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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측간
    ※잡동사니 2007. 10. 16. 10:16
    발을 딛고 앉는 두 널판 사이는 답답하리 만큼 좁다.허공을 가르며 낙하물이 깊은 안개속으로 꺼지는 듯하더니아득한 반향이 돌아온다. - 수필가 공덕룡의 ‘분뇨담’중에서.
    결코 아름답거나 향기롭지 못했던 것들도 현실이 탈색되면 향수의 대상이 된다.‘측간’(厠間)이란 말에는 유쾌하지 못한 기억을 가려주는 시간의 먼지가 소담하게 쌓여 있다.
    변소 대신 화장실이란 말이 더 자연스럽게 나오는 지금측간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참 드물다.더 드문 것은 우리가 기억하는 측간 그 자체다.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하지 않으면 아예 건축허가가 나지 않고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측간은 문화재(?)대접을 받고 있는 시대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볏짚으로 앉은키보다 조금 높은 울타리만 쳐놓은 안동 병산서원 텃밭의 볼품없는 측간을 ‘운치있다’고 소개하자 이 측간은몰려든 답사객들이 ‘뒤를 보는 곳’이 아니라 카메라를들이대는 볼거리로 변했다.
    변소란 본말을 몰아낸 완곡어 화장실에는 억지 위생약 냄새가 지워지지 않지만 ‘버금’‘곁다리’의 뜻이 풍기는측간(厠間)에는 그런 억지가 느껴지지 않는다.우리의 측간에는 억지가 없다.
    큰 항아리를 묻어 놓고 그 위에 두개의 나무판만 덩그러니 걸쳐 놓은 채 흙담을 치고 거적으로 간신히 입구를 가려 놓았던 게 고작이었던 측간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시골농가의 변소는 대부분 이런모습이었다.
    번듯한 문이 없으니 측간 갈 때마다 저만치 앞에서 ‘어흠’이라며 큰 기침소리를 내야했고 영하의 추운 겨울날이면 엉덩이를 스치는 찬바람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던 기억들.비를 가릴 변변한 지붕이 없었던 탓에 우산을 받쳐들고볼일을 봐야 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공포를 자아냈던뒷간 귀신에 관한 이야기는 왜 그리도 많았던지…. 캄캄한밤중에는 잠자던 어머니를 깨워 손을 꼬옥 잡고 드나들어야 했다.
    화학비료가 지금처럼 대량보급되기 전에 시골농가의 측간은 단순히 뒤를 보는 장소만은 아니였다.‘한 사발의 밥은주어도 한 삼태기의 똥재는 주지 않는다’는 속담처럼 농가에서 측간은 천연 거름을 생산하는 중요한 장소였다.그러나 화학비료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측간 거름은 용도를잃었고 요즘은 시골 농가에서조차 깔끔하게 단장된 수세식화장실이 일반화됐다.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깨끗하고 편안한 화장실 만들기에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시대로 바뀌었다.그러나 측간이 사라지면서 청결함과 품위는 얻었지만 사람과 자연과의 생태 순환고리는 차단되고 말았다. 측간 거름이 다시 땅의 양식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정화조 속에서 썩어가고 있는 것이다. 뒷간(측간) 연구가 이동범씨(한국귀농운동본부 편집위원)는 “전통 뒷간이 비록 불편하고 비위생적이지만 자연 생태순환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며 “유기농법의 중요성과 함께 옛 뒷간을 생태공간으로 되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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