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明堂)속에는 기(氣)가 응결(凝結)된다.
수일 전 필자는 의정부시 주내면에 가서 좋은 명당(明堂)을 구경하게 되었다. 풍수지리 (風水地理)를 30여년 동안 연구(硏究)하고 사시사철 전국(全國) 각지로 돌아 다녀봐도 좋 다하는 명당(明堂)은 보기 드물다.
간혹 명당(明堂)은 보게 되지만 나름대로의 장단점(長短點)이 있기 마련이고 그렇게 호감이 가는 곳은 드물었다. 그런데 이날은 참으로 좋다싶은 생각이 들었고 산(山)의 지세(地勢)나 주변의 환경(環境)보다는 와혈(窩穴)로서 혈(穴)을 맺은 형체(形體)나 토질(土質)과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의 명당(明堂)의 내력을 물어봤더니 십여년 전에 김종철(金鐘喆) 선생(先生)이 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필자는 김종철 선생(先生)을 만나서 사연(事緣)을 물어보았다.
원래(元來) 이 자리에는 조선시대(朝鮮時代)에 이판서(李判書)라는 분이 묻혀 있었는데 명당(明堂)의 시효(時效)가 끝나므로 자연히 파여 나오게 되고 십여년(十餘年) 전에 다른 사람이 주인(主人)이 되어 다시 묻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명당(明堂)이란 원래(元來) 크기에 따라서 시효(時效)가 있는 법(法)인데 그 시효(時效)가 다 끝나게 되면 분실 또는 후손(後孫)들의 이런저런 이유(理由)로 파여 나오게 마련이다. 그때 김종철 선생(先生)께서 참관하게 되어 일을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 봉분(封墳)을 파헤치자 관(棺)에 옻칠을 까맣게 하여 매우 두꺼운 상태여서 370여년(餘年)이 지났는데도 모서리에 조금씩 부서지는 정도일 뿐 양호했다고 하며, 관(棺)의 뚜껑을 열자 그 안에는 안개같은 김이 꽉들어차 있어 유골(遺骨)이 보이질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햇빛이 들자 서서히 안개가 걷어지면서 유골(遺骨)이 드러나는데 마치 황금덩어리처럼 이글거리는 유골(遺骨)이 나타나더라는 것이다.
유골(遺骨)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않고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싶더라는 이야기였다.
그것은 오랜 세월(歲月)동안 기(氣)를 받아들여 응결(凝結)되어 있기 때문에 370여년(餘年)이 지났지만 뼈에 좀하나 먹지 않은 원형(原形)이 보존(保存)된 것이다.
과거(過去) 지방마다 명당(明堂)을 파니까 김이 새어 나오더라는 말도 있고, 혹은 학(鶴)이 날아 나가더라 하는 말도 있는데 대부분 낭설이다. 기(氣)가 관(棺)속에서 응결(凝結)되어 혹은 관(棺)이 썩어 없어져도 관(棺) 중간에 김이 많이 서려 있을수도 있다. 하지만 명당(明堂)속에는 기(氣)가 응결(凝結)되거나 유골(遺骨)이 황골(黃骨)이 되는 것은 사실(事實)이다. 혹시 가까운데서 느끼지 못해도 먼데서 보기에 김이 날아 나가더라는 예(例)도 알 수는 없는 일이다. 명당(明堂)속에는 천태만상(千態萬象)의 변화가 무쌍하므로 이것은 장담할 수는 없다 하겠다.