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
중생위해 33가지 모습으로 화현하시니...
사바의 대지에는 언제나 괴로움이 가득 차 있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살아가는 순간 순간이 번뇌의 연속이다. 자그마한 행복이 때때
로찾아오지만 그것은 더 큰 고통을 맞이하기 위한 전주곡일 뿐이다.
중생은 이렇게 한평생 고해(苦海)에서 허덕이다, 고해를 떠나야 할까. 아니다.
그렇게만 세연(世緣)을 마감한다면 부처님 가르침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고통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때, 그 때 관세음보살
이 나타난다.
감로수를 담은 정병을 한 손에 쥐고, 흰옷 입고 연꽃 위에 서서 우리가 사는 이
사바세계에 나투신다. ‘대자비의 서원자’인 관세음보살! 일체중생의 섭수
(攝受)를 본원으로 하여 현실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중생교화의 자비행을 실천하
는 관세음보살, 천 개의 손과 눈으로 중생의 고통을 살피고 구제해줄 관세음보살
은 그렇게 우리 곁에 오신다.
“어머니!” 긴급할 때 자신도 모르게 튀어 나오는 말이다. 이 말 다음으로 많이
찾았던 것이 "아이고! 관세음보살님"이다.
불교를 믿거나 믿지 않거나를 막론하고 우리 선조들은 위기에 직면하거나 놀라운
일을 당하면 숨을 몰아쉬며 ‘관세음보살’을 되풀이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끊임없이 전파된 관음신앙에 의해, 모든 이의
마음 한 구석에, 관세음보살이 어머니 이상으로 지극한 사랑을 베푸는 최후의
구원자요 안식처요 귀의처로 자리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서민들에게 관세음보살은 불교를 대표한 보살이다.
모든 사람들이 귀의할 만큼 관음의 대자비는 어떤 불.보살의 자비보다 넓고
깊다. 관세음보살이 대비성자(大悲聖者), 구호고난자(救護苦難者. 고난을
벗어나게 해주는 자), 시무외자(施無畏者. 두려움을 없애 주는 자), 원통대사
(圓通大士. 원만하여 통하지 않음이 없는 큰 사람), 관음여래 등으로 불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우리를 현세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관세음
보살은 “부처님의 자비와 중생교화의 측면이 상징화된 존재”다. 성불을 추구
하는 구도자가 아닌, 부처님의 한 가지 기능을 대변하는 화신으로, 어느 때 어느
곳에도 갖가지 모습으로 나타나 자비를 베풀고 가르침을 준다.
관음의 산스크리트어는 Avalokitesvara인데, 이것이 ‘아박로지제습벌라’
혹은 '압루긍'으로 음사되거나 관음 관자재 관세음 광세음 등으로 한역됐다.
구마라집 스님 이전에 한역된 경전들에는 관세음 광세음 현음성(現音聲)으로,
구마라집 스님이 번역한 경전에는 관세음 관세자재가, 현장스님이 역경한
시기에는 관자재(觀自在)라는 명칭이 많이 쓰였다. 관음보살이 나오는 경전의
한역시기로 본다면, 2세기 후반에서 3세기 초 무렵 관음신앙은 중국에 전래된
것으로 파악된다.
지루가참이 옮긴 〈도행반야경〉(179년 한역)에 ‘관음’에 대한 개념이
처음으로 나타나며, 〈무량수경〉(강승개 譯. 252)에 그 다음으로 보인다.
그러다 〈묘법연화경〉(구마라집 譯. 406)과 60권본 〈화엄경〉(418~421)에
‘관세음’이라는 명칭이 쓰이면서 관음은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러면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 속에서 구제받을 수 있는 고난은 어떤
것일까. 〈법화경〉 ‘보문품’에 의하면 ‘칠난삼독(七難三毒)’이다. 입으로
관세음보살을 지성껏 부르면 설사 큰 불에 들지라도 불이 능히 태우지
못하며(火難), 큰 물에 빠질지라도 죽는 일이 없으며(水難), 바다에서 검은
바람을 만나 죽음에 임박했더라도 해탈을 얻을 것이며(風難), 죽음의 칼이
목전에 다다랐을지라도 그 칼이 저절로 부러지며(劍難), 나찰 등 아무리
사나운 마귀라 할지라도 해를 끼치지 못하며(鬼難), 죄가 있거나 죄가 없거나
감옥의 고통을 맞게 된 자들이 모두 자유로워지며(獄難), 원수나 도적도
스스로 사라지는(賊難) 등 일곱 가지 재앙을 면한다.
