생겨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다.

    영원히 있는 것도 아니며, 영원히 없는 것도 아니다.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다, 이것을 중도(中道)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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