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은 시대별로 재료가 달라졌고 양식 또한 변화했다. 그 가운데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소재 중 하나가 목불(木佛)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불은 12세기말에서 13세기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현재 10여 구 정도가 존재한다.
현재 불교계와 불상을 연구하는 학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불로 공식 인정하는 불상은 1199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안동 봉정사 관음보살좌상. 전나무를 소재로 조성된 106cm의 등신대 불상으로, 대웅전 현판 기록에 따라 현존 목불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경상북도가 도지정문화재에서 국가지정문화재로의 승격을 추진 중이다.
이어 서산 개심사 목조아미타불좌상이 1280년 보수한 기록이 남아 있어 그 뒤를 잇고 있다. 개심사 아미타불은 1280년 보수 기록이 존재함에 따라 제작연대는 이보다 앞설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정확한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다. 목불로 눈길을 끌고 있는 또 하 나의 불상은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이다. 이 불상은 지난해 문화재청과 조계종 문화유산발굴조사단의 불교문화재 일제조사 과정에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귀중한 복장유물이 다량으로 발견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개심사-해인사 불상은 이견
보광사 불상에서 발견된 복장유물은 1007년 개성 총지사에서 간행한 보협인다라니경을 비롯해 정원신역화엄경소 권 6, 범자다라니 등 고려시대 인쇄기술을 보여주는 자료들이어서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전문가들은 보광사 불상이 봉정사 보살좌상과 모든 면에서 유사하지만, 양감이 강조된 이국적인 얼굴형태나 당당한 신체와 간략화 된 무릎 주름 등은 개심사 불상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며 봉정사 불상과 개심사 불상의 제작연대 중간 시기에 조성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인사 비로자나불도 관심을 끌고 있는 목불 중 하나다. 해인사 측이 복장에서 ‘중화3년’이라고 쓴 붓글씨를 발견했다고 밝히면서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다. 이것이 사실일 경우 서기 883년에 제작된 것이어서 가장 오래된 목불로 등극하게 된다. 해인사에서 밝힌 붓글씨는 나무판에 적은 것을 붙여놓았고, 불상에 고정시키기 위해 철 못을 네 개 박았다.
그러나 아직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일부는 ‘1100여 년이 넘은 글씨치고는 너무 선명하다’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고, 또 한편에서는 ‘복장유물을 넣은 곳을 나무마개로 막은 뒤 옻칠을 하고 도금해서 잘 밀봉하면 내부 유물이나 글씨는 잘 남을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우리나라에서 불상 관련 최고의 전문가로 꼽히는 김 모 교수는 자신의 입장이 분명하게 있다 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겠다”며 더 이상의 언급을 꺼렸다.
불상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을 경우 확실한 제작연대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앞으로도 많은 논란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목불은 표면에 금칠을 해 화려하게 장식하고 금칠이 벗겨지면 다시 개금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눈으로는 목불인지 조차 가려내기 어려운 게 현 실이다.
철불 최고는 실상사 여래좌상
불상의 또 다른 재료인 철을 원료로 조성한 철불은 현존 최고 불상과 관련 비교적 이견이 없는 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철불은 실상사 철제여래좌상(보물 제41호)이다. 실상사 창건 연대와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이 불상의 조성연대를 서기 830년에서 850년 사이로 보고 있다.
조성연대가 명확하게 밝혀진 철불 중 가장 오래된 불상은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국보 제117호)로, 불상의 왼팔 뒷면에 신라 헌안왕 2년에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어 858년에 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강원 철원군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국보 제63호)이 865년 제작된 불상이다. 기존에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이 가장 오래된 철불로 알려졌으나, 실상사 철제여래좌상이 양식 면에서 이보다 앞선 것으로 평가받으면서 가장 오래된 철불이라는 데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동국대 문명대 교수는 “불상의 양식면에서 장흥 보림사 불상보다 실상사 불상이 앞선 시기에 조성된 것”이라며 현존 최고의 철불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란이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성 연대를 정확하게 밝히기 어렵기는 마애불도 마찬가지. 일반적으로 서산마애삼존불(국보 84호)이 백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태안마애삼존불(국보 307호)이 약간 앞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우리나라 마애 석불의 선구로 태안마애삼존불을 꼽고 있는 것. 가운데에 작은 보살상을 세우고 좌우에 큰 여래상을 조각해 놓아 발견 당시부터 관심을 모았으며, 대담한 얼굴표정과 장대한 체구 등 강인한 남성미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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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소조불은 부석사에
한국불교에는 금동불, 목불, 철불, 마애불뿐만 아니라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진흙을 붙여가면서 만드는 소조불상도 적지 않다. 소조불상 중에는 부석사 무량수전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이 눈길을 끈다. 높이 2.78m의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시대 불상 양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점으로 미뤄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소조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손 모양이 석가모니불이 흔히 취하는 항마촉지인이나, 불상을 모신 장소가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이고 부석사에 있는 원융국사탑비 비문에 ‘아미타불을 만들어 모셨다’는 기록이 있어 아미타불로 보고 있다. 지금의 손 모양은 조선시대에 파손된 부분을 보수하면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의 기록에 의해 372년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함께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문가들은 초기 불상은 예배용이 아니라 이동이 쉬운 작은 불상을 만들어 호신용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삼국시대에는 목불보다 금동이나 돌부처가 주로 조성됐고, 통일신라시대 말에서 고려초기에는 철불이 주류를 이루는 등 시대에 따라 저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불상이 조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