인도에도 관세음보살상… 뉴델리박물관에 전시
경주 석굴암 본존불 뒷면의 십일면관음상 유명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여러 일들을 하기에, 관세음보살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응현(應現)하는 모습은 경전에 따라 다른데, 우리나라에서는
〈법화경〉의 33응신설과 〈능엄경〉의 32응신설을 받아들인다.
부처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곧 부처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고, 벽지불의
몸으로 제도할 사람에게는 벽지불의 몸을, 성문(聲聞).범왕(梵王).제석(帝釋).
장자(長者).비구.부인.천.용 등 32신(身) 또는 33신으로 응화하여 제도할 대상에
따라 그에 맞은 가지가지 형상으로 나타낸다. 그렇다고 32신 혹은 33신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됨 없이 아무리 외진 곳에서도, 중생이 원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 세상 모든 것 속에 관음의 모습이 깃들어 있고, 이 세상 어는
것 하나 관음의 응신이 아닌 것 없다. ‘보문품’의 보문(普門)이라는 말은
이런 사실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 단어라 할 수 있다.
지극정성으로 이름만 불러도 중생을 구제해주는 관세음보살이기에, 당연히
불교미술의 훌륭한 소재가 됐다. 성관음.백의관음.십일면관음.천수천안관음.
마두관음 등 모습도 다양하다. 누구나 ‘자기 마음 속의 관세음보살’을 조성
해놓고 기도하고, 소원을 빌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졌을까. 어머니 같은 자비를 보여주기에 주로
여성의 모습을 띠었고, 관세음보살의 보관(寶冠)에 화불(化佛)이 있다는
관무량수경의 구절에 근거해 보관에 화불이 있는 모습으로 조각됐다.
물론 성관음상(聖觀音像)이나 탱화의 경우, 〈화엄경〉 입법계품에 의거,
왼손에 봉우리 상태의 연꽃을 들고 오른손에는 감로병을 든 모습으로 조성된다.
왼손에 든 연꽃은 중생들이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을 상징하며,
감로병에는 ‘불사(不死)의 물’ 감로수가 들어있다.
"관음보살 대의왕! 감로병 중에 가득한 법수(法水)의 향기로, 마(魔)의
구름을 세탁하여 서기를 일으키고, 열과 번뇌를 소제하여 청량을 얻게 하네"
라는 쇄수게 내용은 감로병과 감로수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알려준다.
반면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은 42개의 손을 가지고 있다. 42개의 손 가운데
합장한 두 손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 밖의 40수(手)는 그 하나하나의
손이 25유(有)의 중생을 제도하므로 40×25=1000수가 된다. 25유는 지옥부터
천상까지의 육도 중생을 보다 자세히 분류하여 25계층으로 나타낸 것이다.
11면 관음상은 본 얼굴을 제외한 머리에 있는 11면 곧 전면에 있는 3면의
자상(慈相. 자애로운 모습)과 왼쪽의 진상(瞋相. 성난 모습) 3면, 오른 쪽의
백아상출상(白牙上出相. 흰 이를 드러내고 미소 짓는 모습) 3면, 뒤쪽의
폭대소상(暴大笑相. 큰소리 내면서 호탕하게 웃는 모습) 1면, 정상의 불면(
佛面. 부처님 모습) 1면을 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석굴암 본존불 뒷면에 있는
11면관세음보살상이 유명하다.
인도에도 관세음보살이 있다. 뉴델리국립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관세음보살입상이
그것. 5세기 후반 경 조성된, 연꽃 위에 서있는 이 상은 세장(細長)한 몸매와
여성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파키스탄 폐샤와르박물관에도 관음보살이 있지만,
인도아대륙에는 많은 작품이 남아있지 않다.
반면 대승불교가 전래된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에서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관음보살이 조성됐다. 중생의 희구(希求)를 들어주는 관세음보살이
그만큼 인기가 좋았던 것이다.
공주시 의당면 송정리에서 출토된 금동관세음보살입상(국보 제247호), 부여군
규암면에서 나온 금동관세음보살입상(국보 제293호), 선산군 고아면에서 발굴된
금동관세음보살입상(국보 제183호), (국보 제184호) 등이 삼국시대 조성된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관음상이며. 관세음보살상을 보고 있으면 한없이 평화로워진다.
자비의 화신으로 보는 이를 편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리라.
사바세계 중생들을 모두 구제하고자 노력하는 관세음보살. 그 분의 자비는 한없이
넓고 깊지만, 진정한 행복과 자유를 만끽하며 사느냐 못사는냐는 오로지 우리들의
뜻에 달려있다. 깊은 믿음으로 관세음보살께 귀의하여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기에. 관세음보살께 지극한 정성으로 귀의해 ‘자비’를 실천
하고 평화를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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